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이직을 계획하던 나는 모 컨설팅 회사의 임원과 면접을 보게 됐다. 그 회사는 국내 유수의 그룹사의 일원으로서 그룹 내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른바 ‘인하우스 컨설팅사’였다. 임원은 내게 물었다.
“우리 그룹의 핵심역량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그 회사를 들어가도 그만 안 들어가도 그만이었다. 당시 다니던 컨설팅사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자리잡고 있던 중이었고 파트너로 승진하겠다는 당찬 포부까지 가졌던 터였다. 그저 나의 ‘시장 가격’이 어느 정도인가를 테스트해 보려는 요량으로 헤드헌팅 사의 면접 제안을 수락했었다. 나는 거침 없이 대답했다.
“핵심역량이라고 할 만한 게 과연 있습니까? 이렇게 규모가 커진 건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어쩌면 정치적인 상황을 잘 활용한 걸 핵심역량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임원은 당황한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결과는 어땠냐고? 당연히 떨어졌다. 그래도 내심 2차 면접까지는 가길 원했던 나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었지만 “채용되어 일을 하게 되면 고객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발생시킬 거라고 판단한 것 같다”는 헤드헌터의 말을 듣고서 서운하던 마음을 싹 비워냈다. .
이 책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를 감수하면서 15년 전의 일이 새삼 떠오른 까닭은 구글이라면 내 당돌한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해서다. 구글이었다면 면접관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꼼꼼히 기록하게 한 후에 다른 면접관이 그 기록을 보며 재차 판단하게 했을 터이고 무엇보다 한번의 인터뷰로 나를 불합격시키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내가 적임자가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저자가 소개하듯이 구글의 면접 과정은 매우 천천히 이루어진다. 면접관 한 사람의 판단에 의해 우수인재를 초기에 놓치거나 형편없는 지원자를 뽑게 되는 실패를 막기 위해 심사숙고한다. 구글이 ‘자기복제 재능 머신’을 창조하고 계속 진화를 거듭하는 까닭은 남들은 모르는 특별한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달팽이처럼 느린 속도로 인재를 거르고 또 거르는, 그래서 때로는 지원자를 지치게도 만드는 우직한 방법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비록 업무가 마비되는 한이 있어도 적임자를 찾을 때까지 수십 번의 면접을 마다하지 않는다. 많은 기업이 구글의 ‘사람 운영(People Operation)’ 비법을 알아도 못 베끼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무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헤드헌팅 사에 의존하고 두 세 번의 면접으로 적당한 역량과 적당한 경력을 갖춘 사람을 빨리 뽑는 게 기업들 대부분의 현실이니 말이다.
구글은 절대 추측하거나 예단하지 않는다. 새로운 인사제도나 규정을 만들 때 반드시 실험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따른다. 의학계에 ‘근거중심 의학’이란 말이 있듯이 구글은 ‘근거중심 인사’를 실천한다. 구글의 ‘인사 실험법’은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하다. 여러 가지 조건이 동일한 두 개의 그룹을 선정한 다음 한쪽 그룹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다른쪽 그룹에는 특정 조치를 취해서 두 그룹 간의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피는 것이 전부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사 실험의 백미는 ‘관리자의 자질은 팀 성과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라는, 직원들에게 널리 퍼진 미신을 깨뜨렸다는 데 있다. 최고의 관리자와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은 최악의 관리자를 모시는 직원들에 비해 높은 성과를 나타내고 이직률도 낮았기 때문이다. 어떤 직원이 사직서를 낸다면 그건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나쁜 관리자를 떠나는 것임을 구글은 엄밀한 실험과 분석을 통해 규명했다.
구글의 인사는 관리가 아니다. 과학이다. 이 점이 구글의 사람 운영 비법을 알아도 못하는 두 번째 이유인데, 많은 기업들이 특성상 인사는 계량적인 관리가 어렵다고 간주하는 탓에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외면한다. 그래서 하다 못해 고된 과제를 끝낸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선물을 줘야 하는지 아니면 그만큼의 돈으로 줘야 하는지 결정하는 사안에도 왈가왈부 추측이 난무하고 지지부진하다. 의미를 기억해내는 데 있어 선물이 돈보다 효과가 높다는 것을 밝힌 구글처럼 정량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실험 한 번이면 논란이 깨끗이 정리될 텐데 말이다.
이런 실험과 면밀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 운영 부서를 매우 새로운 방식으로 편성한 데 있다. 독특하게도 구글은 인사에 잔뼈가 굵은 사람 뿐만 아니라 전략 컨설턴트 출신과 수학, 물리학, 심리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사람을 팀원으로 구성한다.
구글은 학계의 연구를 활용하는 데에도 앞서간다. 베스트셀러 <넛지>를 읽은 리더들은 많겠지만 정책 실행에 응용한 리더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구글은 직원들이 자신도 모르게 좀더 건강에 좋은 음식을 찾도록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넛지를 실험하고 있다. 식당의 접시 크기를 작게 한다든지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식품은 불투명한 용기에 담는다든지 하는 조치는 정밀한 실험 과정을 거쳐 시행되었다.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을 토대로 ‘라즐로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인사의 지향을 명확하게 설정한 부분을 읽던 나는 저자에게 존경심마저 들었다. 구글에서는 책이 장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성과를 높이는 실천적 지혜로 승화된다. 이것이 구글의 사람 운영 비법을 알아도 못하는 세 번째 이유가 아닐까?
저자 라즐로 복
이 책에서 독자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고 가장 논란을 일으킬 만한 부분은 보상 부분이 아닐까 싶다. 구글은 공정한 보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우수인재가 보통인재의 몇 사람분을 수행한다면 우수인재에게 몇 사람분의 연봉을 지급하는 게 공정한 보상이라고 주장한다. 우수인재가 회사를 나가는 까닭은 그가 기여하는 성과에 비해 보상은 턱없이 낮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내부 공정성’이라는 이유로 우수인재라 할지라도 그저 보통인재보다 조금 더 많이 보상하는 기업들은 소위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경력사원들에게는 높은 연봉을 약속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그 우수인재가 자신의 가치를 온전히 보상 받을 방법은 회사를 그만두는 것뿐이다. 모 컨설팅 사와의 면접 후에 나는 프로젝트를 연달아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던 차였다. 새로 입사한 동료의 책상을 지나던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그것은 연봉 계약서였다. 거기엔 동료가 받기로 한 연봉 액수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당시 내가 받던 연봉의 1.5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헛웃음이 나오더니 급기야 분노가 치밀었다. 그 동료는 컨설팅 경력도 없고 현업 경험도 전무한 초보였다.
내가 적극적으로 이직을 계획했던 것은 그때부터였고 6개월 후 나는 다른 회사로 옮겨 갔다. 물론 그 동료보다 더 많은 연봉으로. 구글은 동일업무, 동일직급이라 해도 성과의 차이에 따라 확연하게 차등을 두는 보상 방식을 추구한다. 아마도 내부 공정성이란 올가미에 묶인 기업들은 이러한 구글의 사람 운영 비법을 알아도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
감수를 위해 원고를 읽어가던 내 눈에 처음부터 걸리던 말은 ‘사람 운영’이란 단어였다. 그냥 ‘인사관리’ 혹은 ‘인적자원 관리’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사람 운영이라고 했을까? 직역이 과한 것일까? 이런 의문은 책을 읽어가면서 차차 해소되었다. 많은 이들이 ‘사람 운영’을 ’사람을 운영한다’라는 문장으로 해석하겠지만, 나는 ‘사람이 운영한다’라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직원뿐만 아니라 그들 가족의 행복을 함께 염려하며, 직원의 기대를 앞서 발굴하고 만족시켜주고, 하루하루가 끝없는 놀라움의 연속으로 만들어 주고, 결국 직원이 ‘인사의 열반’에서 자신의 역량을 말 그대로 마음껏 ‘운영’하도록 돕는 것이 구글이 추구하는 인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인사 분야의 컨설턴트이다보니 ‘선진 기업의 사례’를 자주 요청 받는다. 그때마다 난감하다. 내부의 비밀을 어떻게 공개하겠는가? 이제 더 이상 다른 곳에서 사례를 구하지 말고 이 책을 읽어라. 인사 담당자들의 숱한 고민들을 이미 구글 역시 했고 독창적인 해법으로 좋은 성과를 거뒀으니까 말이다. 진짜로 놀라운 것은 자신들의 비결을 이 책에 상세히 공개했다는 것이다. 일찌기 이런 책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구글의 사람 운영 비법을 알고도 못하는, 더 이상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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