어중간한 성과주의, 할 생각 마라   

2010. 7. 7. 09:00

우리나라에 성과주의 인사관리가 도입된 때가 90년대 초입니다. 그리고 IMF 환란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기 시작하면서 회생을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성과주의 인사관리를 도입하는 기업이 급증했죠. 연공의 파괴, 능력에 따른 승진과 보상으로 대표되는 성과주의는 어느새 필수불가결한 철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하면 개인은 남들보다 성과를 많이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논리는 경영자와 HR관리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 게다가 연공에 의해 돈만 많이 받아가면서 성과는 보잘 것 없는 직원들을 정리할 명분도 챙길 수 있으니 IMF 위기로 돌파구를 찾던 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후지쯔 성과주의 리포트'라는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후지쯔가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일찍이 도입해서 놀랄만한 성공을 거뒀다는, 무용담류의 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첫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성공담을 기대하던 마음은 점점 심각하게 변해갔죠.

후지쯔 성과주의 리포터

과거 후지쯔의 인사부에 근무하던 저자는 이 책에서 후지쯔의 형편없는 성과주의 실태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후지쯔는 1990년대 초 일본식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를 최초로 폐지하고 성과주의를 도입하여 일본 내 큰 충격을 가져다 준 회사로 유명합니다. 성과주의로 미국의 IBM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충만하던 후지쯔가 어찌하여 비판의 도마에 오르게 되었을까요?

저자는 성과주의 때문에 후지쯔가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고 아직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거침없이 일갈합니다.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성과주의 실패의 원인은, 인사담당자들이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제도를 전파하여 억지로 따르게 하려는 기계적 사고방식에 젖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또한,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연공우대 정책, 파벌주의 등과 적당히 타협하여 '어중간한 성과주의'를 채택할 생각은 말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연공서열 관행에 젖은 관리자들의 생각을 혁신하지 못한 채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하면 오히려 일신의 안위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지 모른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면을 도외시한 성과주의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죠.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는 후지쯔의 성과주의 병폐는 컨설팅 현장에서 고객들로부터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평가를 관대하게 주는 문제, 힘 있는 부서 직원들에게 높은 점수가 은연 중 부여되는 문제, 성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관리자 문제, 비밀리 진행되는 평가 조정의 문제, 직원들 간의 반목과 갈등 문제 등이 그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인사담당자들이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성과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과 찬사에 스스로 눈이 어두워져 직원들을 잘못된 성과주의의 틀에 가두려는지 자아비판을 해 볼 때가 됐기 때문입니다. '하면 된다'와 '까라면 까라'식으로 제도를 강요하면서도 기득권은 포지하지 않으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는지, 제도만 던져주고 나 몰라라 뒷짐 지지 않았는지, 윗사람에게 되도록 피해 안주려고 밑의 사람들을 성과주의의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컨설팅으로 밥 먹고 사는 저에게도 반성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고객에게 제출하는 보고서 몇 줄이 고객의 존망을 결정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경영학을 하는 사람이나 컨설턴트들은 회사를 하나의 기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사담당자들이 잘못된 성과주의 신화(?)에 전염된 것은 컨설턴트들 탓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과주의는 폐기해야 할 경영이념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성과주의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성과주의의 무조건적인 수용에 있는 것이지, 성과주의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외국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조리법으로 성공했듯이, 우리 정서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면 성과주의는 그때야 비로소 제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회사(會社)는 말 그대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애정이 결여되었다면 제 아무리 좋은 제도도 약(藥)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독(毒)이 됨을 이 책을 통해 새삼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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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공무원 2010.07.07 14:55

    잘 앍었습니다...
    만,
    이런 글은 CEO는 읽지 않는다는게 문제죠
    이 글에 공감하는 수많은 부하직원중 한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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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0.07.07 18:02 신고

      CEO도 다 알 겁니다. ^^ 요즘에는 CEO도 앞장서서 성과주의를 다른 식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2. J 2010.07.22 23:24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게 하나 있습니다.
    실패를 권장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지만, 실제 평가를 들어가면 그게 그리 슆지 않습니다.. 도전으로 실패한 사람보다는 문제없이 매끄럽게 일 잘한 사람을 더 잘주는게 인지 상정이니..

    평가에 실패를 인정해주는 좋은 방법은 없는 걸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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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달인 2011.05.19 16:58

    저두 저 책 보고 상당히 쇼크를 받았습니다. 성과주의를 좀 더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구요. 참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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