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직무 소개(Realistic Job Preview, RJP)’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실적 직무 소개란 지원자가 입사하여 수행할 직무의 내용, 직무 수행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애로점, 현실적인 한계 등을 ‘있는 그대로’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채용을 원하는 기업이 지원자에게 현실적으로 직무를 소개해야 한다는 말은 매우 당연하게 들리지만, 사실 실제로 채용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살펴보면 지원자에게 ‘장미빛 전망’을 강조해야 이야기하고 직무의 ‘어두운 측면’은 가능한 한 감추려 한다는 점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채용 과정은 상대방에게 좋은 면만 부각시켜 유혹하려는 남녀 사이의 교제 과정과 비슷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녀가 사귀다가 서로에 대해 좋지 않은 점을 발견하고 실망하여 관계가 틀어지는 것과 같이, ‘좋은 줄 알고’ 입사했던 직원이 회사와 직무의 실체를 목격한다면 직무 몰입은커녕 만족도와 성과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일찍 회사를 그만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렵게 채용한 직원이 금세 나가 버린다면 회사로서는 많은 손실을 떠안아야 합니다. 1년에 이직률이 10%라면, 1000명 규모의 조직은 매년 100명의 신규 직원을 뽑느라 정신이 없을뿐더러 채용과 교육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이 상당할 겁니다.





현실적 직무 소개는 직무의 내용뿐만 아니라 ‘나쁜 점’까지 모두 일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의 없고 ‘거만한’ 고객을 매일 접해야 한다든지, 일정 압박에 시달려 한 달에 10일 이상은 야근해야 하고 주말 출근도 감수해야 한다든지, 사무실에 있기보다 거의 모든 시간을 밖에서 지내야 한다든지 등을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것이죠. 현실적 직무 소개를 하면, 지원자가 지레 겁을 먹고 입사를 포기할 가능성이 커서 채용에 애를 먹지는 않을까 염려될 겁니다. 당장 사람이 필요한 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직무를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가는 업무가 마비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우려하겠죠.


물론 그런 위험 부담은 있지만, 현실적 직무 소개는 실질적으로 이직률을 크게  낮추는 효과를 가져다 주기에 오히려 안정적으로 인력을 운용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 줍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들은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중 로저 딘(Roger A. Dean)은 249명의 신입 은행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그들이 입사한 후 43주 동안 지켜본 결과, 현실적 직무 소개를 받은 입사자들은 첫 3주 동안(즉 OJT 기간 중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향이 컸습니다. 아무래도 은행 창구 업무의 현실을 일찍 깨달은 탓이겠죠. 중요한 점은 현실적 직무 소개를 받지 않은 입사자들은 첫 20주 동안 더 많이 퇴사했다는 것입니다. 첫 20주라면 어느 정도 창구 업무에 익숙해지는 기간이라서 이 시기에 은행을 더 많이 그만둔다는 사실은 현실적 직무 소개 없이 직원을 뽑을 경우의 비용이 매우 크다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죠.


진 필립스(Jean M. Phillips)는 과거에 수행된 40건의 연구를 메타 분석하여 현실적 직무 소개가 이직률을 줄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규명했습니다. 또한 필립스는 현실적 직무 소개의 ‘시점’, 그러니까 지원자에게 어느 시점에 직무의 ‘쌩얼’을 설명해야 가장 효과가 좋은지를 분석해냈습니다. 그는 현실적 직무 소개가 이루어지는 세 개의 시점(채용 과정 초기, 채용 직전, 채용 직후)을 설정한 후에 그것이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이탈, 입사자의 직무만족도, 업무 몰입도, 자발적 이직률, 업무 성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분석했습니다.


각각의 변수에 가장 적절한 ‘현실적 직무 소개 시점’은 조금씩 달랐지만(예를 들어, 직무만족도는 채용 초기에, 자발적 이직률은 채용하기 전에 현실적 직무 소개를 해야 가장 좋게 나타났음), 놀라운 점은 채용 직후에 현실적 직무 소개를 해도 이직률뿐만 아니라 업무 성과라든지 업무 몰입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시점이 중요하기보다는 채용 직전이나 직후에 현실적 직무 소개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해석할 수 있죠.


그렇다면 왜 현실적 직무 소개는 이직률을 낮추고 직원들의 직무만족도(그리고 업무 몰입도)에 긍정적인 걸까요? 첫 번째 이유는 현실적 직무 소개를 통해 애초에 입사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걸러내는 효과(즉, 각오를 단단히 하고 들어오는 사람만 통과시키는)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점은 이유가 되지 못했습니다. 입사 지원을 포기하는 사람의 비율을 보면, 현실적 직무 소개를 들었든 듣지 않았든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죠. 필립스는 현실적 직무 소개가 지원자들에게 일종의 ‘백신’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현실적 직무 소개를 통해 직무를 조금 경험해 보면 나중에 다가올 직무에 대한 실망과 충격을 미리 예상하고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채용 직후에 현실적 직무 소개를 해도 이직률을 낮출 수 있다는 필립스의 연구 결과는 이런 ‘백신 효과’가 존재함을 시사하죠.


현실적 직무 소개가 이직률을 오히려 낮춘다는 사실은 인력 운용에 있어 ‘솔직함’이 미덕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웁니다. 여러분의 경우, 입사 면접 때 들었던 설명과 실제로 경험하는 직무가 얼마나 다릅니까? 예상했던 것과 같습니까, 아니면 크게 달라서 실망하고 있습니까?




(*참고논문)

Dean, R. A., & Wanous, J. P. (1984). Effects of realistic job previews on hiring bank tellers.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69(1), 61.


Phillips, J. M. (1998). Effects of realistic job previews on multiple organizational outcomes: A meta-analysis.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41(6), 673-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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