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이야기다. 1997년, 내 첫 직장이었던 모 회사는 부도가 났다. 당시 IMF 외환 위기 와중이라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이었고, 모 그룹사가 회사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려고 의도적으로 부도를 유도했니 마니 말이 참 많았던 시기였다. 당연히 회사는 몸집 줄이기에 들어갔다. 부서별로 1~2명씩 내보낼 사람을 적어내라는 하명이 떨어졌다. 다행히 난 부서의 막내라서 구조조정의 화살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내 사수는 일주일 후 짐을 싸야 했다. 회사는 직원들 월급을 현금으로 직접 주면서 채권단 눈치를 살폈다. 십원짜리까지 알뜰하게 계산되어 누런 봉투에 담긴 월급을 받아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런 회사에 정 붙이며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는 한 차례 구조조정으로 부족했는지 ‘나가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나가줬으면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20대였던 내가 가장 ‘시장성’ 있어 보였다. 나는 당시에 대중적으로 막 쓰이기 시작했던 인터넷을 뒤지며 내가 갈 만한 회사를 조회하기 시작했다. 딱 한 곳이 있었다. 시스템 통합(SI) 회사였다. 사실 대학 다닐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선뜻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 회사 말고 사람 뽑는다는 기업은 가뭄에 콩 나듯 했으니 말이다.
나는 인터넷 지원 사이트에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고백하건대, 자기소개란에 고작 5~6줄 밖에 쓰지 않았다. 안 돼도 그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애초에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라서 더 그랬는데, 상상해 보면 그런 지원서를 받아본 담당자는 ‘참 건방진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제와서 미안한 마음이지만, 그때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면접 오라는 전화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로 연락이 왔다. 두어 번 면접을 받고 나서 입사하라는 통보까지 받았다. ‘이걸 어째?’ 당황스러웠다. 안 들어가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원래 업무에 충실하고자 애쓰던 차였다. 물어볼 사람이 딱히 없어서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며칠 고민 끝에 ‘여기에서 월급이 나오니 안 나오니 걱정하지 말고 그곳에 가서 일하자’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 회사에 가서 경험하는 새로운 업무도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라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이번에 번역 출간한 책 표지입니다.) (이 글은 이 책에 실린 '역자 후기'입니다.)
아뿔싸! 옮겨간 회사에서 첫 달을 보낸 나는 곧바로 실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회사에서 수천 억원 짜리 프로젝트(물론 나 혼자 한 것 아니었지만)를 기획하다가 이제 컴퓨터 앞에 쪼그리고 앉아 버그 잡느라 엉덩이에 물집이 잡힐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람이 ‘쪼잔해지는’ 것 같았다. 중후장대한 업무에서 경박단소한 업무로 급선회한 나는 전직을 후회했다. 안정적인 월급만 바라보고 전 직장을 때려친 것의 대가는 아주 컸다. 그래도 뭐 어쩌랴? 국가 경제가 어려워 사람 뽑겠다는 곳이 없으니 그냥 다닐 수밖에! (오해 마시길. SI업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나에겐 맞지 않았다는 뜻이니...)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다가 2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 나는 대학교 다닐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컨설팅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헌데, 귀인이 나타났다. 전 직장의 상사가 구조조정 컨설팅을 주로 하는 외국계 컨설팅 업체로 이직을 했던 것이다. 그 분은 전 직장이 다른 회사에 합병될 때 구조조정 업무를 수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컨설팅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을 듯 싶다. 새옹지마는 이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 분 덕에 내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컨설턴트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2년 전에 날 뽑아 준 팀장은 힘들 때 뽑아준 은혜를 저버렸다며 나를 강하게 나무랐다. 회사 일이 가뜩이나 많은데 그만둬야겠냐며 또 나무랐다. 게다가, 같은 팀의 고참은 자기도 그만둘 참이었는데 내가 먼저 나가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자기가 그만두고 난 후에 퇴사하라며 싫은 소리를 해댔다. ‘어찌해야 하나?’ 나는 이때도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그들의 요구를 따랐을 때 내가 얻을 것은 무엇이고 또 잃을 것은 무엇인지 따져봤다. 계산적이라 핀잔 주겠지만, 누구나 그러지 않는가?
매일 그냥 남아 있자는 생각과 옮겨 가자는 생각이 국경선에서 ‘국경 놀이’를 하는 여행객마냥 왔다리 갔다리 했다. 결국, 그들을 위해 내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다소 이기적인 마음이 승리를 거뒀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면, 버그나 잡는 일상에서 나 스스로 버그가 될 것 같았다. 냉정하게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 후 한 번의 전직이 있었고 사업체를 설립하기도 했지만 컨설팅이란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컨설턴트 일로 먹고 살고 있으니, 그때 그 야멸찼던 전직이 나에겐 제법 성공적이지 않았나 싶다.
출처: www.arkvalwebworks.com
이렇게 나의 과거사를 장황하게 꺼내는 이유가 있다. 전직이라는 것이 사전에 면밀한 예측이나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 시건방졌던 첫 전직, 우연한 기회를 잡아 이뤄진 두 번째 전직 모두 계획 따위는 없었다. 한 마디로 ‘그냥 질렀던’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전직을 위한 철저한 계획을 주문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아를 어디에 있는지 찾지 말고 바로 지금의 자아가 진정한 자아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전직의 기술, 그 요체를 발견한다. 그것은 ‘그냥 해보라’는 뜻이다. 해보기 전까지는 그 일이 적성에 맞을지, 삶에 도움이 될지 알기가 힘드니 어떤 식으로든 이것저것 해보면서 자신의 천직을 찾아가라는 의미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자 ‘좋은 전직’의 유일한 방법이다. 한번에 만루 홈런을 치겠다는 생각 따위는 버려라. ‘3루에서 태어난 자’들을 쳐다보며 자신을 비하하지도 말라.
지나고 나서 보니, 우울했던 SI 회사 시절의 경험도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논리적 사고가 다져졌고, ‘하던 가락’이 있어서 홈페이지와 블로그 운영을 혼자 해도 충분하니 말이다. 컨설팅을 하다보면 기업의 시스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오는데, 잘은 몰라도 대강 어떤 흐름인지 알아먹을 정도는 됐다. 잘못된 전직이라고 생각해도 지나고 나면 내 경우처럼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니 ‘이 일은 나에게 너무 맞지 않아’라며 현실을 한탄하지는 말기 바란다.
컨설팅 회사로의 전직을 만류하던 팀장과 그 고참은 하다하다 안 되니 내게 이런 식으로 말했다. “세상 좁아. 언젠가 만날 텐데, 그렇게 그만두는 거 아니야.” 미안하지만, 만날 일 없다. 세상은 넓다. 전직,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본 글은 이번에 제가 번역 출간한 <마침내 내 일을 찾았다>(새로운현재 刊)의 '역자 후기'를 옮겨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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