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비리를 저지르는 모습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빈도가 너무나 잦아서 권력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사적 이익을 추구해도 용인되는 자리라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기업 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직위나 직책이 높아질수록 자신의 권한을 활용하여 공익(the common good)보다는 사익(Self-interest)을 추구하려는 자들이 눈에 띕니다. 사익이라고 하니 거창한 것 같지만, 공적인 목적으로 써야 할 법인카드를 사적 용도로 사용한다든지 부서 전체의 공로를 가로채어 자신이 기여한 성과인 양 상부에 알린다든지 하는 행위 등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권한이 높은 자리에 오른다고 해서 누구나 사익에 눈이 머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자의 위치에 올라도 자신의 이익을 덜 취하려 하거나 사익에 둔감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토론토 대학의 캐서린 드첼레스(Katherine A. DeCelles)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도덕적 정체성'이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와 밀접한 상관이 있음을 실험을 통해 밝혔습니다. 먼저 드첼레스는 173명의 직장인들에 구조화된 설문지를 돌려서 권력적인 기질과 도덕적 정체성의 정도를 각각 측정했습니다. 여기서 도덕적 정체성이란 배려, 연민, 공정함, 친화, 관대함, 도와주기, 근면, 정직, 친절이라는 9가지 성격적 특성으로 세분되는 개념입니다. 1주일 후에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드첼레스는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과거에 권력을 행사했던 경험을 글로 쓰게 함으로써 권력자의 위치가 된 듯 프라이밍(priming)시킨 반면, 대조군인 두 번째 그룹에게는 단순히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쓰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은 일종의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에 임했습니다. 100달러 짜리 상품권을 따려면 게임에서 가능한 한 많은 포인트를 따야 하는데, 주어진 10포인트 중에서 얼마를 자신이 가지고 얼마를 상대방에게 줄지 결정해야 했죠. 이 게임을 통해 참가자 각자가 사익을 얼마나 추구하는지를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지난 한 주 동안 '나는 일부러 일찍 퇴근했다', '일하기 싫어 오래 휴식을 취했다', '내가 근무한 시간을 속여서 보고했다' 등의 항목을 읽고 얼마나 자주 그랬는지 답했습니다.


실험을 종료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니 권력, 도덕적 정체성, 사익 추구 경향 사이에 뚜렷한 상호작용이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참가자들의 경우 권력과 사익 추구의 행동 사이에 음(-)의 상관관계가 나타난 반면,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참가자들의 경우에는 권력과 사익 추구의 행동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뚜렷했습니다.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사람이 권력자의 위치에 가면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사람에 비해 사익 추구의 행동을 덜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권력자는 공익을 증진시키는 반면,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권력자는 공익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드첼레스는 후속 실험을 통해 도덕적 정체성이 높은 사람이 도덕적 의식도 높기 때문에 권력을 가져도 사익을 추구하려는 행동을 덜한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연구는 그 당연함을 실험으로 확인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어떤 사람을 권한이 큰 자리에 승진시키거나 누군가에게 좀더 큰 재량권을 부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일러줍니다.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사람을 승진시키거나 그들에게 권한을 강화시킬 경우에 공익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려고 행동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만일 도덕적 정체성이 낮은 자가 이미 권력자의 지위에 올라 있다면(혹은 재량권이 큰 부문을 맡고 있다면) 그들의 도덕적 정체성을 제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겠죠. 또한 그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사익을 도모하는지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직위에서 일을 잘하거나 역량을 발휘한다고 해서 권한이 큰 자리로 승진시킬 경우 도덕적 정체성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없다면 머지않아 조직의 윤리적 안정성을 위협 받는 상황이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능력 뿐만 아니라 도덕적 정체성 또한 승진 결정의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되어야 합니다. 잘 나가던 회사가 소위 'CEO 리스크'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가장 단적인 예가 미국 최대의 가전 판매 체인인 베스트바이(Bestbuy)의 CEO였던 브라이언 던(Brian J. Dunn)이 여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회사 공금에 손을 댄 것이 들통나 2012년 4월에 해고된 사건입니다. 가뜩이나 아마존이나 이베이와 같은 인터넷 상거래 업체의 공세로 인해 2011년 4분기에 17억 달러나 적자를 내며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리더십의 부재는 베스트바이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죠. 2012년 8월 새로운 CEO로 위베르 졸리(Hubert Joly)를 선임했지만 과연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주요 관리자로 승진시킬 때 도덕적 정체성을 얼마나 염두에 둡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경영자와 관리자는 얼마나 도덕적입니까?



(*참고논문)

Katherine A. DeCelles, D. Scott DeRue, Joshua D. Margolis, Tara L. Ceranic(2012), Does Power Corrupt or Enable? When and Why Power Facilitates Self-Interested Behavior,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Vol. 97(3)


Comments

  1. Favicon of http://weblogger.tistory.com BlogIcon 진검승부 2012.09.10 10:30

    이런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직은 뇌물과 줄서기, 아부와 아첨만이 승진의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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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9.10 16:53

    윗 두분의 말씀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과 도덕성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정말 무식한 생각이죠. 제가 유정식님의 정치성향을 몰라서 실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통령보세요. 그는 대선때 이미 경제사범 전과가 십수번이나 있다는게 보도가 되었어요. 근데 일만 잘하면 된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면서 그 많은 국민들이 그 전과 사실과 온갖 비리에 관한 이야기를 '알면서도' 찍었잖아요. 대놓고 '일하는거랑 착한거랑 뭔 상관이냐' 라고 말하기도 하구요. 물론 착하다고 일을 잘하는건 아니죠. 그러나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면 일의 결과가 안좋은건 사실인 거 같아요. 말씀하신대로 공익을 위해서만 힘쓰는게 아니라, 사익을 위해 꼼수와 비리를 저지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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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2.09.12 09:26 신고

      도덕성이 높은 사람은 능력이 떨어질 거라는 고정관념이 의외로 강한 것 같아요.

  3. 노을이네 2012.09.11 19:03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은 반복적인 사례의 단순한 보편화만은 아닌 일종의 법칙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맑다는 기준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이여야 하지 않을까요? 도덕이 지역적, 관습적, 강제적인 성격을 가진다면 그에 비해 윤리는 보편적, 인간적, 자발적 성격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윤리적 리더야말로 조직과 조직원, 주변 사회와 인류까지 발전시킬수 있는 기본 자질을 갖춘 인간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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