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감의 방정식   

2016.06.03 09:46




“회사 일에서 아무런 성취감을 못 느끼겠습니다.” 상담하러 온 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크게 한숨을 쉬며 이렇게 물었다. 글로벌 기업에서 상당히 높은 연봉을 받고 다양한 근무 경험과 풍부한 복지 혜택을 누리는 직원인 그가 왜 회사 업무에서 성취감을 얻지 못하는 걸까? 이유를 물으니 김씨가 대답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우리 회사는 좋은 곳이죠. 하지만 제가 하는 업무가 팀의 목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모르겠어요. 업무량도 들쭉날쭉이고 언제 제 일을 마무리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겠습니다. 아이디어를 내면 시키는 일이나 잘 하라고 핀잔 받기 일쑤죠.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으니까 제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가 없죠.”


그의 말을 찬찬히 음미하던 나는 성취감이 세 개의 변수로 구성된 방정식임을 문득 깨달았다. 사전에서 성취감을 찾으면 ‘목적한 바를 이룰 때 느끼는 감정’으로 정의돼 있다. 여기에서 성취감을 이루는 첫 번째 변수인 ‘달성감’를 발견할 수 있다. 스스로 정한 목표라 해도 달성도가 70~80퍼센트에서 그친다면 성취감은커녕 씁쓸한 감정을 느끼고 만다. 업무량이 들쭉날쭉이고 일이 대체 언제 어디에서 마무리되는지 알 수 없던 김씨는 매일 실패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100퍼센트를 달성했다고 해서 가슴 뿌듯한 성취감을 경험할까? 일을 주도하고 재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남이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수행했다면 성취감이 솟아날까? 영어 시험에 100점을 받았지만 부모의 강압적 교육의 결과라면 아이가 느낄 감정은 부모를 화나게 만들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성취감의 두 번째 변수는 ‘자발성’이다. 일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자율성을 상실하면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는가?


달성감이 충분히 높고 자발성을 발휘한 결과라 해도 그것만으론 성취감을 느끼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성취감의 가장 중요한 변수인 ‘일의 의미’가 빠졌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자신의 업무가 팀의 목표에 어떻게 연계되는지, 고객에게 얼마나 윤택한 영향을 미치는지, 본인의 경력계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갈피를 못잡아 일의 의미를 일찌감치 상실한 직원들이 우리 회사에 얼마나 많을까? 특히 자신이 기여한 성과가 고객의 삶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성취감 이전에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홍보하고 팔던 옥시의 직원들의 현재 심경을 짐작해 보라. ‘나쁜 성과’는 성취감을 남김없이 무너뜨린다.


그렇다면 기업에서 ‘달성감 x 자발성 x 일의 의미’라고 정의되는 성취감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달성감을 끌어 올리려면 직원들을 채근하기 이전에 여러 업무를 지시할 때 우선순위와 함께 구체적인 결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어 실력을 높여라’는 말보다 ‘문법보다는 듣기를 보강하라’는 피드백이 훨씬 달성하고자 하는 의지를 끌어올리는 것과 같다. 회사 업무면 뭐든지 다 중요하다고 말하거나 우선순위를 자꾸 바꾼다면 말 그대로 직원은 ‘돌아 버리고’ 말 것이다. 또한 광범위하고 모호한 목표를 제시하기보다는 단계별로 세부목표를 세우도록 해야 성취감을 경험할 기회를 늘릴 수 있다.




자발성을 높이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권한이양을 통해 직원들을 해당 업무의 주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직원들을 어린 아이로 여기며 신뢰하지 않는 리더는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며 시시콜콜 간섭하는 일에만 몰두하기 마련이다. 일의 진척과 효과보다는 보고서를 쓰고 결재를 받는 일 때문에 늘 패배감에 젖어 사는 직원들은 월급 받는 것만이 유일한 낙일 것이다. 설령 업무가 잘못되어 낭패에 빠졌다고 해서 바로 벌을 준다면 자율성을 발휘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강력한 신호를 주는 것이니 매우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의 의미를 직원들에게 늘 주지시켜야 한다. 물론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그저 나사만 돌리던 찰리 채플린을 떠올려 보라. 자신의 일이 어떤 결과물로 이어지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업무 동기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처럼 재무 성과에 집착하여 직원들에게 ‘나쁜 성과’를 강요하는 것부터 버려야 한다. 환경보호를 위해 ‘제발 우리 옷을 사지 말라’는 의류업체 파타고니아의 직원들은 일의 의미를 늘 상기함으로써 누구보다 성취감이 높지 않을까?


하버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테레사 에머빌레는 15년 간 직원들이 직장에서 느끼는 행복의 원천을 연구한 후 이렇게 결론지었다. “직원들의 행복을 파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성취감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성취감이 빠진다면 제아무리 연봉이나 복지 혜택이 좋고 회사 이름이 번듯하더라도 좀비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 이 글은 한겨레신문 2016년 6월 3일자에 실린 저의 기고문입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