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1일(수) 유정식의 경영일기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 방으로 들어와.”
회사에서 자신의 방을 따로 가지고 있는 고위 임원들이 직원들과 자주 오픈 마인드로 의사소통하려는 취지에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경우가 실제로 상당히 많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역시 한번쯤은 윗사람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기분이었나? CEO나 고위 임원이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라고 말하면 정말로 할 말이 있을 때마다 그 방에 들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우리는 ‘역지사지’를 자주 입에 올리고 또 그렇게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방법임은 물론이고 좋은 방향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역지사지가 쉽지 않다는 게 바로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라는 말을 직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지위에 있으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또 한 번 증명된다. ‘내 방으로 언제든 들어와’란 말은 상당히 지배적이고 권위적인 표현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결코 활발한 의사소통을 조성하기 위한 말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헐트Hult 인터내셔널 경영대학원의 메건 리츠(Megan Reitz)와 컨설턴트인 존 히긴스(John Higgins)는 ‘내 방은 열려 있어’란 말은 세 가지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직원들이 할 말이 있을 때는 임원의 ‘영역’에 들어와야 한다는 점, 둘째 따로 방이 있을 만큼 임원은 ‘지위가 높다’는 점, 셋째 언제 문을 열지 말지 임원 자신이 결정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임원의 방에 들어가는 직원의 심정은 맹수의 영역으로 걸어들어가는 초식동물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힘의 불균형이 극대화된 장소에서 혹시나 임원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을 건넬 수가 있을까? 다른 장소(이를테면 정수기 옆이나 화장실 앞)에서 똑같은 말을 꺼낼 때와 비교해서 그 기분 나쁨이 배가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네가 감히 여기서 그런 말을!’ 그렇기에 임원의 방에 들어와 직언을 할 의도였던 직원은 진짜로 해야 할 말을 시원하게 다하지 못하고 방 문을 나설 가능성이 높다.
직원의 말을 경청하고자 하더라도 임원이 변명을 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직원의 말을 약간 자르거나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면, 그게 비록 미묘할지라도 직원에게는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무엇이든 잘 들어주겠다니, 안 그렇구나! 여전히 불통이구만! 이제 여기에 들어와서 괜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지’라며 직원은 입을 닫을 것이다. 한번이라도 경청하지 않는 모습이나 뉘앙스를 전달하면 불통의 이미지로 굳어진다. 임원의 방이 바로 ‘맹수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더 증폭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의 방으로 들어와서 언제든 터놓고 이야기하라고 할 때는 정말로 본인이 그럴 마음이 충분하고 ‘겸손’한지, 반대되는 의견이나 나쁜 소식을 들을 때도 잘 듣는 ‘훈련’이 충분히 되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섣불리 ‘내 방은 열려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내 방은 항상 열려 있어.’라는 말은 자신이 활발한 의사소통을 주도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의사소통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꼴임을 주지해야 한다. 본인은 그냥 문만 열어 놓고, 들어와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주체는 직원이어야 한다고? 맹수의 방으로 어떤 직원들이 자주 들어오겠는가? 이를 보고 임원은 직원들이 자기와 의사소통하지 않으려 한다고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다. 활발한 의사소통은 물건너 가버린다.
직원들에게 의사소통하라고 독려하거나 힐난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직원들을 침묵케 만드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리츠와 히긴스는 꼬집는다. 방 문 하나 열어 놓는 걸로 의사소통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생각 자체로 경영자의 마인드가 부족한 것이다. 직원들과 이야기를 좀더 나누고 싶다면 직원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들의 영역에서 섞이고 부딪히는 자연스러운 동선 속에서 의사소통은 서서히 발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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