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압박감이 극에 달하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됩니다. 대학 입학을 위해 시험을 치르거나, 큰 계약을 따내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회사의 성과를 좌우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할 때 압박감 때문에 일을 그르치거나 좌절을 경험하는 일이 간혹 생기곤 합니다. 혹자는 압박감(특히 외부로부터)이 있어야 일이 잘 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긴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그저 느낌일 뿐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하게 되어 생산성은 높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일의 품질은 기대하기가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압박감이 큰 상황에서도 일을 잘 해내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의 비결은 압박감을 유유히 즐기는 것이라기보다는 몇 가지 방법을 통해 압박으로 인한 부정적인 효과를 줄이는 데 있습니다. 헨드리 와이싱어(Hendrie Weisinger)와 J.P. 폴리브-프라이(J.P. Pawliw-Fry)는 <Performing Under Pressure: The Science of Doing Your Best When It Matters Most>란 책을 통해 압박감이 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효과를 줄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10가지만 여기에 소개하겠습니다.





1. 또 다른 기회가 있다고 스스로를 상기시켜라

이번이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면 실패할 경우의 상황이 머리속을 압도하는 바람에 말 그대로 ‘얼어 버리고’ 말 겁니다. 인생은 길고 그런 기회는 다시 찾아온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방법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관점으로 상황을 인식하지 말고, 인생에 스쳐 지나가는 여러 가지 도전 중 하나라고 여기는 게 좋습니다. 그 도전이 아주 중요하다 해도 말입니다.


2.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맞춰라

마라톤 선수가 레이스를 완주하는 비결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할 때의 자기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업무의 최종 결과가 아니라 내가 지금 작성하는 보고서, 내가 지금 검색하는 자료, 내가 지금 참여한 회의에 집중해야 압박감을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높은 성과지표를 목표로 부여 받은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유용하리라 생각됩니다.


3.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라

‘만약 이러면 어떻게 할까?’라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막연한 불안감이 줄어들고 실질적인 대비책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죠. ‘설마 그런 일이 생기겠어?’라는 생각은 압박감 하에서 ‘일 못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일주일 안에 반드시 일을 끝내야 한다면, 그 기간 안에 일을 못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뭐가 있을까, 그런 사건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둬야 합니다.





4.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라

압박감이 큰 상황 하에서 사람들은 이런 저런 걱정이 많습니다. 헌데 그런 걱정들을 살펴보면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이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걱정해봤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은 3번 항목과 같이 대비책을 강구하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해낼 수 있을까에 집중하기 바랍니다.


5. 감각에 집중하라

압박감이 커지면 내가 지금 뭘 먹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떤 냄새를 맡는지가 무뎌지기 쉽고 그로 인해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길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의 변하는 모양을 관찰한다든지, 들꽃의 향기를 맡아 본다든지, 감동을 자극하는 영화를 본다든지 하면서 자신의 오감이 항상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생한 오감을 가질 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6. 음악을 들어라

이 조언은 5번과 연결되는데, 음악을 들으면 두려움과 초조함이 경감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수영선수 박태환이 경기 직전에 헤드폰을 끼고 나오는 이유가 있죠.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직전에는 보고자료를 연신 넘기며 초조해 하기보다는(이미 보고자료는 숙지했을 터이니) 이어폰을 끼고 평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기다리는 게 훨씬 낫습니다. 바로 실천해 보세요.





7. 속도를 늦춰라

두려움이 커지고 초조해지면 사람들은 속도를 높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 실험에서 압박감을 큰 상황을 조성하면 남들보다 과제를 더 빨리 완료하지만 실수를 더 많이 저지른다고 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기보다 곧바로 해법을 내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하는 것’입니다.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찬찬히 현재의 상황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8. 고무공을 주물러라

말 그대로 고무공을 주무르면 압박으로 인한 부정적인 효과가 경감된다고 합니다. 고무공을 왼손에 쥐고 주무르면, 뇌에서 잘 하나 못 하나를 의식적으로 감시하는 부분의 활동을 무디게 만드는 반면 무의식적인 반응을 통제하는 부분은 자극한다고 합니다. 사무실에 적당한 고무공(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은)을 하나 두고 초조해질 때마다 쥐락펴락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9. 압박이 큰 상황을 친구와 이야기하라

혼자 고민하지 말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친구(혹은 친한 동료)에게 이야기하면 자기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친구로부터 유용한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압박감 속에 있으면 판을 읽지 못하지만 바깥에서 볼 때는 판이 돌아가는 모습을 종종 꿰뚫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혹은 친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상황을 정리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10. 성공했던 기억을 떠올려라

슬럼프에 빠진 농구선수들을 회복시키는 방법 중 하나는 그 선수가 보였던 최고의 플레이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슬럼프는 역량의 저하 때문이 아니라 자신감의 저하 때문에 발생합니다. 과거에 비슷한 상황에서 일을 잘 해냈던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머리속에 그려보면(더 좋은 방법은 글로 써보면) 어떨까요? 지금의 상황도 잘 헤쳐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날 겁니다. 비록 금방은 아니겠지만요.



Comments

  1. Favicon of https://jesuslike.tistory.com BlogIcon Mind Hunter 2015.08.11 18:11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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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일이 코 앞에 다가왔을 때 일이 더 잘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압박이 가해질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결과물의 품질이 높다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도 일부러 마감일까지 기다렸다가 일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하지만 시간의 압박이 판단과 의사결정의 질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결과물의 품질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는 점을 안다면 그런 믿음은 그저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에서 비롯된다고 깨달을 겁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시간의 압박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참가자들에게 아이오아 갬블링 태스크(Iowa Gambling Task)라고 불리는 게임을 수행하게 한 마테오 셀라(Matteo Cella)와 동료들의 실험입니다. 이 게임은 컴퓨터 화면 상에 카드 데크 4개를 보여주고 하나의 데크에서 한 번에 한 장의 카드를 선택하게 합니다. 한 장을 뽑을 때마다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데, 4개의 데크 중 2개는 한 번에 따는 돈이 컸지만 그만큼 잃는 돈도 컸습니다. 나머지 2개의 데크는 따는 돈이 적은 대신에 잃는 돈도 적었죠. 그래서 이 게임에서 충분히 많은 수의 카드를 뽑아야 할 경우 '저수익 저위험' 데크가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고 그 데크에서 카드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이런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게임을 임한 참가자들은 카드를 한 장씩 뽑아가면서 이런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셀라는 카드를 빨리 뽑으라고 압박을 가할 때와 아무런 압박을 가하지 않을 때 참가자들이 돈을 따는 데에 유리한 데크를 얼마나 빨리 깨닫는지 보고자 했습니다. 셀라는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서 첫 번째 그룹에게는 카드를 2초 안에, 두 번째 그룹에게는 4초 안에, 세 번째 그룹에게는 시간 제한 없이 카드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시간 안에 카드를 뽑지 못하면 화면에 "너무 늦다"라는 메시지가 나타나게 하여 참가자에게 부담을 주었죠.

모두 100장의 카드를 뽑도록 한 후에 결과를 살펴보니, 모든 참가자들이 카드를 많이 뽑을수록 '좋은 데크'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압박을 받지 않은 참가자들이 2초 안에 카드를 뽑아야 했던 참가자들보다 '좋은 데크'에서 카드를 더 많이 선택했습니다. 반면 4초 그룹과는 차이가 없었고, 2초 그룹과 4초 그룹 사이에서도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는 '2초 내'라는 시간 압박이 참가자로 하여금 '좋은 데크'가 무엇인지 늦게 깨닫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하지만 '4초 내'라는 제약은 참가자들에게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았음을 의미). 시간의 압박이 가해질 때 판단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동일한 시간 제약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시간을 압박으로 여기도록 하느냐의 여부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또 다른 실험으로 규명되었습니다. 마이클 드돈노(Michael A. DeDonno)와 동료들은 셀라의 실험과 동일한 방법을 따르되 참가자들에게 2초라는 시간 제약을 다르게 느끼도록 했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각 카드를 2초 내에 뽑아야 했지만, 드돈노는 첫 번째 그룹에게 2초라는 시간이 게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충분하다고 일러준 반면, 두 번째 그룹에게는 2초라는 시간이 게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알려줬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시간을 서로 다르게 인지하도록 한 후에 100개의 카드를 뽑도록 하니, 결과에 상당한 차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인지한 그룹이 그렇게 인지하지 않은 그룹보다 '좋은 데크'에서 더 많은 카드를 선택했습니다. 똑같은 시간 제한이라도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드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역시 판단과 의사결정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였죠.

두 실험의 결과를 통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때와 상대적으로 시간적 압박을 느낄 때 모두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감일이 다 될 때까지 일을 미루는 것이 생산성과 결과물의 질을 높이기 위한 좋은 전략이 아닐뿐더러, 다른 이에게 시간적 압박을 가해야 보다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헛된 기대라는 점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해, 마감일이 닥쳐서 일을 해야 일이 잘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집중이 잘 된다는 느낌을 받을지는 몰라도 결과물의 질은 시간 여유를 가질 때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들은 조직의 의사결정 관행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내외부 환경이 급변할수록 직원들에게 빠른 판단과 빠른 행동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조직 전체에 순식간에 퍼집니다. '빨리빨리'가 직원들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수준을 넘어 버리면 빨리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의사결정의 목표로 둔갑하고 맙니다. 시간의 압박을 뚫고 나온 전략이나 제도는 빠른 시간 안에 수립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하기엔 충분할지 몰라도 그 수립 과정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비용을 치렀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둘러 마련한 전략이 삐걱거리거나 실패로 끝날 때 매우 촉박한 상황이었다 해도 적어도 한번쯤 차근차근 점검할 기회가 있었다고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냐의 여부는 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주는 압박을 압박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냉철함에 있습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일수록 시간적 압박의 결과물은 아닌지 찬찬히 뒤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논문)
Effects of decision-phase time constraints on emotion-based learning in the Iowa Gambling Task.
Perceived time pressure and the Iowa Gambling Task


Comments

  1. Favicon of http://oilpricewatch.tistory.com BlogIcon opw 2012.05.30 11:33

    마감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지나면 같은 혜택을 받을 수없습니다.라고 말하는 홈쇼핑이랑 비슷한 느낌이네요. 급하게 밀어내 제대로 판단할 기회를 뺏는것!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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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2.05.30 16:01

      맞습니다. 시간 압박을 주면 안 사도 될 물건을 사게 되지요. ^^

  2. Favicon of http://dogpigw.tistory.com/ BlogIcon 개뢰 2012.05.30 13:27

    IT업종이 극히 심한데.. 이런 글을 읽고 경영자들이 많이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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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2.05.30 16:01

      일부러 마감일을 타이트하게 설정하는 관행이 참 많죠.

    • Favicon of http://blog.daum.net/gdocument BlogIcon shg 2012.08.03 23:27

      경영진문제뿐일까요? 급하지 않으면 몸을 안움직이는 직원도 많습니다.

      뭣좀 업무지시를 하면 "이거 급한건가요?" 라고 따지면서 안하다가 정말로 급한상황에서 업무지시를 하면 "왜 이걸 지금 말하냐?" 라고 따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일을 조금씩 분할해서 타이트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일이 안굴러가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IT 업종을 망친건 경영진 뿐만 아니라, 개발자 문제도 의외로 많습니다.

  3. Favicon of http://blog.fujixerox.co.kr/ BlogIcon 한국후지제록스 2012.05.30 16:37

    정말 시간의 압박을 느낄 때는 정말 말씀하신대로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더라구요, 하지만 가끔은 마감이 코 앞에 닥쳤을 때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하죠.ㅋㅋㅋ 하지만 여유를 갖고 꼼꼼하게 작업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공감 많이 하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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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2.06.04 16:22

      그 초인적인 집중력이 일을 잘해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

  4. Favicon of http://blog.daum.net/gdocument BlogIcon shg 2012.08.03 23:22

    저의 생각은 다릅니다. 회사생활 해보신분은 아시겠지만, 기획팀에서 기획서가 내려져도, 이래저래 매번 변경되기 쉽상입니다. 하지만 데드라인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획팀에서도 기획서를 바꾸는것에 부담을 많이 느끼고, 더이상 기획서는 고칠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시간 여유가 많을때, 앞서서 기능구현 해봐야, 기획서가 매번 변경되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할때마다, "거봐 내가 뭐랬어!! 미리 해봐야 소용 없다니까!!" 라고 말하기 쉽상이고, 일정여유가 많으면 일부러 팽자팽자 놀다가, 마감이 임박할때 밤샘을 하면서 야근하는경우도 많습니다.

    시간 여유가 많을때, 작업해놓으면 기획서를 바꾸는경우가 많으니, 개발팀에서는 어쩔수없이 대응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방법입니다.

    전반적으로 글들이, 단순한 실험에 많이 의존하는데, 실제 회사에서는 여러사람과 인터렉션이 많습니다. 이러한 인터렉션은 결코 실험으로 재현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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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리 숫자끼리 더하거나 빼는 산수 문제가 '가로로' 제시될 때와 '세로로' 제시될 때 중에서 어느 때가 풀기 쉽습니까? 당연히 세로로 제시될 때가 풀기가 쉽고 정답률도 높습니다. 세로로 된 문제는 어느 숫자를 서로 더하고 빼야 하는지 명확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실수가 적고 푸는 속도도 빠릅니다. 간단히 말해, 문제를 푸는 사람들은 세로로 된 문제를 공간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 부담을 덜 느낍니다.

마르시 드카로(Marci S. DeCaro) 등의 심리학자들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로 문제와 세로 문제를 풀도록 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문제는 모듈러 연산으로 풀어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51 = 19 (mod 4) 라고 표현된 문제는 이렇게 풀어야 했습니다. 51에서 19를 뺀 숫자를 4로 나누어 떨어지면(나머지가 남지 않으면) '참',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고 답하면 됩니다. 이 예는 4로 나누어 떨어지기 때문에 '참'입니다.



학생들에게 모두 32문제를 풀도록 했는데, 그 중의 반은 가로로, 나머지 반은 세로로 제시했습니다. 또한, 8 = 3 (mod 2) 처럼 한 자리 숫자로만 구성돼 있어서 쉬운 문제와, 두 자리 숫자들로 이뤄진데가 뺄셈을 위해 십의 자리에서 '빌려오기'를 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각각 절반씩 섞었습니다.

연구자들은 2가지 실험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하나는 '사회적인 압력'의 유무였습니다. 학생들 중 절반에게는 컴퓨터 모니터 상에 주어지는 문제에 참/거짓 여부를 답하는 모습이 비디오로 촬영되어 다른 이들에게 보여진다고 말했고, 또한 가상의 '파트너'와 합산된 점수가 평균보다 20% 높을 때 5달러를 주겠다고 말하고서는 그 파트너가 이미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거짓 정보를 학생에게 제시했습니다. 당연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압박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실험 상황은 '소리 높여 떠들기' 여부였습니다. 학생들 중 절반에게 문제를 풀면서 그 과정을 크게 말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중얼거리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하라고 요청했죠.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은 가능한 한 문제를 정확하고 빨리 풀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총 7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수행한 결과, 재미있는 데이터가 도출됐습니다. 먼저, 세로로 된 어려운 문제를 소리 내지 않고 풀 때는 사회적인 압력이 큰 상황에서 정답률이 높았습니다. 반면 말을 하면서 문제를 푼 학생들은 사회적인 압력의 유무와 관련 없이 정답률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공간적으로 인식되는 세로 문제는 학생들의 작업기억을 압도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압력이 오히려 문제 풀이의 성과를 향상시킨 것이라고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반면, 가로로 된 어려운 문제를 풀 때는 사회적 압력이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디오가 촬영되고 가상의 파트너가 이미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상황이 주어질 때 학생들은 사회적 압력이 낮은 경우보다 저조한 정답률을 기록했습니다. 가로 문제는 언어와 관련된 작업기억을 장악하고 사회적 압력이 그것을 더욱 가중했다는 뜻이겠죠. 헌데,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들이 가로 문제를 풀 때 소리내어 말할 경우에는 정답률이 사회적 압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말을 하지 않고 풀 때보다 문제 푸는 속도가 약간 더 걸리긴 했지만, 높은 정답률로 보상을 받은 것이죠.

이 실험은 현재 여러 곳에서 실시되는 시험 방식이 과연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옳게 평가하는 방법일까 한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여러 과목의 어려운 문제를 여러 개 풀어야 하고(게다가 꼼짝없이 아무 말도 못하고), 그 결과가 대학 입학 여부와 같은 사회적 압력으로 이어질 경우에 학생들이 달성한 점수는 작업기억이 얼마나 압도되지 않았느냐를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압박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자기 자신에게 피드백할 때 높은 성과를 내는 학생들이 정작 시험 점수가 저조하여 남들에게 능력을 올바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경우를 현재의 성적 측정 방식(시험)이 방조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시험이 주는 압박감을 잘 견디는 것도 갖춰야 할 능력이라지만, 그 시험 과정에서 진짜로 실력 있는 사람은 버리는 구조는 아닐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실험이 기업에게 주는 시사점은 지난 번 글('압박 면접이 우수인재를 쫓아낸다')에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압박감이 높은 상황에서 우수한 사람을 골라낼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압박 면접과 비슷하게 빠른 시간 내에 해법을 내야 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외환 트레이더처럼 초를 다투며 빠르게 의사결정 내려야 하는 경우는 일반 조직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대개는 문제의 원인을 다각도로 들여다보며 해법을 마련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따라서 조직에서 필요한 인재는 압박 면접 하에서 기지를 잘 발휘하여 높은 점수를 얻는 사람은 적어도 아닙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압박은 필요하다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회적 압박은 내적 동기를 저하시키기 때문에 성과의 양과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는 여러 연구 결과가 지지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 구성원을 채용하거나 평가하는 방법이 압박을 극대화하는 상황에서의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이라면, 좋은 사람을 놓치거나 방치하지는 않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우수인재는 없는 게 아니라 다만 발견하지 못할 뿐입니다. 또한 이미 여러분의 조직 내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 유정식 씀

(*참고논문 : Diagnosing and alleviating the impact of performance pressure on mathematical problem solving )

Comments

  1. 우주가 그런거 같습니다. 2012.02.16 18:56

    우주가 어떤.. 평형(?)을 이루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제각각 다른 능력을 줬다는 거 말입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이런 말씀하실땐 사실.. 콧방귀를 꼈었습니다만,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했었습니다만, 최근에 일련의 과학결과물이나, 제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한 것을 보자니.. 역시 어르신들 말씀이 옳다고 느낀다는 것!

    물론, 본문과는 직접적 연관은 없는 얘기입니다만, 확실히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확신이 들어서.. 이런 댓글 달게 됐습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에 일련의 솎아내기.. 생사여탈 가름은 좀.. 문제가 심각해보이네요. 좀, 엉뚱한 얘깁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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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2.02.16 20:11 신고

      능력을 알아보는 눈도 능력이죠. 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능력을 과신하곤 합니다. ^^




현대인 중에는 "바쁘다, 바빠", 이런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언가에 쫓기듯이 일을 하고, 하나의 일을 하면서도 다른 일 걱정에 안절부절하느라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활하게 멀티 태스킹을 해야만 일을 '열심히', '잘' 하는 것만 같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모두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대인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조급증'을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조급증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면 로버트 레빈이 제안하는 다음의 항목들을 가지고 스스로를 측정해 보기 바랍니다. '매우 그렇다'라고 동의하는 항목의 개수를 세어보세요. 긴가민가하거나 가끔 해당되는 항목은 '아니다'로 판단하면 됩니다.

1. 시계를 자주 들여다 본다
2. 다른 사람보다 말을 빨리 하는 편이다
3. 다른 사람이 말을 길게 하면 말을 자르고 끼어들고 싶다
4. 다른 사람이 나의 말을 자르지 못하게 한다

5. 다른 사람보다 식사를 빨리 하는 편이다
6.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천천히 걸으라고 할 때가 많다
7. 앞에 천천히 가는 차가 있으면 자주 경적을 울리는 편이다
8. 시간 엄수를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9. 무엇을 계획할 때 목록을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 하는 일 없이 앉아 있으면 불안해진다
11. 음식점이나 은행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면 포기하고 돌아선다
12. 다른 사람으로부터 서두르지 말라고 '자주' 주의를 받는다


아마 여러분은 대부분 위의 항목 중 몇 가지에 해당될 겁니다. 하지만 9개에서 12개의 항목에 '매우 그렇다'는 답변을 했다면 여러분은 '조급증' 증세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급증이 심각하면 누군가가 시간적인 압박을 가하지 않았는데도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죠. 강박관념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마이어 프리드먼과 레이 로젠먼은 조급함이 심한 사람들이 관상동맥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조급증을 일으키는 시간적 압박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회심리학자인 조나단 프리드먼과 도널드 에드워스는 실험을 통해서 적정한 수준의 시긴적인 압박은 삶의 만족을 이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시간적인 압박감이 최고조에 달해 매우 조급한 상태가 되면 일에 대한 만족도가 당연히 떨어지겠죠. 흥미로운 것은 지나치게 시간적인 부담이 없어서 조급할 필요가 사라지면 삶이 권태롭고 지루해져서 역시 만족도가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가장 만족도가 높을 때가 적당한 시간적 압박이 있는 상태였음을 발견했습니다.

오늘은 월요일입니다. 아마도 어제 밤에 출근해서 일할 걱정으로 '회사 가기 싫다'란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가 째깍째깍거리는 일요일 밤은 가장 불편한 시간 중 하나죠.

시간 압박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말합니다. 압박을 받되 그렇다고 너무 조급해 하지 않는 월요일이 되길 바랍니다. "한 시간이라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말한 찰스 다윈의 말을 새기면서 느긋한 tea time을 가져보세요. ^^


(*참고도서 :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 로버트 레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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