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이 나쁜 행위를 오히려 조장한다?   

2012. 2.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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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인 유리 그니지(Uri Gneezy)와 알도 루스티치니(Aldo Rustichini)는 벌금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20주 동안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실험 대상으로 삼은 곳은 이스라엘 하이파 시내에 위치한 11개의 사설 탁아소들이었죠. 탁아소의 운영시간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였습니다. 몇몇 엄마들이 직장일로 인해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일이 있었고 그 때문에 탁아소 직원 중 한 명이 초과근무를 해야 했지만, 늦은 것에 대한 벌금은 없었습니다.

그니지와 루스티치니는 4주 동안 엄마들이 몇 시에 아이를 찾아가는지 살펴보고 그 중 지각건수가 얼마나 되는지 기록했습니다. 4주 후에 그들은 11곳의 탁아소 중 7곳의 엄마들에게 아이를 10분 이상 늦게 찾아 갈 경우 10세겔 (약 3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나중에 비용을 합산하여 청구하겠다고 알렸습니다. 비교를 위해서 나머지 4곳의 탁아소에는 벌금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죠.



벌금을 도입한 7곳의 탁아소에서 과연 지각건수가 감소했을까요? 예상과 달리 지각이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확연하게 발견되었습니다. 벌금을 부과하기 전에는 탁아소 한 곳당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7~8명의 엄마들이 지각하곤 했는데, 벌금 제도를 도입한 첫째 주에 11건, 둘째 주에 14건으로 오르더니 한 달이 지나자 20건에 육박했습니다. 벌금 제도를 운영한 12주 동안 지각건수는 대략 14~18건 사이를 왔다 갔다 했죠. 벌금이 지각을 줄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벌금 제도를 폐지한 이후(17주차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벌금을 없앴으니 예전처럼 7~8건 정도로 지각건수가 내려 오리라 기대했지만, 한 번 늘어난 지각건수를 줄어들 줄 몰랐습니다. 벌금 제도를 운영할 때와 변함이 없었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벌금은 바람하지 않은(혹은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하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치가 오히려 원치 않는 일을 자극한다는 것은 뒤통수를 얻어 맞는 듯한,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벌금으로 인해 한번 자극 받은 '불복종'이나 '일탈'은 벌금이 없어진 후에도 계속되는 현상 또한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입니다. 

그니지와 루스티치니는 벌금이라는 장치가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미안함으로부터 엄마들을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벌금이 아이를 늦게까지 봐주는 '무료 봉사'를 돈이 거래되는 서비스 상품으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죠. 비록 소액이지만 벌금이 늦게까지 아이를 봐준 것에 대한 정당한 가격이라고 인식된 까닭입니다.

한번 이렇게 엄마들의 마인드가 형성되고나니 벌금 제도가 없어져도 탁아소 직원은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선의에 의해 아이를 늦게까지 봐주는 직원과 그런 선의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가능한 한 늦지 않으려는 엄마들 사이의 '사회 규범(social norm)'이 약화되어, 엄마들이 탁아소 직원을 '돈을 받으면 일해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두 명의 법학자가 실시한 이 실험은 벌금이 과연 '억지 효과(무언가를 금지하는 효과)'가 있는지에 관한 것이지만, 많은 기업이 성과를 높일 목적으로 도입하는(도입해야 한다고 믿는) 성과급 제도에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예전에 '연봉을 왕창 못 주면, 차등하지 마라'란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전반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은 회사들은 일 잘하는 직원들에게 돈을 '몰아 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과급 도입을 추진하곤 합니다.

인건비 예산이 얼마 되지 않으니 일 잘하는 직원이 1년에 더 받는 금액은 고작 2~300만원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몇몇 경영자는 그 정도의 차등액이 일 잘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을 동기부여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기는 '순진함'을 드러내곤 합니다.

일을 잘하지 못한(정확히 말하면 평가를 잘 받지 못한) 직원들은 2~300만원을 덜 받는 '벌금'을 부과 받은 후에 성과를 높이려고 애쓰려 할까요? 위 실험 결과를 음미해 보면, 이는 헛된 희망일지 모릅니다. 상대적으로 덜 받게 되는 돈은 일을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댓가'라고 인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성과급 받으려고 고생할 바에야 난 그냥 이렇게 일할래"라고 말하는 직원들의 말은 억지스럽게 운영하는 성과급 제도가 일을 잘하지 못한 탓에 가져야 했던 미안함으로부터 직원들을 자유롭게 만들고 또한 일을 잘하지 못함에 대한 좋은 명분을 부여한다는 증거는 아닐까요? 실제로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성과급에 대한 냉소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새삼 느끼곤 합니다.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엄마들이 원하는 방향과 반대로 행동했듯이, 직원들도 회사 성과를 높이기 위한 어설픈 의도에 나름의 방식으로 저항할 겁니다.

자기 자신은 돈 몇 푼 준다고 좋아하지 않는 줏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남들은 돈 몇 푼에 쉽게 의욕을 불태우리라 여기는 오류에 빠져 있진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회사가 실시하는 여러 가지 금전적, 비금전적 보상이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는커녕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해도 괜찮도록 명분을 주는 '이상한 벌금'으로 인식되지는 않은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 A fine is a pri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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