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어느 커피숍의 리뉴얼을 보며   

2017. 7. 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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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6일(목) 유정식의 경영일기 


한때 가맹점이 1000개를 돌파했다던 OOOO 커피 전문점, 무서울 정도로 가맹점이 늘어나서 사람들이 ‘바퀴벌레’ 같다고 농담을 하곤 했던 커피숍 브랜드는 경영이 악화되어 가맹점 수가 700여개 수준으로 급감하고 말았다. 경영 정상화의 일환으로 2015년 6월에 천호동에 있는 1호점을 시작으로 매장 리뉴얼을 단행했지만, 그곳마저 끝내 지난 3월에 폐점되고 말았단다. 상징성이 큰 매장이었고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데 왜 1년도 안 되어 문을 닫고 만 것일까?


뉴스 기사에 따르면 ‘본질과 공감이라는 디자인 콘셉트를 바탕으로 심플한 현대적 공간과 오래된 커피 저장소의 감성적인 공간 이미지를 차용했다’며 인테리어 리뉴얼의 방향성을 설정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뉴스 기사에 딸린 인테리어의 모습을 보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소극장 객석을 연상케 하는 계단 모양의 좌석 레이아웃(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올라가서 앉기가 저어되는), 의자라기보다 방석을 깔고 앉아야 하는 좌석, 커피 두 잔 정도 겨우 놓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감성적인 공간인지 의문이 들었다. 


뉴스기사 캡쳐. 출처: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html?no=380386


공간이 말을 걸어 온다고 했던가? 직접 찾아가서 본 것이 아니라 비록 사진 상의 느낌이지만, 그곳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다 가길 바라는 공간이 아니라 커피를 빨리 마시고 돌아가라는 듯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커피를 잘 만들기 때문에 커피맛으로 승부를 걸 거야. 그러니 공간이 좀 불편해도 커피맛으로 참지 그래?’라는 메시지도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이 커피숍의 커피맛이 앉은 자리의 불편함을 인내하고 수용할 만큼 특별한가? 


제주도에 오래된 창고를 커피숍으로 리뉴얼한 곳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곳의 테이블과 의자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창고 안에서 느껴지는 헤리티지와 감성, 특유의 커피맛은 그런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오히려 앉은 자리의 불편함이 커피향을 더 특별하게 여기도록 대비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연희동에 10평도 안 되는 공간이고 테이블과 좌석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아침 9시에 열어서 정확히 저녁 6시에 닫는 커피숍이 있는데,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렇게 일찍 문을 닫는 이유를 물어보니 '사람도 공간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멋진 대답을 한다. 그곳에서 아이스 플랫 화이트를 마치 위스키 스트레이트를 입에 털어넣듯 먹는 즐거움이 온갖 불편함을 이겨내도록 해준다. 하지만 OOOO이 그러한가? 그곳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데 그 공간으로 사람들을 끌어 당길 차별성과 흡인력이 있던가?


창고를 개조한 제주도 모 카페



나는 공간 디자인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어느 공간에 찾아가면 방문객으로서 그곳이 유발하는 감정을 느낄 줄은 안다(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런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 공간을 자기가 만들면 공간의 결함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인 것 같다. 과연 이 인테리어를 디자인한 사람들은 손님의 입장에서 그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셔본 적이 있을까 의심이 든다. 손님이 어떤 불편과 고충을 공간에서 경험할지 진정으로 ‘느껴본’ 적이 있을까? 이렇게 질문하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했어요, 진짜’라고 답하겠지만, 사진만 봐도 누구나 느끼는 공간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왜 그들은 못 본 것일까? 보고도 외면한 걸까? ‘그까짓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닐거야. 손님들은 잘 몰라’라면서. 결국 리뉴얼 1호점의 폐점(그리고 그후에 이어졌고 앞으로도 이어질 폐점)은 디테일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과 하루바삐 경영 정상화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인테리어 디자인만 바꾸면 손님들이 다시 찾기 시작할 거라는 과거의 성공전략이 다시금 ‘먹히기’를 기대하면서 안일하게 생각한 탓일 것이다. 공간이 걸어오는 말을 외면한 것이다.


“소극장이라면 좋은 인테리어겠지만, 이게 커피숍이라구요? 저라면 절대 안 가요.”

H군에게 아무런 사전 정보를 주지 않고 사진만 보고 느낌을 말해 달라니까 이렇게 답했다.

“다들 앞만 바라봐야겠네요. 뻘쭘하게. 노트북이나 테이블에 제대로 올려 놓겠어요? 노트북은 그렇다 치고, 커피 말고 빵이나 케익을 주문할 텐데 이거야 원, 올려 놓을 수가 없겠네요.”

H군의 말은 고객의 소리를 대표한다. 매장과 사무실의 풍수에 대해 전문가적 식견이 있는 H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런, 팥빙수를 시켜면 대체 어떻게 먹으란 말이에요? 장사를 하고 싶은 거 맞아요, 여기?”

H군에게 팥빙수는 일종의 역린인가보다.



*뉴스 기사 원문: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html?no=380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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