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짚고 텔레파시를 흉내내며 ‘너에게 내 생각을 전달할 테니 맞혀 봐’ 하며 놀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공상과학영화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텔레파시의 전형은 영화 <아바타>에서 찾을 수 있다. 알다시피 언옵타늄이라는 희귀광물을 놓고 원주민인 나비족과 인간들은 처음에는 협력하다가 나중에는 전쟁까지 벌이게 된다. 영화에서 캡슐 속에 들어간 주인공은 센서를 통해 자신의 뇌에서 만들어진 생각을 아바타의 뇌에 전송하고, 아바타는 그 생각에 맞춰 팔다리를 움직이거나 감정을 그대로 ‘전이’ 받는다. 아마도 많은 관객들은 텔레파시가 두 개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서로의 감각과 감정들을 잡음 없이 이어주는 모습을 보며 ‘저건 영화니까 가능하지.’라고 치부했을 것 같다. 


하지만 텔레파시는 초능력이 아니라 과학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텔레파시에 관하여 다양한 연구 결과를 쏟아내고 있다. 인간의 뇌는 전기를 띠는데, 여러 생각들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뇌 속의 전자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일종의 라디오파를 공중에 방출한다. 이것이 바로 텔레파시다. 물론 그 강도가 너무나 미약해서 멀리 전송되지 못하고 금세 여러 잡음 때문에 왜곡되어 버린다. 설사 잡음 없이 타인에게 내 생각을 보냈다 하더라도 그 전파를 해독할 능력이 인간에겐 없다. 

 




그러나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 생각만으로 전화를 걸 수 있고 자동차를 운전할 수도 있고 멋진 글을 쓸 수도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피실험자에게 ‘뇌전도’ 스캔 센서가 여러 개 달린 헬맷을 씌우고 가방 사진을 보여주면, 컴퓨터는 100만 분의 1초마다 피실험자의 생각을 읽어내 그가 가방을 보는 중이라고 알아 맞힐 수 있다. UC 버클리의 브라이언 파슬리는 피실험자가 머리 속으로 어떤 단어를 떠올리면 컴퓨터로 그 단어를 맞히는 실험에 성공했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연구자들은 뇌전도 스캔을 이용해 생각만으로 1분에 5~10자를 입력할 수 있는 장치를 무역박람회에 출품한 바 있다.


이런 기술은 뇌졸중이나 루게릭병으로 전신이 마비된 환자들이 컴퓨터를 통해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용도로 활용이 제한되지만, 미래에는 거추장스러운 헬맷을 쓰지 않고 뇌 속에 칩을 심는 방식으로 텔레파시를 일상화할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키보드나 마우스 없이 생각만으로 이메일을 작성하고 멀리 떨어진 친구와 채팅을 할 수 있고, 작곡가들은 떠오르는 악상을 기록하느라 악보를 펼쳐 들거나 녹음기를 켜지 않아도 컴퓨터에 바로 악보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시에도 텔레파시가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 총성과 폭발음 때문에 소대장의 명령이 전달되지 않거나 오해될 가능성을 텔레파시가 완벽히 없애주기 때문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과학자들의 성과는 현재의 스마트폰만큼이나 텔레파시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시대로 차츰 전진하고 있다.





텔레파시가 실용화된다면 가장 큰 매력은 멀리 떨어진 대상에게 내 생각을 전송한다는 점이다. 듀크 대학교의 미겔 니코랠리스는 뇌 속에 칩이 심어진 원숭이에게 트레드밀을 돌리도록 한 다음 인터넷에 연결하여 멀리 일본 도쿄의 과학자들에게 전송했다. 그랬더니 네트워크에 연결된 로봇이 원숭이의 걸음걸이를 똑같이 재현했다. 생물체와 기계 사이의 연결에 성공한 니코랠리스는 생물체 사이의 연결 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붉은빛을 볼 때마다 레버를 누르도록 쥐를 훈련시켰는데, 그 신호를 브라질의 나타우에 있는 다른 쥐에게 전송하니 붉은빛을 보지 않았는데도 열의 일곱 번꼴로 레버를 누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술이 정교해지면 롤러코스터 타는 나의 느낌을 미국의 친구가 고스란히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텔레파시는 더 이상 공상과학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때문에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 머리에 전송된 타인의 생각을 내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가 ‘나’인지 불분명해질지 모른다. 유전공학의 경우처럼 머지않아 텔레파시의 윤리를 논하게 될 것이니 미리 대비해두자.



(*위 글은 월간 샘터 4월호에 게재된 저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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