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이니 파리똥' 그리고 '날리면'   

2022. 9. 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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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팝 가수 올리비아 뉴튼존이 세상을 떠났다. 한번 치유됐던 유방암이 재발된 탓에 요즘치고는 약간은 이른 나이인 73세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사실 어렸을 때 나는 그녀가 어떤 가수인지, 디스코그래피가 어떤지 잘 알지 못했고 예쁘장한 얼굴이라는 것 외에는 그리 관심도 없었다. 아니, 팝 음악 자체에 완전 문외한이었다. 그런 내가 어렸을 때부터 유일하게 기억하는 그녀의 히트곡이 있는데 바로 ‘피지컬(Physical)’이라는 노래다. 

지나고 보니 이 노래는 그녀가 이전에 발표한 곡과 상당히 다른, 록 음악적인 요소가 살짝 가미된 경쾌한 노래인데, 이것이 내가 이 노래를 특별히 기억하는 이유는 아니다. 바로 가사 중의 한 대목이 우리말로 우스꽝스럽게 ‘번안’돼 아이들 입에서 한동안 크게 유행했기 때문이었다. 노래 중간에 ‘Let me hear your body talk’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번역하면 “당신 몸짓을 느끼고 싶어.” 어린애들이 따라부르기에는 적절치 않은, 야한 내용의 가사다.

 


아마도 영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의 귀에는 이 대목이 ‘웬일이니 파리똥’이라고 들렸나 보다. 분명 그 아이는 ‘웬일이니 파리똥’이라며 계속 따라 불렀을 것이고 재미있어 하는 주변 친구들은 신나게 ‘전염’됐을 것이다. 그리하여 전국의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원곡의 가사는 제껴두고 다같이 ‘웬일이니 파리똥’이라고 부르며 히히덕거렸을 것이다. 올리비아는 자기가 부른 노래가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문구로 한국 아이들의 입에 회자됐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헌데 몇몇 사람들이 ‘웬일이니 파리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자기 동네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냄비 위에 파리똥’이라며 조금 다른 버전을, 또 어떤 이는 ‘냄비 안에 밥 있어’라며 완전히 다른 버전을 제시했다. 그밖에 ‘냄비 위에 밥이 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나는 지금껏 그 시절 전국의 아이들이 죄다 ‘웬일이니 파리똥’이라고 불렀을 줄 알았는데, 무슨 사투리도 아니고, 또 무슨 고스톱 룰도 아니고 지역마다 각기 다른 버전을 존재했을 줄이야!

이제는 폐지된 <개그 콘서트>에서 박성호라는 개그맨이 선보였던 코너를 기억하는가? 박성호가 힌트를 던지고 나면 원래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았던 외국어 가사가 한국말처럼 들리는 신기한 경험으로 웃음을 유발했던 코너였다. 한국사람은 한국어의 음운구조에 철저히 학습된 귀를 가지고 있다.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으면 외국인의 말이 그저 소리로만 들릴 뿐 그 의미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데, 한국인은 자신에게 익숙한 음운체계가 한국어이니 그것을 통해 외국어 소리를 귀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Let me hear your body talk이 한국어 음운체계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웬일이니 파리똥’으로 들린 것이다.  박성호는 사람들이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점을 이용하여 웃음을 자아냈던 것이다.

이번 주, 실언인지 의도된 발언인지 모르는 말로 내내 온나라가 시끄러웠다. 다들 알고 있으니 기사대로 써보겠다.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외교적 결례인지, 향후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 글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으련다. 이미 많은 기사에서, 많은 논평에서 다뤘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이 사태를 수습하려고 내놓은 변명이 너무나 기가 막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새끼’는 우리나라 야당을 향한 말이었고,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라고 해명했다. 좋다. ‘이 새끼’ 부분은 그렇다 치자(할말은 많으나 생략한다). 헌데 ‘바이든’이 ‘날리면’이라고? 발언 영상을 여러 번 돌려 들어봤는데 전혀 ‘날리면’이라고 들리지 않았다. 분명 ‘바이든’이었다. 대체 어떤 귀를 가지고 있기에 ‘날리면’이라 들을 수 있지? 알다시피, 이런 황당한 해명이 더 큰 파장을 일으켰고 안 그래도 뒤숭숭한 분위기를 더욱 들쑤셔 놓았다.

 



태어날 때부터 한국어 음운체계에 단련된 우리들 귀에는 Let me hear your body talk이 ‘웬일이니 파리똥’처럼 들릴 수 있고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착각’이다. 허나 ‘바이든’란 단어는 한국사람의 입으로 발음된 음성이기에 우리 귀에는 ‘바이든’이라고 똑똑히 들린다. 물론 바이든은 미 대통령의 성이라서 엄밀히 말해 영어이지만, 한국의 대통령이 발음한 소리이고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우리 귀에는 바이든이라고 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말이나 영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외국인이라면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들을 수 있겠지만, ‘날리면’이란 소리가 그가 사용하는 언어에서 의미를 갖고 있는 ‘어떤 단어’일 때만 그럴 것이다.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우기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안다. 걷잡을 수 없게 번진 사태를 수습하고자 하는 마음이 급했겠지. 애잔하지만, 이해는 한다. 허나 고심 끝에 내놓은 대응책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냉소와 조소를 불러 일으키는 억지가 아닐 수 없다. 음향학적으로 볼 때 주파수가 다른 ‘ㅂ’과 ‘ㄴ’을 같은 소리라고 주장하다니, 그 뻔뻔함과 ‘성의 없음’의 극치에 자못 옷깃을 여미게 된다. ‘웬일이니 파리똥’은 재미라도 있지, 날리면이 뭔가!  ‘웬일이니 파리똥’이 아니라 ‘냄비 위에 밥이 타’가 맞다고 주장하는 건 주파수 대역이 비슷하기라도 하지, 날리면이 대체 뭔가!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현실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날리면’을 ‘바이든’으로 들었다면 여러분의 귀가 이상한 겁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정치적 입장을 떠나, 전 국민을 가스라이팅하려는 것인지 준엄하게 묻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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