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잦으면 낮에 딴짓을 많이 한다   

2012. 3. 30. 10:13
반응형


얼마 전에 잠을 덜 잔 실험 참가자가 돈이 걸린 게임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적('야근을 많이 하면 남을 속이게 된다')이 있습니다. 이 글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었는데, 그만큼 우리 기업들 사이에서 야근이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지 그리고 야근이 얼마나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근이 이렇게 직원들의 비윤리적인 동기를 은연 중 자극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야근을 하면 그만큼 오래 일하니까 생산성도 높아지고 성과도 높아지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최근에 나온 또 다른 연구 결과는 야근과 생산성 사이에는 긍정적이기는커녕 오히려 부정적인 연관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와그너(David T. Wagner)와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 등의 연구진들은 수면 시간이 줄어들면 낮에 회사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데에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잠을 덜 잔 사람일수록 연예인 가십 기사나 스포츠 기사 등 업무와 상관없는 내용을 보느라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서머타임이 시작되기 전 날에 사람들이 시계를 한 시간 앞당겨 설정하고 잠을 자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고 그때문에 예전보다 평균 40분 정도 잠을 덜 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영리하게도 이때를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시점으로 삼았죠.



연구진은 2003년에서 2009년 사이 미국의 203개 도시에서 일어난 인터넷 트래픽 정보를 확보하여 연예 오락과 관련된 접속건수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서머타임이 시작되고나서 첫 번째 월요일의 접속건수가 직전 월요일에 비해 평균 3.1% 정도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서머타임 시작 후 두 번째 월요일의 접속건수와 비교하면 첫 번째 월요일의 접속건수는 6.4%가 더 많았습니다. 일주일 동안 서머타임에 적응한 다음에는 연예 오락 사이트에 접속하는 양이 줄었다는 의미입니다. 허나 이것만 가지고는 낮에 사람들이 업무에 집중하지 않은 채 인터넷을 보면서 빈둥거린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서머타임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퇴근 후의 여가시간이 1시간 늘어난 것인양 느끼고 그 덕에 밤에 인터넷 서핑을 더 많이 하는 것일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와그너 등은 실험실 내의 통제된 조건에서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96명의 학부생들에게 실험 전 날 수면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팔찌를 찬 채 잠을 자도록 요청한 연구진은 실험실에 모인 학생들에게 교수직을 희망하는 사람의 42분짜리 시범 강의 동영상을 본 후 컴퓨터 상에서 강의능력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이 평가에 사용한 컴퓨터는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영상을 보면서 슬쩍 인터넷에 곁눈질을 할 수 있었죠. 수면 팔찌로부터 얻은 정보와 학생들의 인터넷 접속 시간을 따져 보니, 전날 밤에 잠을 덜 잤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강의 동영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딴짓을 많이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수면 부족은 두뇌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을 회피하게 만들고 인지적 부담이 덜 가는 쪽으로 사람들을 유도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업무량이 많이 야근이 잦고 그로 인해 수면의 질과 양이 저하되면 다음날 낮의 생산성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좀더 추론의 깊이를 더하면, 어제 야근한 사람은 특별히 일이 많지 않아도 오늘 야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젯밤 야근으로 의지력이 저하되는 바람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여 오전 내내 인터넷 가십 기사나 SNS에 시간을 허비하다가 오후가 되어서야 서서히 업무를 챙기기 시작하면 오늘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야근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고 맙니다. 

물론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사람도 있고, 야근하고나서도 다음날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야근으로 인해 저하된 생산성을 야근을 통해 메우려는, '야근이 야근을 부르는' 악순환의 양상은 조직 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야근이 '생활화'된 사람들은 아침 9시부터 밤늦게까지 가열차게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할 겁니다(물론 예외는 있겠죠). 이는 야근이 습관화된 개인은 나태하고 비난 받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의지력은 유한하고 한번 고갈되면 휴식과 영양소 공급을 통해 다시 차오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인간의 생리적 한계를 관리자와 직원들이 모두 인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야근이 잦은 직원들이 낮에 딴짓을 하는 이유는 의지력을 회복하기 전까지 인지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야근하면 당장의 생산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그 후에 발생하는 비생산성으로 인한 비용은 엄청납니다. 야근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얻은 생산성은 그 다음날 낮에 고스란히 빠져나갑니다. 업무가 많더라도 직원들에게 하루 8시간 열심히 일한 다음 저녁 6시에 칼같이 퇴근하여 잠을 푹 자게 해주는 것이 생산성에 훨씬 득이 됩니다.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것을 꼬깝게 보며 열심히 일하지 않는 직원이라 낙인 찍는 것은 어리석은 관리자의 단적인 모습이겠죠. 야근이 야근을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조치와 이를 통해 생산성의 질을 제고하는 것이 몇백 억원 짜리 시스템을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야근을 해야 합니까?


(*참고 논문)
Lost Sleep and Cyberloafing: Evidence From the Laboratory and a Daylight Saving Time Quasi-Experiment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