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의 유혹에 빠지다   

2017. 6. 29. 09:04



2017년 6월 29일(목) 유정식의 경영일기


“어떻게 해야 사무실이 빨리 나갈까요?”

좀더 코지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서 지금 쓰고 있는 사무실을 계약기간보다 일찍 복덕방에 내놓았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문의하는 이들이 거의 없자 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렇게 푸념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열이면 열 나에게 이런 저런 미신을 동원해 보라고 조언했다. 영화 프로듀서로 일하는 분은 잘 나가는 고깃집에서 가위를 훔쳐다가 거꾸로 매달아 놓으라고 하고, H군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성씨 100개를 써서 신발장 안에 붙여두라고 했다. 대체 이런 미신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번 해볼까 싶어 인터넷에서 성씨 100개를 검색하기도 했다.




과학의 공식적인 반대말은 비과학이지만, 흔히 비과학은 미신이라는 말로 대표된다. 과학적인 근거 없이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믿음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요새 옛날 물건에 관심이 많아 중고물건을 사고파는 사이트에서 1976년에 나온 괘종시계를 6만원 주고 샀는데, 오래된 탓인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멈추곤 했다. H군은 “죽어 있는 시계를 달아두면 안돼요.”라며 내게 핀잔을 줬다. 내심 고리짝 같은 물건이 마음에 안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H군은 2년이나 지난 잡지를 가리키며 “철 지난 잡지를 책상 위에 두면 안돼요”, “변기 뚜껑은 꼭 닫아둬야 해요”, “사람키보다 높은 화초를 옆에 두면 안돼요” 등등 내가 보기엔 미신처럼 들리는 조언을 수없이 했다. 본인 책상은 늘 지저분하게 두면서 나에게만 핀잔이다.


H군보다 미모에서 살짝 밀리는 유명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요즘 여성 인권 향상의 리더로 떠올랐으나 그녀 역시 확고한 미신을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해 보인다. 스칼렛은 어느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선배 배우인 새뮤얼 잭슨에게서 감기가 옳음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감기에서 낫고 싶지 않았어요. 유명스타의 감기라서 왠지 가치 있게 느껴졌어요.”라고 고백하며 그 자리에서 휴지에 코를 풀었다. 새뮤얼 잭슨이 옮긴 감기로 여배우 스칼렛이 코를 풀었으니 그 얼마나 가치 있겠는가? 그 휴지는 자선행사에서 5,300달러에 팔렸다. 유명인의 감기라고 해서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구조가 특별히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물론 나라도 그 휴지를 사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미신을 더욱 신봉할까? 그것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통제감을 확보하려는 인간 나름의 방어책이라는 의견이 있다. 텔아비브 대학교의 지오라 케이난은 불확실하고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서 미신적인 사고방식에 집착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스라엘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응답자들의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미사일 공격 위험이 높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미신적인 사고에 더 많이 의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인 어부들 사이에 ‘물고기를 먹을 때 뒤집지 마라’, ‘뱃일 나가는 어부에게 인사를 하지 마라’와 같은 이런저런 금기가 많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무실이 나가지 않아 초조해진 나도 미신의 유혹에 빠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미신은 그 자체로는 비과학이지만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경감시키고 통제감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인류학자 리처드 소시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던 2000년대 초반에 종교를 믿지 않는 이스라엘 여성들에게 상황을 개선시킬 방법을 물었다. 그랬더니 35%의 여성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라고 답했고, 실제로 찬송가를 부르는 여성들이 테러의 공포를 덜 느꼈다고 한다. 심리학자 리산 다미쉬는 ‘행운의 골프공’이라는 말을 들은 참가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5%나 더 공을 잘 친다는 결론을 냈다. 운이 함께 할 경우 자신감이 배가되고 실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미신의 효과는 분명 존재한다.


친하게 지내는 헤어디자이너의 미용실에 갈 일을 만들어야겠다. 그 분야에서 잘 나가는 분이니 미용실에서 가위 하나 훔쳐와서 사무실에 달아볼까? 한심하게 도둑질할 생각이나 하다니, 어느덧 나도 미신의 노예가 된 모양이다. 이게 다 H군 때문이다.



Comments




우리는 흔히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득할 때는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고 조언합니다. 또한, 상대방이 나의 눈의 피하는 것 같으면 '나를 똑바로 보라'고 요구하기도 하죠. 우리가 시선 일치를 의견 일치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 설득에 도움이 되는 방법일까요?


프란세스 첸(Frances S. Chen)과 줄리아 민슨(Julia A. Minson)은 시선 일치가 설득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미신'임을 밝히는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첸과 민슨은 프라이브루크 대학에 다니는 20명의 학생들에게 대학 등록금 문제, 여성에 대한 일자리 쿼터 설정 문제 등 논란이 많은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각 이슈에 대해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동영상을 시청하도록 했죠. 7개의 동영상 중 3개는 화자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고 나머지 4개는 화자가 카메라 정면에서 약간 비껴 서서 말하는 동영상이었습니다. 첸과 민슨은 실험 참가자들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여 동영상을 시청하는 동안 참가자들이 화자의 어느 부분을 주로 바라보는지를 측정했습니다. 하나의 동영상 시청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은 각 이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다시 써내야 했는데, 시청 전과 시청 후의 의견 변화를 살피기 위함이었죠.


참가자들은 화자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과 일치할수록 화자의 눈을 더 많이 바라보는 경향을 나타냈습니다. 이 결과만 보면 눈을 응시하는 것이 설득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정치사회적 이슈에 관해 화자의 의견과 얼마나 동의하는지의 정도를 통제한 상태에서 분석해 보니, 화자의 눈을 많이 바라본 참가자일수록 화자의 의견에 덜 동조했습니다. 이런 경향은 화자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한 동영상에서 더 크게 나타났죠. 따라서, 시선 응시가 설득의 방법으로(특히 반대되는 의견을 설득시키려 할 때) 적합하지 않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죠.


동일한 정치사회적 이슈를 가지고 실시한 후속 실험에서 첸과 민슨은 참가자들을 둘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동영상에 나오는 화자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들으라고 지시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화자의 입에 초점을 맞추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랬더니, 화자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설득의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눈 조건'의 참가자들이 '입 조건'의 참가자들보다 화자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이 덜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화자의 눈을 바라볼수록 자기 의견을 더 공고히 하기 때문에 설득되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 실험에 의해서 상대방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은 설득의 방법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미신이었다는 것이죠. 상대방이 이미 나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할 때는 시선 일치가 의견 일치를 공고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만, 의견이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을 일으키도록 자극합니다. 상대방에게 맞서거나 그 상황에서 도피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설득은 물건너간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앞으로 설득할 때는 상대방에게 정면으로 서거나 앉기보다는 약간 비켜 서거나 앉아보면 어떨까요? 상대방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보다는 시선을 적절하게 분산시켰다가(입, 귀, 머리카락 등으로) 가끔 눈을 맞추는 것이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은 채 부드럽게 나의 의견을 '침투'시키는 방법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Chen, F. S., Minson, J. A., Schöne, M., & Heinrichs, M. (2013). In the Eye of the Beholder Eye Contact Increases Resistance to Persuasion. Psychological science, 0956797613491968.



Comments

  1. Favicon of http://http://blog.naver.com/phoats2005 BlogIcon 가온마루 2013.10.14 18:27

    저의 경험에 비춰보면 대립한 상태에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건 도발(건방짐)의 제스쳐가 되는 것 같더군요.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한다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도 상황에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참 실용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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