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피오리나가 망쳐버린 HP   

2011. 5. 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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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대 초반에는 보상을 차별적으로 하면 직원들의 동기를 끌어올려 회사 성과에 기여하도록 만든다는 논리가 막강한 힘을 얻을 무렵이었습니다. 다국적 기업인 휴렛 팩커드(HP)의 경영진도 업계 분위기에 편승하여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그들은 전면적으로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pay for performance)을 도입하려는 조치를 유보하고 차별적인 보상이 과연 효과적인지를 검증해 볼 만큼 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13가지 종류의 서로 다른 보상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팀 성과 기반의 보상, 개인 스킬 기반의 보상, 이익 공유(profit sharing) 등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미국을 포함한 6개 국가에 이 보상 프로그램들을 시험적으로 운영해 봤죠. 실험을 통해 회사의 성과에 기여하는 보상 프로그램이 발견되면 그것을 전면적으로 도입하자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시험적으로 운영한 13개의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의 효과는 어땠을까요? 애석하게도 실험을 시행한지 3년만에 모든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HP의 경영진들이 직원들과 인터뷰와 설문을 진행하고 생산과 관련한 데이터를 분석한 후에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의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비어 교수와 밴더빌트 대학의 마크 캐논 교수도 HP의 데이터를 리뷰하고 직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여 왜 HP 경영진이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을 폐기할 수밖에 없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연구 결과,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은 (적어도 초기에는) 회사 성과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여러 지사 중에서 샌디에고 지사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지사에 적용된 보상 프로그램은 팀 성과 기반의 보상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 6개월 동안에 금세 효과를 나타냈죠. 이 지사는 목표 달성도를 Level 1, 2, 3의 3단계로 구분했는데, 거의 모든 팀이 Level 2 이상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관리자들은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왔습니다. 거의 모든 팀이 목표를 초과 달성했기에 예상보다 많은 성과급이 지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첫 번째 문제였죠. 그래서 샌디에고의 경영진은 목표가 너무 낮게 설정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서 목표를 상향 조정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죠. 목표를 올려버리면 그동안 받았던 성과급을 못 받을 게 뻔했습니다. 관리자들은 일보다는 성과급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는 직원들을 보면서 우려를 나타냈죠.

게다가 팀 성과 기반의 보상 방식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일으켰습니다. 예를 들어 부품이 늦게 입고된다든지 입고된 부품에 크게 하자가 발견된 탓에 '조립 부서' 직원들이 성과급을 못 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외부요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부서는 거의 없었죠. 이러한 외부요인의 효과를 감안하기 위해서 성과 목표를 재조정하는 일 역시 관리자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습니다. 도대체 외부요인을 어디까지 인정해 줘야 하는지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죠.

또한 능력이 좀 떨어져 보이는 직원을 자기 팀에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기주의도 발견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능력이 저조한 직원이 팀에 들어오면 팀 성과가 떨어지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성과급을 덜 받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죠. 특히 고성과자로 이뤄진 팀에서 이런 '벽'이 높았습니다. 이러한 벽은 사람들의 순환을 막아서 자연스러운 지식과 경험의 공유가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엔 회사 성과에 악영향을 줄 것이 눈에 훤했습니다. 새 보상 프로그램이 신뢰와 협력을 저해한다고 판단한 샌디에고 지사는 결국 1년 만에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을 폐기했습니다. 다른 지사나 공장에서도 3년 안에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시켰죠.

우리는 HP의 사례에서 3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그 효과를 사전에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HP 경영진은 현명하게도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의 효과를 떠벌리는 업계의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네 조직문화와 업무 프로세스에 적합한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하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은 좋은 효과 못지 않게 부작용도 큽니다. 득보다 실이 크다면 아무리 유행하는 기법이라고 해도 '증거에 기반하여' 꿋꿋이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용기겠죠.

두 번째로 배울 점은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의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HP처럼 도입 초기에는 회사 성과가 잠시 상승할 수 있겠지만, 성과급에 익숙해지면 다시 원래로 회복합니다. 여기에 구성원들이 겪어야 할 스트레스, 갈등, 불신, 비협조 등을 비용으로 환산해 보면 상승한 회사 성과가 과연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죠. 구성원들의 고통은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의 병으로 자라나서 성과를 갉아먹을지 모릅니다.

세 번째 시사점은 증거를 무시하는 경영자 하나가 조직문화를 망친다는 것입니다. 1990년대 초에 HP 경영진들이 애써 "차별적 보상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는 증거를 확보했지만 그 유명한(?) 칼리 피오리나가 1999년에 CEO로 부임하면서 전면적인 차별적 보상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야심 만만한 그녀는 과거의 증거를 무시하고 보상폭이 큰 성과급이 회사의 성과를 견인하는 동력이라고 굳게 믿었고, '인간 경영'을 표방하던 HP의 이사회는 당시 실추된 HP의 위상을 그녀가 끌어올릴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그녀의 결정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알다시피 HP는 인간 중심의 회사라는 좋은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말았죠.

여러분의 회사가 현재 새로운 제도나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한다면, HP 사례가 시사하는 이 세 가지 교훈을 충분히 염두에 둔 후에 일을 진행하기 바랍니다. 믿음이 사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면 지금 벌이는 일의 매몰비용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바로 중단하기 바랍니다. 그게 진정한 용기이고 중용입니다.


(*참고논문 : PROMISE AND PERIL IN IMPLEMENTING PAY-FOR-PERFORMANCE )
http://hbswk.hbs.edu/archive/34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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