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서로 용량이 다른 3개의 항아리 A, B, C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A는 21리터, B는 127리터, C는 3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다고 해보죠. 이때, 어느 한 항아리에 100리터의 물이 담기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 어렵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쉬운 해결책이 나옵니다.
먼저 B에 물을 가득 채워서 127리터를 만듭니다. 그런 다음 B의 물로 C를 채웁니다. 그리고 C의 물을 바닥에 버리고, 다시 B의 물로 C를 채웁니다. 그러면 B에는 121리터의 물이 남겠죠.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B의 물로 A를 채우면, B에는 100리터의 물만 남게 됩니다. 공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B-2C-A
심리학자 에이브러험 S.루친스는 이런 문제를 6개 만들어서 피실험자들에게 풀어 보라고 했습니다. 피실험자들에게 주어진 문제 6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문제 1 : A (21) B (127) C (3) --> 100 리터 만들기
문제 2 : A (14) B (163) C (25) --> 99 리터 만들기
문제 3 : A (18) B (43) C (10) --> 5 리터 만들기
문제 4 : A (9) B (42) C (6) --> 21 리터 만들기
문제 5 : A (20) B (59) C (4) --> 31 리터 만들기
문제 6 : A (23) B (49) C (3) --> 20 리터 만들기
이 문제들은 모두 위의 공식으로 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제 4의 경우, 42-(2*6)-9를 계산하면 21이 나오죠. 하지만, 루친스는 피실험자들에게 공식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알아서 풀도록 했습니다.
문제 1부터 차례로 풀기 시작한 피실험자들은 처음엔 문제를 오랫동안 풀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문제에 패턴이 있다는, 즉 위에서 제시한 공식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문제 6으로 갈수록 문제를 푸는 속도가 매우 빨라지죠. 평균적으로 문제 1을 푸는 데에 10분 정도 걸렸는데, 문제 4를 풀 때는 1분 남짓 걸렸다가 문제 6을 풀 때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문제 1을 푸는 데에 10분이나 걸렸다는 게 의아할지 모르지만,루친스의 실험 대상은 어린이부터 대학원생까지 다양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의 실험은 루친스가 목표로 했던 실험은 아니었습니다. 루친스는 피실험자들에게 위의 6가지 문제를 풀게 한 다음, 아래의 문제 7을 제시했습니다.
문제 7 : A (15) B (39) C (3) --> 18 리터 만들기
문제 7도 역시 위의 공식으로 풀 수 있습니다. 39-(2*3)-15를 계산하면 18이 나오기 때문이죠. 피실험자들은 별 생각 없이 이런 규칙을 적용하여 문제 7을 풀었습니다. 여기에 루친스가 파놓은 함정이 있습니다. 사실 문제 7은 이렇게 하지 않아도 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항아리 A와 C에 물을 가득 채워서 모두를 B에 부으면 끝이죠. 즉 A+C 를 하면 답이 나옵니다.
그러나 피실험자들은 이런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문제 1부터 문제 6까지 적용했던 풀이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64~83%의 피실험자들이 성가신 예전의 풀이법을 고수했습니다. 반면, 문제 1부터 문제 6까지를 풀지 않고 곧바로 문제 7을 접한 대조군에서는 20%만이 간단한 풀이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루친스는 이러한 현상에 기계화(mechanization)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한번 굳어진 방법을 별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따르기 때문에 더 나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입니다. 심리학자 엘렌 랭거(Ellen Langer)는 기계화를 '생각 없음(Mindlessness)'라는 말로 부르기도 했죠. 다음과 같은 우스개소리들이 '생각 없음'의 대표격입니다.
손님 :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점원 : 뜨거운 거 드릴까요, 차가운 거 드릴까요?
손님 : 치즈버거 세트 50개 포장이요.
점원 : 드시고 가실 건가요, 가져갈 건가요? (Here or To go?)
배달원 :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 배달 왔습니다. 18000원입니다.
주문한 사람 : 지금 돈이 똑 떨어졌는데.... 나중에 뼈 찾으러 오실 때 드릴게요.
이러한 기계화 혹은 '생각 없음'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루친스는 문제 7을 내기 전에 피실험자들에게 '맹목적으로 풀지 말 것'이라는 경고문을 답안지에 스스로 적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 없이 복잡한 방식을 적용하기보다 간단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스스로에게 기계화의 오류(혹은 위험)를 경고하는 것만으로도 아무 생각 없는 상태에서 벗어나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인 셈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까요? 우리 머리 속의 자동항법장치를 끄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긴 하죠. 곰곰히 바라보면 개인의 생활에서나 여러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넘기는 게 무척 많습니다. '효율'이란 미명 하에서 옛것을 그대로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면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효율을 해치는 요인일지 모릅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주변에서 '내가 기계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고 판단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하지 말자'라는 다짐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도 한 두 개 쯤은 예전보다 좋은 해결책이 눈에 보이지 않을까요?
끝으로, 문제 8을 내보겠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문제 8 : A (28) B (76) C (3) --> 25 리터 만들기
답은 댓글로 달아 주세요. ^^
(* 참고도서 :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심리실험 45가지')
(* 참고문헌 : 'Cognition Psychology 215 Emory University')
'[경영] 컨텐츠 > 리더십 및 자기계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때론 보고서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 (4) | 2012.02.23 |
---|---|
팀장님이 내 창의력을 꺾는 건 아닐까? (2) | 2012.01.27 |
안철수 원장이 비논리적이고 선동적이라고? (7) | 2011.11.02 |
안다는 것에 관한 철학적 단상 (0) | 2011.11.01 |
정상을 비정상으로 판단한 의사들 (3) | 2011.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