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의 시간을 치열하게 인내하는 법   

2022. 3.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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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주간 유정식' 70호 경영수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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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 이후 국민의 절반은 자신의 투표권에 효능감을 경험하며 새 정부에 나름의 기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반면에 나머지 절반은 깊은 실의에 빠져 있으리라. 생각 같아서는 확 이민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하다못해 훌쩍 해외여행이라도 떠나면 좋겠지만 아직 코로나 시국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터라 그마저도 녹록치 않다. 

일에 집중하다가도 ‘그것’만 떠올리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잠을 설치기가 일쑤다. 길을 걷다가도 “저 무리의 절반은 나와 생각이 완전히 반대이겠구나.”란 생각에 공포스러웠다고 말하거나, 음식점 옆자리에서 보란 듯이 축하 건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기 싫어서 그곳을 바로 빠져나와야 했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있다.

이 글이 나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글이라 조심스러운 마음이지만, 그리고 나 또한 그 절반의 일원이라서 반대 의견을 지닌 구독자분들의 오해를 살까 두렵긴 하지만, 일종의 자기치유의 방도랄까? 현재 집단우울증의 증상을 겪는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에게 앞으로 5년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를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사실 나라고 해서 방법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내가 인생의 구루로부터 답을 절실히 구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서 찾아 봤다. 기억하겠지만, 2016년 말에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때에 절반이 넘는 많은 미국인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던 모양이다. 

구글에서 ‘How to survive in trump’란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상당히 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의 글도 있고 여러 정치 블로거들이 분노를 담아 휘갈려 쓴 듯한 글도 있다. 트럼프 정부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심했던지 아마존에 절망하거나 도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라는 조언을 담은 <트럼프 세상에서 살아남기(Trump Survival Guide)>란 책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나는 요 며칠 동안 그 글들을 꼼꼼히 읽으며 우리 상황에 맞는 ‘내가 뽑지 않은 대통령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머리 속으로 정리했다. 어떤 조언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 의미가 적었고, 또 어떤 조언은 가열찬 반격을 주장하는 것이라서 몸을 추스를 힘도 없는 지금의 상태에선 무리가 있었다. “이민이나 가버려야겠다.”라든지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져야겠다.”라는 생각도 나름의 방책이겠지만, 5년은 긴 시간이다. 좌절하거나 도피하기엔 아까운 시간이고,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절망 혹은 분노의 에너지를 ‘우리 개인의 생산적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 질문에 집중하기로 했고, 여기에 나만의 생각을 몇 가지 끄적거려 본다.

축적의 로드맵을 그려라
5년 후가 되면 자신에게 ‘작품’ 하나가 남을 수 있는 시간으로 사용할 것을 제일 먼저 조언한다. 밖으로 향한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 5년의 시간을 축적에 매진할 절호의 기회로 설정하면 어떨까? 그게 자기 인생 최초의 책이 됐든 아니면 기술이나 자격증이 됐든, 지금까지 막연히 생각만 했거나 기대를 했던 것을 성취해 낼 시간으로 사용하기에 5년은 아주 넉넉하다. 내가 ‘축적’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한번에 큰 걸음을 내딛으려 하기보다는 조금씩 해나가야 의지력을 유지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2022년부터 2026년 말까지의 달력을 쭉 펼쳐 놓고 본인이 축적해 내고자 하는 것을 어떤 단계로 성취해 갈 것인지 ‘큰 그림’을 그려보라.

예를 들어 책을 쓰고 싶다면 이렇게 로드맵을 정하면 어떨까? 5년 중 2년은 해당 주제에 대한 공부와 자료 찾기에 매진하고, 3년차엔 책 전체의 구성에 집중하며, 나머지 2년은 본격적으로 책을 쓰고 완성하는 시간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며칠 밤을 새워 일필휘지로 쓰기보다는 일주일 중에 특정 시간대를 정해서 “이 시간은 온전히 책을 쓰는 데 사용한다”고 다짐하기 바란다. 한번에 2~3페이지만 쓰기로 한다면 2년 후에는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축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오프라인의 시간을 늘려라
개인적으로 요 며칠 유튜브를 절독하고 뉴스를 끊었다. SNS에 글을 올리긴 하지만 뉴스피드를 보지 않고 내 ‘담벼락’만 본다. 그랬더니 일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여유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매일 1시간씩 음악을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고 그간 지지리도 읽히지 않았던 종이책의 글밥도 눈에 들어온다. 글 한 편을 한두 시간만에 뚝딱 써내는 기적같은 생산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온라인에 푹 빠져 살았는지, 그 시간이 얼마나 소모적이었고 비생산적이었는지 새삼 느끼는 중이다. 지금의 이 상황이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 다했다 싶다.

지금은 온라인의 즉시적이고 단편적이며 심도 낮은 정보를 멀리하고 누군가가 오랜 시간을 축적해 낸 깊이 있는 지혜에 탐닉할 절호의 기회다. 예전에는 불가촉천만처럼 취급했던 진지하고 두꺼운 고전을 사서 읽어라. 어려울수록 좋다. 언제 어려운 글을 읽을 기회가 있겠는가? 수행하듯 읽고 또 읽어라.

책읽기가 버겁다면 오프라인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남는 시간에 술이나 마시고 잠이나 자는, ‘무취미’의 삶은 옆에서 보기에 안쓰럽기 그지없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취미여야 하고 행복감을 고양하는 취미여야 한다.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취미면 더할나위없이 좋을 것이다. 나는 5년 동안 목공을 취미로 해 볼 생각이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았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나면 시작해 보려 한다. 5년 후에 작은 스툴이나 테이블 하나 정도는 뚝딱 만들 수 있는 능력치에 도달하면 좋겠다 싶다. 

 


지지하는 단체를 후원하라
정치적 무관심의 기류를 사회 전체적으로 조성한다는 것, 이게 바로 절망과 체념이 무서운 까닭이다. 염증의 대상은 정치가들이지 정치 그 자체가 아니다. 또한 선거가 정치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헌신하는 단체나 정당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일이 진정한 의미의 정치 참여다. 긍정적인 의미로 정부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며 저항하는 일이다. 밖에서 욕만 하지 않고 지지하는 정당의 당원이 되어 실질적 압력을 가하는 것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다.

꼭 그런 단체에 직접 참여해 활동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동물권에 관심이 많으면 동물보호단체에, 경제민주화를 신념으로 삼는다면 그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는 시민단체에 자신이 최선을 다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게 ‘소리없는 기부’일 수도 있고, 찬성 의사를 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좀더 적극적이라면 평화적인 ‘온/오프라인’ 시위에 가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고독해지는 법을 배워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외롭게 지내라는 소리는 아니니까. 어른이 됐다는 것은 스스로 경제적,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고독을 즐길 줄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보통 사춘기를 지나며 부모와의 분리 불안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지만, 나이를 충분히 먹고서도 주변인들과의 정신적 분리에는 익숙하지 못한 이들이 생각 외로 많다. 늘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되며,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누군가의 도움을 갈망하고,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타인의 결정에 삶을 맡기는 이들. 고독할 줄 모르는 삶은 불행하다. 

고독이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시간에 잠시멈춤을 누르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삶을 ‘철학하며’ 5년을 보내자. 정치공학적인 난삽한 가십과 덜떨어진 유사 담론에 취하지 말고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온전히 자신을 사색하자. 사색(思索)은 ‘깊이 생각하며 무언가를 찾는다’는 뜻이다. 고독해야 사색할 수 있다. 나는 매주 토요일 오전을 이렇게 ‘멍 때리며’ 사색하는 시간으로 보내려 한다. 5년이니까 앞으로 500시간 가량을 사색하는 데 쓸 수 있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큰 위안이 된다.

5년 후면 나는 50대 후반이 된다. 치열하게 인내하며 살련다. 이 아까운 시간을 절망하는 데, 그들 욕하는 데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쓴 글이니, 나와 반대를 찍으신 분들은 노여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조(自助)의 몸부림이라고 여기는 아량을 베풀어주기 바란다.  (끝)

 

* 이 글은 '주간 유정식' 70호 경영수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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