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경다방>을 개업하면서 사업용 통장을 개설한 적이 있는데요, 통장의 1일 이체 한도가 고작 30만원이더군요. 제가 항의를 하니 ‘대포 통장’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고 요즘에는 실적이 없는 사업체에는 이체 한도를 제한한다는 게 은행 측의 대답이었습니다.
취지는 알겠지만, 이제 막 창업된 사업체가 실적이 있을 리가 있습니까? 실적(매출)이 없지만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 사전에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데, 이체 한도에 제한이 걸리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편집 디자이너, 표지 디자이너, 인쇄소 등에 작업비를 송금을 해줘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은행의 논리는 이러했습니다.
“실적을 가져와. 그러면 이체 한도를 확대해 줄게.”
—> “하지만 초기라서 실적이 없어. 나갈 비용만 있고.”
—>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어. 실적이 있어야 돼.”….
결국 저는 서점들과 맺은 계약서를 들고 가 “아직 매출은 없지만 이들과 맺은 계약서가 있다. 그러니 냉큼 풀어 달라”고 해서 겨우 이체 한도를 정상적인 비용 지출이 가능한 수준으로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초기 사업체의 발목을 잡는 맹점이 있다는 걸 비판하려고 페이스북에 이 사실을 요약해서 올렸습니다. 대부분 제 경험에 공감했으나 하나의 댓글을 보며 조금 기분이 상하고 말았죠.
“은행도 기본 셋업이 있겠지요. 관상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려니 이해하십시오.”
제도의 모순을 지적한 저에게 ‘뭘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고 그래. 마음 쓰지 말고 넘어가.”라고 하는 듯 했습니다. 그에게 저는 “그래도 이렇게 떠들어야 조금은 바뀌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댓글을 달았지만, 사실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저를 위로하고자 했던 말이라면 위로의 표현이 상당히 잘못됐습니다.”라고 말이죠.
공감(共感)이란 무엇일까요? 한자 뜻 그대로 ‘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입니다. 부당한 사건을 당해 상처를 받거나 분노가 치밀면 당사자와 같은 마음이 되어주는 것이 공감이죠. 직원이 팀장과 면담하며 업무의 고충과 동료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면 팀장 본인이 보기엔 별거 아닌 일에 힘들어 하고 분노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직원의 감정에 이입되어 같이 상처를 느끼고 같이 분노하며 같이 슬퍼하는 것이 공감입니다.
직원이 그런 말을 팀장에게 꺼낸 이유는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대담하게 넘어가.”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가 아닐 겁니다. 당장에 팀장에게 조언과 해결책을 듣고 싶어서도 아니죠. 그저 자신의 고충과 힘듦을 이해 받고 싶고 위무 받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섣부른 조언은 직원에게 상처를 주고 직원과 리더 사이에 벽을 공고히 만들어 버리니 굉장히 해롭습니다.
공감은 일단 상대방과 같이 느끼는 것이고 조언과 충고의 욕구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뭘 어떻게 할지, 그 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제 블로그 앞에 분변 같은 악플을 남겨도 일일이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동료가 아무 생각없이 트러블을 일으킨다면 그 동료와 속깊은 대화를 나눠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는 걸 모르는 직원이 있겠습니까?
“그 친구는 원래 성격이 그러니 네가 좀 이해하고 참아라”는 조언은 ‘공감하는 자’로부터 나올 수 있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네가 참 힘들겠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 해도 충분합니다. 공감 없는 조언은 어찌보면 악플이나 다름없습니다. 자신 안에 기생하는 ‘조언충’과 ‘일침충’을 박멸하는 것이 공감의 시작임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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