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떨어지면 정권이 교체된다?   

2012. 2. 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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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정치의 흐름이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총선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느냐, 또 어느 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하느냐에 따라 경제 정책이 결정되고 정책의 실행 결과가 주식시장의 상승과 하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통령 후보들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간단히 말해 정권이 주가로 대표되는 경제 흐름을 결정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헌데 존 캐스티(John L. Casti)가 쓴 '대중의 직관(원제: Mood matters)'이라는 책을 읽으니 이런 통념과는 반대되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는 정권을 잡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동향이 주식시장을 좌우한다는 인과관계나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오히려 사회적 분위기의 측정지표라고 말할 수 있는 주식시장의 흐름이 정권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보통 사람들의 직관에 반하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즉, 경제 흐름이 정권을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캐스티의 주장은 애널리스트 로버트 프렉터(Robert Prechter)가 공개한 분석 결과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프렉터는 미국의 경우 "주식시장의 동향이 현직 대통령이나 여당이 승리하거나 패배할 가능성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주식시장의 상승세일 경우에 현직 대통령이 압도적 승리(landslide)를 거두어 연임을 했지만, 주식시장이 하락세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가까운 예로, 조지 부시가 앨 고어를 꺾으며(물론 가까스로 이겼지만) 재선에 성공할 때 다우존스 지수는 상승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뀔 때는 주식시장이 침체된 상황이었죠.

아래의 그래프가 프렉터가 제시한 근거입니다.



주식시장의 흐름은 사람들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느냐 비관적으로 보느냐,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라고 본다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회 분위기 형성에 기여했다고 여겨지는 지도자를 계속 두고 싶어한다는 것이 프렉터의 설명입니다. 반대로 주가가 연일 하락한다면 정책의 실패로 그런 상황에 일조했다고 생각되는 지도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고 싶어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특정 정책의 실행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욕구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정리합니다.

프렉터의 주장이 과연 우리나라에도 유효할까요? 그가 제시한 사례는 두 번까지 대통령의 연임이 허용되는 미국의 사례이지만,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1980년부터 2012년 1월까지 매월말의 코스피(KOSPI) 데이터를 구해보고, 역대 대통령의 재임 기간을 매핑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가 바로 그것입니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정권의 교체는 두 번 있었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이양될 때 한번,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이양될 때 또 한 번 있었죠. 먼저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 교체가 될 때의 주식시장의 흐름은 프렉터의 주장을 대변합니다. 1994년에 정점을 찍은 주가가 1998년까지 하락하는 흐름이 여실히 나타났고 그에 따라 정권이 바뀌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넘어갈 때는 프렉터의 주장과는 다릅니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주가가 크게 상승했지만 정권 후반부에는 크게 떨어졌죠. 그런데도 정권의 교체가 발생하지 않고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를 승계했습니다. 미국으로 치자면 연임에 성공한 셈이죠.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이양될 때는 어떤가요?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주가가 574를 기록했지만 임기말에는 1711을 찍음으로써 크게 상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프렉터의 주장과는 달리) 정권이 교체되고 말았죠.

이로써 프렉터의 주장, 즉 사회 분위기의 대표 지표라 할 수 있는 주식시장이 흐름이 정권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논리는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옳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프렉터의 분석 결과가 미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다른 나라에 일반화하여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이 미국과 비교해 규모가 작고 역사가 짧아 인위적인 여러 가지 조치나 외생변수에 의해 크게 좌우됨으로써 사회 분위기를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식시장의 흐름보다는 국내총생산(GDP)이 사회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지표로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래의 그래프와 같이 1980년부터 2010년까지의 GDP 데이터를 대통령 재임기간과 비교해 봤습니다.


(*GDP는 환율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위 그래프의 데이터는 인플레이션 효과를 제거하지 않은 것들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그래프를 보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를 들여다 본다는 의미에서는 환율과 인플레이션 효과를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그래프를 보면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유는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말에 터진 IMF 환란 사태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전부터 GDP가 큰 폭의 하락세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정권의 교체를 제법 오래 전부터 원했다는 것이죠.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이양될 때 GDP는 상승세에 있었다는 점,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 말기의 GDP 하락세는 정권의 교체를 예고했던 신호탄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기록한 GDP는 2010년까지는 수치상으로 양호하나 2011년에 GDP 성장률이 둔화됐다는 점(2010년 6.2%에서 2011년 3.6%로)과 2012년 한 해의 경제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 불안 요소입니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2012년 한 해의 주식시장의 흐름과 경제 지표가 2013년의 정권 교체 여부를 선행적으로 제시할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예상을 해 봅니다. 프렉터의 주장에 근거하여 제시할 수 있는 가설은 "주식시장을 비롯한 경제 지표의 흐름이 정권 교체를 결정한다"입니다. 물론 현재까지 터진 정권 실세들의 비리와 앞으로 터질 또다른 비리들이 큰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죠. 아직은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

프렉터의 주장이 미국의 사례에 근거한 것이고 또 주가지수를 바탕으로 했다는 한계가 있기에 우리나라에 꼭 들어맞는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렉터의 주장은 실제로 정권이 바뀌느냐 유지되느냐의 문제로 수용하기보다는 사회가 낙관적인 분위기를 탈 때는 현재의 정권에 점수를 주고, 반대로 비관적인 분위기가 사회를 점령할 때는 정권 교체의 욕구가 크게 상승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건이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프렉터와 래스티의 주장은 참신하고 흥미롭습니다. 그들의 자세한 주장을 들어보려면 앞에서 언급한 '대중의 직관'이란 책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사회 현상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방법으로 혜안을 얻을지도 모르니까요.

(*참고도서 : '대중의 직관')
(*참고기사 : Ask not what your candidate can do for the stock mark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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