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2021. 7. 1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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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만나지 말아야 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물난리에 전혀 피해 받지 않을 고지대의 뽀송뽀송한 집에 앉아 도로가 잠기고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위로 강물이 범람한다는 뉴스를 TV로 접할 때 느껴지는 이기적 안전감이랄까? 

 

원래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고, 하루라도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미는 더더욱 아니며(사람을 많이 만나면 나는 에너지가 급격히 고갈된다), 오래 전부터 혼자 일하며 ‘직주일체’의 업무 환경에 익숙해 있는 터이니 ‘대역병의 시기’는 내게 내적 지향의 삶을 고요하게 살아도 별 문제 없다는 윤허를 내린 듯 했다.  “코로나 때문에 이번 강의는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베트남 여행(2020년 1월)에서 돌아와 클라이언트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을 때는 마음 속으로 ‘아싸~’를 외쳤다. 갑자기 빈 시간을 어떤 호작질을 하며 놀지 궁리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다. 통장이 ‘텅장’이 될 때까지는.

 

신종플루나 사스, 메르스처럼 금세 지나가고 말 것이라 생각했던 코로나 19가 팬데믹으로 확대되면서 제법 차 있던 내 일정표는 어느새 새까만 취소선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아뿔싸, 일이 끊기고 만 것이었다! 대면을 해야 하는 강의나 워크숍을 코로나 시국에 누가 하려 하겠나? 컨설팅 역시 특성상 원격으로는 서비스가 곤란한 지라 뚝 끊기기는 매 한가지였다. 곧 나아지겠지,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놀기에 전념했지만, 4월에 이르러 역대급의 최저 한 달 소득(몇 십만 원)을 손에 쥐고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정지출 규모가 제법 되다 보니 이러다가 마이너스 대출 한도까지 다다르는 건 아닐까, 위기감이 엄습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놀아도 노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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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끊겨서 글을 씁니다 - 교보문고

“일이 끊겨서 글을 쓰고 책을 냈습니다”『일이 끊겨서 글을 씁니다』는 코로나 19로 인해 한순간에 일이 끊겨서 어쩔 수 없이 글쓰기로 견뎌야 했던 1년 6개월 남짓의 기록이다. 직업이 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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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은 재빠르게 변화에 적응했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은 줌(Zoom) 강의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기 시작했고 제법 많은 강의를 수주하는 듯 보였다. 유튜브를 지렛대 삼아 수십,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리며 코로나 때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일이 끊긴 시대에도 돈 벌 사람은 돈을 버는구나 싶었던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동시에 시기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난 뭘 해야 먹고 살지?”

 

몇년 전부터 나는 컨설팅이나 강의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고 싶었다. ‘유 대표’라는 진부한 직함 말고 ‘유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오던 터였다. 체력도 딸리기 시작하고 워낙 빛나는 재능을 지닌 이들이 많기에 컨설팅과 강의라는 궤도에서 천천히 하강하여 ‘유 작가’라는 활주로로 연착륙할 생각이었다. 그간 내가 낸 책과 번역서들이 연착륙에 도움이 되는 안정된 기류를 만들어 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고 했던가? 코로나 19라는 돌발변수가 튀어 나와 3 ~ 4개월이라는 단기간에 경착륙를 시도하라고 강제할 줄 누가 알았나? 나는 지면과의 충돌을 대비하며 작가로서 첫 헬멧을 급히 뒤집어 써야 했다.

 

내가 쓴 헬멧은 「주간 유정식」이었다. 경영을 주제로 한 글을 써서 주간지 형태로 발간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오래 전부터 가졌던 계획이었는데, 게으르기도 하고 다른 일로 바쁘기도 해서 미뤄두고 있었다. 어렴풋한 의도만 가졌던 터라 구체적인 발간 계획을 서둘러 마련해야 했다. 어떤 컨텐츠를 담을지, 외양 디자인은 어때야 하는지, 구독자는 어떻게 모집해야 하는지, 또 구독료는 얼마로 설정해야 하는지 등 막상 시작하려니 고려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다급하니 못할 것은 없었다. 내가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글쓰기가 큰 돈이 될 리는 만무했으나, 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텅장’이 울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 달을 좌충우돌하다가 2020년 4월 21일 화요일, 「주간 유정식」 1호가 200여 명의 구독자들에게 처음으로 발송되었다(나중에 구독자 수는 270여 명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어느덧 1년이 지나 50호(2021년 4월 13일)를 끝으로 시즌 1이 무사히 완간되었다.

 

매주 3편의 칼럼(200자 원고지 60매 이상)을 쓰는 일은 예상보다 매우 고됐다. 주중에 자료 조사를 하고 주말에 3편의 글을 쓰는 패턴이 50회나 반복됐고 휴일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게다가 도중에 출판사로부터 번역서 3권을 의뢰 받는 바람에 매일 토 나올 정도로 워드 프로그램과 씨름해야 했다. 무리를 한 나머지 나는 두어 번 크게 앓았고 구독자들께 양해를 구해 휴간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를 악물고 글을 썼다. 책 제목 그대로, 일이 끊겨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나는 글쓰기를 주무기로 꺼내 들었다. 독립해 컨설팅을 시작할 때 이름을 알리고 입지를 다질 목적으로 첫 책 『경영유감』을 썼고, 2007년에 무리해서 집을 사는 바람에 가계를 꾸려 나가기가 어려웠을 때는 단 3개월 만에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를 써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한눈 팔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2008년에 금융위기가 불어닥쳐 모든 산업이 불확실성에 휩싸일 때는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책을 씀으로써 경영계에서 ‘시나리오 플래닝 하면 유정식’이라는 네임 밸류를 선점했다. 

 

슬슬 컨설팅 수주건이 줄어들어 매출의 50% 밑으로 떨어지자 나는 ‘컨설팅은 한물 갔구나.’ 판단했다. 그때부터 나는 블로그를 개설해 매일 한 편씩 글을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경영의 시사점을 주는 논문이라면 뭐든 읽고서 그 내용에 내 생각을 더해 글을 썼던 것이다. 무려 5년 이상 매일 글쓰기를 지속한 결과로 탄생한 책이 『착각하는 CEO』다. 지금껏 내가 낸 책들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이 책 덕에 나는 출판계에서 경영서를 제법 잘 쓰는 사람으로 인정 받았다.

 

위기가 닥칠 때 나는 홍보나 영업을 강화하거나 다른 쪽으로 사업을 전환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었다. 허나 그러지 않고(또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글을 썼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리고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추락시키는 상황에서도 나는 왜 하고많은 것들 중에서 「주간 유정식」이란 헬멧을 뒤집어 썼을까?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글쓰기가 궁극적인 ‘내 일’임을 내 무의식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누가 “왜 글을 씁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내 일이니까요.”라고 답해야겠다는 것을.

 

 

일종의 직업병인지 아니면 놀고 있지 않다는 걸 만방에 변명하고 싶었는지, 나는 넷플릭스로 미드를 정주행하거나 누군가의 행동을 관찰할 때, 혹은 어딘가에서 우연히 글을 접하거나 지인과 일상적 대화를 나눌 때 등 그 모든 상황이 경영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찾으려 애썼다. 일이 끊긴 탓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는데, ‘열폭’하며 나를 까칠하게 만드는 것에 관해 쓰다 보니 까칠함이란 그저 삐딱한 감정이 아니라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감정 상태’라는 걸 차차 알게 됐다. 또한, 일이 끊겨 펑펑 남아 도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는 방법들 중 하나는 내 삶의 방식을 다시금 정리해 글로 남기는 것이었다. 이런 탐색과 해석과 정리의 결과물들이 ‘경영 일기’라는 곳간에 쌓였다가 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잠깐! ‘경영’이라는 말을 보고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단어잖아!”라고 단정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영은 ‘목표 달성을 위한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목표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그러니 기업 경영만 경영이 아니다. 가족에겐 ‘행복’이란 목표가 있기에 가족 경영 역시 경영이고, 개인에겐 각자의 목표가 있을 테니(돈, 명예,  권력, 행복 등) 개인 경영도 경영이다. 

 

일상의 오락거리나 이야기, 감정 등에서 ‘삶을 어떻게 경영할까?’란 질문의 답을 찾아 본 이 책이 독자 여러분의 삶을 훌륭하게 경영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제 ‘유정식이 그간 어떻게 코로나 위기를 글쓰기로 견뎌냈는지’  펼쳐 읽어 보자. 보장하건대 술술 잘 읽히리라.

 

2021년 여름

연희동에서 

 

(이 글은 신간 '일이 끊겨서 글을 씁니다'에 수록된 머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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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끊겨서 글을 쓰고 책을 냈습니다”『일이 끊겨서 글을 씁니다』는 코로나 19로 인해 한순간에 일이 끊겨서 어쩔 수 없이 글쓰기로 견뎌야 했던 1년 6개월 남짓의 기록이다. 직업이 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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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sm 12] My Room   

2009. 6. 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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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내 어둔 방의 불을 켠다.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고, 자켓을 벗어 옷장에 걸고,
냉장고를 열어 찬물을 한컵 들이킨다.

안경을 벗어 눈을 비비고, 이 방의 침묵을 깨뜨리려고 보지도 않을 TV를 켠다.
침대에 걸터 앉아 심각한 표정을 하고 뉴스를 전하는 여자앵커의 눈에
내 눈을 맞춘다. 그녀의 눈의 깜박임이 몇번인지 세어본다.
한번, 두번, 세번...
오늘도 몇몇이 무슨무슨 이유로 어찌어찌 했다는, 똑같은 포맷의
단신들을 들으며 그처럼 평이한 나의 하루를 잠깐 회상한다.

누구인지 모르는 전화가 온다.
"거기 어디어디 맞죠?"
잘못 걸린 전화가 요즘에 많아졌다. 그리고 대부분 같은 사람의 목소리다.
내가 싱가폴에 가 있는 동안 자동응답기에 여러 차례 녹음된 그 목소리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거짓쪽지를 전해준 탓이겠지.
"전화해요, 여기로" 
나는 잠시 웃음 몇 가닥을 바닥에 흘린다.

하루의 냄새가 밴 옷을 벗는다.
뜨거운 물을 온 몸에 쏟는다.
Ravel의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을 허밍으로 부르면서
내가 나의 밖으로 보여줘야 했던 거짓과 오만을 씻는다.
지금 이 순간은 본래의 나와 화해하는, 나만의 시간.

샤워를 하고 난 후 내 피부의 물기가 말라갈 때의 느낌이 좋다.
그 느낌과 함께하는 John Mills의 기타 소리가 좋다.

낮 동안 비어있던 방에 나 하나로 인해 엷은 생기가 돈다.
둘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만져주고, 내가 눈길을 줄, 이 빈방의 물건들,
나에게로 와 내 외로움을 닮아가는 것들, 그들이 나와 함께 있으니까.

내가 없는 동안, 이 빈 방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궁금해진다.
빈 방을 처음 들어설 때의 무거운 침묵은
아마도 소란스러움의 급격한 입막음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빈 방을 들어서면서 "잘 있었어?" 라고 말하기를 좋아하게 됐다.
짐짓 그것들이 경계를 풀고 다시 살아나 나에게 말을 걸어 주기를 바라는 듯이.

내가 밖에 있어도 철저히 나를 위해 준비된, 철저한 빈 방 하나 가졌다는 것은
삶이 나에게 준 얼마 안되는 행복감중에 하나다.

아, 그러고 보니 잊은 게 있다. 내 빨간 작은 차.
그 빈 차에도 인사하고 와야겠다.
"잘 있었니?" 라고.


** 11년 전 일기를 들춰보다가 뽑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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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비 속에서   

2008. 5. 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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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시작되던 날, 나는 바람이나 쐴 목적으로 차를 몰고서 한강둔치에 나갔다.  강 바람이 시원했다. 도시의 매연이 섞여있을 테지만 탁 트인 강가에서 맡는 바람 냄새는 그래도 싱그러웠다. 나는 의자 시트를 한껏 젖히고 거의 누운채로 책을 읽었다. 낯선 곳에서 책을 읽으니 단어 하나하나가 맛있게 씹혔다.

한동안 더운 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사위는 한껏 어두어지고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그리고 소나기 비슷한 비가 내렸다. 나는 책을 내려 놓고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굵은 빗방울들이 강물 위로 떨어져 강물과 하나 되는 모습과, 나뭇잎들이 무거운 비를 맞아 휘청대는 모습과, 자동차들이 일제히 윈도 블레이드를 작동시키는 모습과, 우산을 쓴 채 담배 연기를 뿜으며 강물을 바라보는 매점 주인의 모습을.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한쌍의 남녀가 보였다. 그들은 갑자기 내리는 비에 놀라서 고개를 숙인채 '아하하~' 소리치며 비를 피할 곳으로 뛰어 가고 있었다. 아직은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닌 듯했다. 아마 만난지 일주일 쯤? 남자는 여자의 비 맞는 모습이 안쓰러워 뭐라도 해주고 싶어하는 표정이었지만, 혹여 오해가 생길지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했다.

그 남자의 서툰 사랑처럼 5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여자의 어깨를 적시듯 5월이 가슴에 스며 들었다. 5월의 비를 조용히 맞으며 5월의 풀밭 위로 피어나는 풋풋한 사랑. 나는 곧잘 그랬듯이 옛 시절을 떠올려 그 풍경 위에 겹쳐 보았다.

이제 그 시절의 아픔은 강물처럼 희석되었다. 기억은 강물 따라 흘러갔고 그 시절의 그림자는 낙수 자국처럼 여기 남았다. 나는 책 읽기를 포기한 채 주룩주룩 차 창을 흐르는 빗물을 보며 이윽고 깨닫고 말았다. 이 비 그치면 더욱 굳어버릴 땅처럼 우리 기억은 물기 하나 없이 박제되고 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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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inuit.co.kr BlogIcon inuit 2008.05.10 23:05

    정말 5월이군요.
    많은 지나간 기억과 또 많은 다가올 기억들이 몰려있는 계절이기도 하지요.
    유정식님에게 특별한 계절이기도 한가봐요.
    5월, 행복하게 보내세요. ^^

    perm. |  mod/del. |  reply.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5.11 22:38 신고

      많은 분들도 그렇겠지만, 5월이 가장 기억에 남는 달이고, 가장 좋아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항상 5월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그러면 좀 심심하겠죠? inuit님도 행복한 5월 되세요.

  2. benhur 2009.07.12 23:39

    5월 하면 80년 대학입학하자마자 광주항쟁으로 대학공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상태에서 휴교되던 일. 어느 화창하고 벚꽃잎이 눈처럼 날리던 날 남녀학생들이 같이 봄소풍갔던 일. 한라산에 올라 엄청 큰 별들과 초원의 소들을 바라보던일. 어느 석가탄신일에 홀로 아차산에 올라 팔각정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우연히 합석한 불공나온 아주머니와 산아래 강물을 바라보며 같이 마시던 기억이 납니다

    perm. |  mod/del. |  reply.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9.07.13 00:42 신고

      네. 저도 5월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납니다. 대학시절에 미팅을 많이 다니던 생각도 나네요. ^^ 5월이 다시 오면 좋은 추억 만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