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그 새빨간 거짓말   

2010. 9. 10. 09:00


며칠 전, 지하철을 타기 위해 플랫폼에 서있다가 이런 광고를 봤습니다. 정확한 토씨는 잊었지만,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우리 회사 FC(파이낸셜 컨설턴트, 보험영업인)들 중 4분의 1은 월 500만원 이상을 법니다"

보험회사의 핵심역량은 보험상품의 설계보다는 보험영업인들의 영업력에 달렸습니다. 사실 보험상품에서 차별화를 꾀하기가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있는 보험영업인을 잘 모집하고 교육시켜서 그들을 오랫동안 영업을 하도록 해야 회사로서 이득이죠.

그래서 보험영업인들이 얼마나 회사에 오래 남아 일하느냐를 측정하는 '정착율'이란 지표는 보험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표로 관리됩니다. 당연히 위의 광고 카피는 우수한 영업인력을 유인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겠죠?

헌데, 보험영업인의 4분의 1, 즉 25%가 월수입 500만원 이상이란 말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할까요? 전 좀 의심이 들더군요. 그래서 통계에 젬병이지만, 한번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그 회사 보험영업인들의 월수입 분포가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해 봤습니다. 하지만 정규분포를 그리려면 월수입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알아야 합니다. 위의 광고문구만 보고는 어떤 분포를 따르는지 알기가 불가능하죠.

그래서 전 '표준정규분포(평균이 0이고 표준편차가 1인 정규분포)'를 먼저 상정한 다음에 이렇게 저렇게 해서(trial & error 방식으로) 대략 다음과 같은 정규분포를 따를 것이라 결론을 내렸답니다.

 월수입 분포 추정 결과 

평균 : 약 300만원    
표준편차 : 약 300만원인 정규분포

이걸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규분포로 추정한 월수입 분포)


이 그림에서 오른쪽에 파랗게 빗금쳐진 부분이 전체의 25%, 즉 4분의 1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500만원 이상의 월수입을 올리는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왼쪽에 빨갛게 빗금쳐진 부분입니다. 그것도 전체의 25%를 차지하는데 그들의 수입은 보다시피 100만원 이하입니다. 게다가 월수입이 마이너스인 사람도 상당히 많이 존재합니다(약 16%의 사람들에 해당).

월수입이 500만원 이상인 사람이 4분의 1이나 된다는 광고 카피의 이면에는 월수가 100만원도 안 되거나 오히려 회사에 돈을 내고 다니는(즉 월수입이 마이너스인) 사람도 있음을 이 그림이 보여줍니다. 물론 애초에 정규분포를 잘못 추정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 모르죠. 하지만 통계를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해서 광고를 보는 사람들을 현혹시킬 의도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보험영업인들의 월수입 분포가 정규분포를 따를 거라는 위의 가정이 과연 옳을까요? 우리는 보통 아주 잘 버는 사람과 아주 못 버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중간 정도 버는 사람들이 가장 많으리라는 '정규분포식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종 모양'의 그래프를 머리 속에 그리곤 하죠.

하지만 실제의 분포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블로그들의 RSS구독자수 분포를 그려보면, 극소수의 블로그는 구독자수가 매우 많은 반면, 대부분의 블로그들은 구독자수가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 나타납니다. 소위 '승자 독식 현상'이 그림으로 그려지죠. (이와 같은 현상을 예전에 포스팅한 적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보험영업인들의 월수입 분포도 RSS구독자수 분포처럼 '승자 독식 현상'으로 나타나진 않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아래의 그림처럼 분포가 그려집니다. 

(손으로 그리다보니 그림이 이상하네요. '승자독식형' 분포를 가정하여 그린 그래프)


먼저 이 그래프가 매끄럽게 연속선으로 그려진 탓에 월수입이 100~500만원 사이에 있는 사람도 꽤 많다고 착각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세요. 이 부분(100~500만원 사이)에 찍히는 점들은 조밀하지 못합니다. '밀도'로 본다면 100만원 이하인 쪽(빨갛게 표시된 부분)이 더 조밀하게 점들이 모여 있지요.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이 그림도 역시 추측에 불과하지만, 정규분포로 추정할 때보다 월수입이 1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빨갛게 빗금쳐진 부분)이 더 조밀하게 존재함을 암시합니다. 500만원 이상 버는 사람이 25%나 된다는 선전의 뒷면에는 '100만원도 못버는 사람들이 50% 혹은 60% 이상이나 된다'는 사실이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짐작이지만, 의심을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는 3가지의 거짓말이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걸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만원도 제대로 못 버는데도, 상위 25%인 사람들이 500만원을 버니까 중간 정도만 하면 3~400만원은 벌 거라면서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는 건 아닌지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평균 연봉이 1억 원입니다."라는 말은 그 자체가 거짓은 아닙니다. 평균이란 통계치가 쓰이지 말아야 할 곳에 쓴 사람이 바로 거짓말쟁이입니다.

통계에 속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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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Favicon of http://freesearch.pe.kr BlogIcon 고감자 2010.09.10 09:46

    통계에 속지 않기 위해서 통계공부가 필요하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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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www.itgling.com BlogIcon 잇글링 2010.09.10 10:08

    [잇글링] 음헤헤님이 이 글을 [알아두면 유용한 통계자료 사이트들]의 아랫글로 연결하셨습니다. (보러가기 : http://www.itgling.com/spot/95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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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바 2010.09.10 11:33

    전에 다니던 회사가 국내 기업중 임원 포함 평균연봉 10위에 든 적이 있어서 직원들이 깜짝 놀란적이 있던게 생각나네요. 직원들은 아니 우리회사 임원들 월급이 그렇게 높다는 말인가 하고 말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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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흠.. 2010.09.10 11:45

    FC가 4명이라면 단 1명만 500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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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avicon of http://eilesalve.com/blog BlogIcon 사념체미카엘 2010.09.10 12:30

    통계라는 녀석은 참 신기한 녀석이죠. 무언가를 위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지표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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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Neon 2010.09.10 14:57

    그래프를 좀 일관되게 그리셔야 할듯. 특히 x,y축의 범례를 아주 혼동되기 쉽게 그려놓으신듯 합니다.

    실제 정규분포 그래프의 범례를 바꿔서 소득% 그래프를 그려도 두번째 그래프와 매우 흡사한 그래프가 나올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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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avicon of http://naya7931.tistory.com BlogIcon 버드나무 2010.09.11 11:55

    뉴욕생명 광고를 보셨네요.

    영업에 소질이 맞는 사람들이야 500만원이 아니라 그 이상도 벌 수 있는 거고.. 아닌 사람들은 다른 일을 찾는 게 더 낫겠죠.. 일단 승자독식 그래프,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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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Favicon of http://juneyin.info BlogIcon 준인 2010.09.11 21:14

    대학에서 통계교수의 수업을 듣고 통계가 얼마나 허황되게 쓰일 수 있는지 보여주더라구요. 절대로 "방송"에서 하는 통계 조사를 신뢰하지 말고 비판적으로 보라고 하더군요. 예를 들면 전화 응답의 경우 거의 쓸모 없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게 대부분이고 서면 조사도 비밀스런 공간에서 한 조사가 훨신 정확하다고 하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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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0.09.12 23:28 신고

      보여주고싶은 것만 보여주는 통계는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검증 불가능'한 통계는 점술과 다를 바 없습니다.

비판이 '뒷다리 잡는 거'라구요?   

2010. 5. 27. 10:02

다음과 같은 광고가 있습니다.

OOO 샴푸을 사용하면 두피 트러블을 일으키는 피지의 97%를 제거해서 탈모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습니다. 지금 OOO를 사용해 보세요.

여러분은 이 광고를 보고 '이 샴푸가 좋긴 좋은 모양이네'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구입은 하지 않겠지만, 이 제품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될
겁니다
겁니다. 최소한 부정적인 느낌은 받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게 만드는 것, 이것이 광고의 노림수죠.


광고는 본디 시간적, 공간적 제약조건 때문에 가능한 한 함축적이고 '가슴에 꽂히는' 표현으로 제품의 장점을 홍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세부 정보가 생략되기 마련이죠. 제품의 세부 사항을 일일이 설명했다가는 광고에 드는 비용도 엄청날 뿐더러 소비자도 외면하고 말 겁니다. 하지만 그 덕에 자세한 제품 정보가 광고에서 생략되어도 좋다는 것이 용인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광고를 볼 때마다 가끔은 '비판적 사고'를 가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제품을 구입하려는 계획이 있다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먼저 '피지의 97%'라는 문구를 주목하면, 특별히 이 샴푸가 아니라 다른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97%의 피지를 제거할지 모릅니다. 하다 못해 일반 비누를 써도 97% 이상의 피지를 씻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광고엔 다른 제품과의 비교가 쏙 빠졌기 때문에 충분히 의심이 되는 대목입니다.

피지를 제거하는 효과를 인정하더라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피지를 과도하게 제거하면 외부에서 오는 불순물에 대한 피부 저항력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피부에 분비되는 면역 물질이 피지와 함께 씻겨 버려서 오히려 두피 트러블이 더 심화될지 모릅니다. 역시 이런 이야기는 광고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탈모를 예방한다'는 대목도 의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꼭 이 샴푸를 사용해야만 탈모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광고에서는 은연 중 '이 샴푸가 아니면 탈모를 예방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소비자를 몰고가려 합니다. 하지만 이 샴푸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탈모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더 많습니다. 

탈모 예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샴푸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예방법을 동원할 겁니다.그래서 이 샴푸가 탈모 예방에 기여한 바는 거의 없는데도 "이 샴푸가 쓸모가 있긴 하군"이라고 오인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점은 기업의 의사결정자나 관리자들은 "이 시스템을 설치하면 회사의 생산성이 20% 향상됩니다", "OOO 방식을 채택하면 소비자 불만이 크게 줄 겁니다" 라는 식으로 혁신과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비판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주장대로 아웃풋이 나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순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거나 다른 방법을 써도 똑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지 말고 그 이면에 숨은 세부 사항을 따져 묻는 비판적 사고가 꼭 필요합니다.

'비판'이란 말의 뉘앙스 때문인지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남의 뒷다리나 잡는 일'이라고 폄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비아냥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결점'을 숨기려는 반사작용은 아닐까요? 

비판은 비난이 아닙니다. 비판은 '옳고 그름을 가려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비판적 사고는 옳은 의사결정을 위해,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고방식이고, '남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속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 장치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엔 이러한 방어 매커니즘이 작동 중입니까?

(참고도서 : '비판적 사고력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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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럼블터너랭 2010.05.28 10:53

    유대표님,
    유대표님께서 요즘 아이폰만 사랑하시는지 메일링 안 해주시네요..^^

    조직에서도 그렇지만 우선은 인간관계에서 보면
    비판이라 하면,독립적이고 순수하게 보지 못하고,비판을 하는 사람에 대해 재 비판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너는 뭐가 잘나서 비판하냐...뭐 그런식의....

    저도 비판을 잘(?) 하고 받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perm. |  mod/del. |  reply.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10.05.31 00:12 신고

      이메일링은 많이 안 읽어서 요즘엔 안 보내고 있습니다. 스팸 처리 되나 봅니다. ^^ 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업은 비판이 자유롭지 못하죠. 비판은 곧 도전으로 인식되는 모양입니다. 깨뜨려야 할 조직문화의 병폐죠.


(사진 : 유정식)


이제 첫발을 내딛는 1인기업 컨설턴트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브랜드를 널리 알릴 수 있을까를 매일매일 고심할 것이다. 여기저기 인맥을 통해서 자신이 새로 시작한 사업을 설명하거나 다른 이에게 홍보도 부탁하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1인기업 컨설턴트는 브랜드를 알리려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돈을 들여 광고 좀 하는 것이 어떨까?’ 란 생각에 다다르기도 한다. 누구나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광고를 올릴 수 있는 매체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신문, 잡지, 인터넷 포털 등 돈만 좀 쓸 수 있다면 광고 올릴 곳이 없어서 광고를 못하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신문사, 특히 경제신문사에서 소위 ‘무슨무슨 경영대상’ 이라는 상을 만들어 놓고서 찬조금을 내면 기업탐방기사 형식으로 신문에 게재해 주겠다며 접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보통 300만원 정도를 내면 A4용지로 2분의 1 정도의 기사에 대표자 사진을 올려 주겠다고 말하는데, 신문이 발행되면 회사 홍보가 엄청나게 될 것이라며 유혹하기 일쑤다.

신문사가 언제부터 ‘상(償)’ 가지고 장난쳤는지 모르겠지만, 제발 언론의 본분이나 제대로 지켜주기 바란다. 창업한지 6개월도 안된 업체에게 ‘컨설팅 대상’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안 된다.

몇 년 전인가 나도 비슷한 꾐에 속아 아까운 돈을 날린 적이 있었다. 어디서 알았는지 모 경영관련 잡지사 기자가 “선생님의 명성을 익히 들었다. 만나 뵙고 컨설턴트로서 기업경영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관해 인터뷰를 좀 했으면 한다.” 라고 전화를 해 왔다. 그러면서 자기네 잡지가 시장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은근히 내세우며 나의 응낙을 재촉했다.

그 때 난 명성이랄 것은 전혀 없는 신출내기 1인기업 컨설턴트에 불과했다. 그러니 내 주제로는 “예끼, 이 사람아, 난 아직 햇병아리 컨설턴트야. 다른 유명한 분이나 찾아보게나.” 라고 대꾸해주며 전화를 끊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때는 내 눈에 뭐가 씌었는지 그런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야, 이것 봐라. 내가 활동 좀 하니까 꽤 알려졌나 봐.” 라는 그야말로 제 주제도 모른 채 한껏 거만을 떨고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러니 “그럽시다. 만납시다.” 라고 할 수밖에.

진짜로 나는 세상 무서운 것 모르는 철부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순수하게 인터뷰인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자가 와서 이것저것 묻고 사진도 펑펑 찍어대는 분위기에 한껏 고조되어, 있는 생각 없는 생각 다 끄집어 내어 답변을 하던 내 모습, 지금 떠올려도 얼굴이 확확 달아오른다.

“찬조금조로 우리 잡지 50부만 구입해 주십시오. 청구서는 곧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 기자가 인터뷰를 끝내고 자기를 뜨기 전에 내던진 이 말 한마디를 듣고 나서야, 내가 속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통수를 둔기로 세게 맞은 듯, 기자가 가고 난 뒤에도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다 먹고 난 후에 바퀴벌레를 씹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보름 뒤에 받은 문제의 잡지에는 내 기사가 다른 특집기사에 밀려 귀퉁이에 외로이 게재되어 있었다. 달랑 한 페이지로 말이다. 사진은 왜 그렇게 못생기게 나왔는지, 자다가 일어난 표정의 얼굴이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50권의 잡지더미 사이에 삐죽 나온 청구서. 화가 치민 나는 50권이나 되는 잡지를 모두 쓰레기통에 처넣고야 말았다.

나는 평상시 광고의 효과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TV에서, 신문에서, 지하철에서, 하다못해 화장실 안에서까지 광고가 넘쳐나는 요즘, 누가 하루 동안 본 광고를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제 광고는 죽었다.’ 라며 호기 있게 떠들고 다닌 나였기에, 분노가 더 극에 달했다.

그 뒤로도, H경제신문사, D신문사, F신문사 등에서 기획기사를 써주겠다는 전화가 종종 왔다. 당연히 ‘No!’ 라고 말했다. 상대방은 내가 단호하게 대답하는 것에 약간은 놀란 듯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봐, 당신들이 선전 안 해줘도 대단히, 무척이나 잘 되니까 걱정 안 해주면 안되겠니?” 이렇게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말이다.

1인기업 컨설턴트를 하고 있거나 꿈꾸고 있는 당신은 광고 따위는 절대로 하지 말기를 바란다. 컨설턴트는 물건 파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을 파는 사람이다. 자신의 전문성은 광고를 통해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은 이 분야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라는 기사를 보고, “야, 이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 한번 연락해서 컨설팅을 맡겨 볼까?”, 라고 생각하는 고객이 있을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1인기업 컨설턴트 지망생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구태여 1인기업하느라 애쓸 생각 말고 어디 안정적인 직장이나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몇십만 원이 됐든, 몇백만 원이 됐든 광고에는 절대 지출하지 말라. 그럴 돈 있으면 본인의 전문성과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사서 만나는 고객들에게 한 권씩 선물로 주거나,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로 교육 프로그램을 한두 번 제공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전문가처럼 보일 수 있도록 본인의 외모관리에 투자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명색이 컨설팅한다는 사람이 광고와 같이 누구나 생각하기 쉬운 단순한 방법에 의존하면 쓰겠는가? 머리를 굴리면 광고가 아니래도 더 큰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많다.

광고의 효과를 얻으면서도 돈 한 푼 안 드는 방법을 하나 알려 준다면, 어디라도 좋으니 잡지 같은 매체에 자신의 칼럼을 지속적으로 연재하라. 1인기업 컨설턴트로 출사표를 던졌다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그동안 숨겨왔던 본인의 전문성을 글을 통해 유감 없이 나타내보라. 본인의 글을 어디에선가 보게 될 고객이 당신의 전문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낯 간지러운 광고보다는 고객들이 정말 궁금해하고 답답해 하는 문제에 대하여 본인의 생각을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써 내려간 글을 통해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여라. 그러면 ‘돈이 되는’ 프로젝트를 머지 않아 따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한 개 두 개 쌓인 글을 묶어서 근사한 책으로도 낼 수 있으니 본인의 이력관리상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끝으로, 내가 아는 모 컨설턴트가 컨설팅 업체를 차리면서 돈을 내고 모 경제지에 PR기사를 올렸다.

OOO 컨설팅을 주력 사업으로 해 온 'OOO사’는 OOO 대표 체제로 조직 개편 후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으로부터 높은 만족 도의 피드백을 받고 있다. 현장 중심의 '노력형 CEO'로 정평이 나있는 OOO 대표는 "OOO사는 업계 최고의 컨설팅 전문가들을 확보하고 실질적이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적용함으로 써 고객의 미래지향적 가치창조를 위한 장기적인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후략)

창업한지 1개월도 안 된 회사다. 피식, 웃음만 나온다. 돈 드는 광고는 절대로 하지 마라.

Comments

  1. Favicon of http://songkang.tistory.com BlogIcon 구월산 2008.09.27 01:25

    인터뷰 한번에 50권이라니..참 숭악한 상술이군요.유대표님의 1기업 컨설팅 사례는 여러모로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군요.

    perm. |  mod/del. |  reply.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09.27 12:42 신고

      프리랜서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곧 시장에서 1인기업의 role model로 구월산님을 뵙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고맙습니다.

  2. Favicon of http://www.sungkong.com BlogIcon 섬기는리더 2008.10.23 05:20

    읽으면서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1인기업이 자신의 전문성을 판매한다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perm. |  mod/del. |  reply.
    • Favicon of https://infuture.kr BlogIcon 유정식 2008.10.24 09:33 신고

      전문성이 아니라, 광고나 다른 변칙적인 것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더군요. 감사합니다.

  3. BlogIcon 디자이너 2012.10.29 18:16

    이제 1인 디자인 기업으로 활동하려는 제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글인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perm. |  mod/del. |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