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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앞에 놓인 두 개의 접시에는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소고기가 담겨 있습니다. 한창 허기가 진 터라 빨리 그 고기를 맛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각 접시에는 라벨이 붙어 있는데 하나는 '75% 살코기', 다른 접시에는 '25% 지방'이라는 말이 적혀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두 개의 접시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75%가 살코기라는 말과 25%가 지방이라는 말은 사실 똑같은 의미입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똑같은 고기라고 판단할지라도 25% 지방인 고기보다는 75% 살코기를 선택하고자 할 겁니다. 왠지 그게 더 맛있고 건강에 더 좋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겠죠.
사실 이 실험은 심리학자 어윈 레빈(Irwin P. Levin)가 실시한 것인데, 그는 피실험자들은 고기를 시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기의 맛, 품질, 육즙의 양, 지방의 함유량 등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은 75% 살코기라고 쓰인 고기가 지방이 더 적고 맛있으며 품질이 좋고 육즙도 풍부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똑같은 고기인데도 75% 살코기인 고기와 25% 지방인 고기의 차이는 확연했습니다.이렇게 동일한 현상이나 사물이 '어떻게 포장되느냐'가 사람들의 선택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프레임 효과(Framing Effect)'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75% 살코기'인 고기와 '25% 지방'인 고기를 시식하고 나서의 평가는 과연 어떨까요? 다시 말해 동일한 대상이 긍정적으로 프레이밍되거나 부정적으로 프레이밍될 때, 그것을 경험하고 나서도 여전히 프레임의 영향을 받을까요? 라벨에 쓰인 내용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맛을 보기 때문에 75% 살코기인 고기와 25% 지방인 고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하겠지만, 레빈의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이번에도 라벨에 프레이밍되고 말았습니다. 시식하지 않을 때보다 그 차이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피실험자들은 75% 살코기의 맛, 품질, 지방과 육즙 함유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의 '혀'도 라벨이 만들어낸 프레이밍 효과를 없애지 못한 겁니다.
레빈은 실험 방식을 변형하여 라벨을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피실험자들에게 고기를 시식하도록 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이 시식을 마치고 나면 각자에게 75% 살코기인 고기를 먹었는지 25% 지방인 고기를 먹었는지를 알려주고 동일한 요소를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은 75% 살코기인 고기를 25% 지방인 고기보다 좋게 평가하긴 했지만 그 차이가 이전 실험 때보다 적었고, 특히 맛에 대한 평가에서는 25% 지방인 고기를 반대로 더 좋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프레이밍 효과는 여전히 피실험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통계 분석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레이밍 효과는 레빈의 실험 이외에 여러 연구에서 발견됩니다.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i)와 바바라 맥닐(Barbara McNeil)은 피실험자들에게 폐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와 수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한 집단에게는 수술 후 생존율이 68퍼센트라고 했고 다른 집단에게는 사망률이 32%라는 말을 전달했습니다. 결국 동일한 정보인데도 한쪽에는 생존에, 다른 쪽에게는 사망에 프레이밍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생존율이 68퍼센트라고 들은 피실험자들 중 44%가 방사선 치료 대신 수술을 택했습니다. 사망률로 프레이밍된 피실험자들은 고작 18%만 수술을 택했죠.
요즘 몇몇 회사에서 면접을 진행할 때 지원자의 이력서를 보지 않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력서에 적힌 학력이나 경력 사항으로 프레이밍되는 위험을 줄일 목적입니다. 물론 지원자의 외모, 어투, 옷차림 등이 면접관에게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 면접 결과가 영향을 받고 또 언젠가는 지원자의 이력서를 보게 될 터이고 그때 최초의 평가 결과를 수정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긴 하지만('어, 이 친구 학벌이 빵빵하잖아! 그런데 왜 면접에선 왜 그랬을까?'), 프레이밍 효과를 그나마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서 권장할 만합니다.
그러나 기존 직원들을 평가할 때는 웬만해서 프레이밍 효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상사가 부하직원의 역량(혹은 업적)을 평가할 때 어떤 측면으로 프레이밍되느냐에 따라 객관적으로 볼 때 비슷한 역량을 발휘하고 비슷한 성과를 달성하는 두 직원을 아주 다르게 평가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프레이밍 효과가 조직 운영에 시시하는 바입니다. 우연히 A직원이 열심히(그리고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하는 모습을 본 경우, 반대로 B직원은 업무가 많고 바쁜 상황에서 애인 만나러 칼퇴근하겠다는 말을 들은 경우, 상사의 마음 속에서 동일한 역량을 가진 두 직원은 서로 다르게 프레이밍됩니다.
연말에 두 명의 평가 양식을 앞에 둔 상사는 누구를 더 좋게 평가할까요? 장점에 프레이밍하여 평가할 경우와 단점을 틀로 잡고 평가할 때 그 결과는 일관적인 평가성향으로 수렴되지 못할 겁니다. 아마도 상사는 자신이 그런 것 따위에 프레이밍될 리 없다고 장담하겠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할 겁니다. 소위 '사람 보는 눈'의 시력은 그때그때 다르고 상사의 개인 성향에 따라 다름을 상사와 부하직원이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평가는 이래서 어렵고 그 결과를 신뢰하기가 또한 어렵습니다. 그래도 평가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신 분들은 제가 어떤 말을 할지 알 겁니다. 그러니, 이 질문의 답은 이제 여러분이 제시해 보면 어떨까요? ^^
(*참고 논문)
How Consumers Are Affected by the Framingof Attribute Information Before and AfterConsuming the Product
On the Elicitation of Preferences for Alternative Therap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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