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이나 '신성한 암소'가 산다   

2011. 6.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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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 재상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를 아십니까? 독일의 통일에 기여한 인물로 추앙 받는 그가 한때 러시아 대사로 근무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러시아 황제인 알렉산더 2세를 예방하는 자리에서 이상한 모습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궁전 정원의 한적한 곳에 군인들 몇 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던 겁니다. 특별히 중요한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경호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으니 비스마르크의 날카로운 눈에는 그 모습이 이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황제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 2세는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자신의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신하 역시 알지 못해서 경호 장교에게 물었지만 그도 왜 경비병들이 궁전 정원에서 근무하는지 몰랐죠. 그러다가 어떤 사령관이 나와서 황제에게 아뢰었죠. "그것은 예전부터 내려온 관습에 의한 것입니다."라고 말입니다. 황제가 "그 관습은 어떻게 시작된 거지?" 라고 물었지만 사령관은 "죄송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황제는 사령관에게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렸죠.

비스마르크



조사를 하는 데에 꼬박 3일이나 걸렸습니다. 고작 정원에 경비병들이 근무를 서는 이유를 캐내는 데 말입니다. 알고보니 그 유래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80년 전에 캐더린 대제(에카테리나 2세)가 집정하던 시기였습니다. 알다시피 러시아의 겨울은 아주 길고 매우 혹독합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봄기운이 감돌면 사람들은 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설레이기 마련입니다.

대제가 창문 밖을 내다 보다가 언 땅을 뚫고 나온 '갈란투스' 꽃을 발견했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대제는 경비병을 시켜서 누구도 그 꽃을 꺾지 못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때 이후로 경비병들은 정원에 서서 근무하게 된 겁니다. 꽃이 지고 나서도 80년 동안 경비를 선 병사들은 왜 자신이 여기에서 근무를 서는지 물어볼 엄두도 내지 않은 채 그저 관습이라는 이유로 묵묵히 따랐던 겁니다.

이렇게 유래를 모르는 관행들이 기업에도 존재합니다. 보고서 양식과 같은 작은 것에서 인력을 운용하는 방식이나 업무 프로세스와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 '왜 우리가 이 일을 하지?'라며 의문을 가지는, 아니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관성에 젖어 수행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찾아보면 어느 기업이든 그런 것은 적어도 한 두 개는 나오기 마련입니다. 유래를 따져보면 창업자의 습관 때문일지도 모르고, 타사에서 근무하다가 입사한 사람이 "이게 좋다"라면서 들여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관행으로 굳어진 것들이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개는 도로 한복판에 누워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는 '신성한 암소'가 되어 버립니다(지난 번에 올린 글 '신성한 암소를 쫓아내라' 참조). 누구도 그 소를 쫓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우회하는 수고를 감수하죠. 여러분의 팀이 몇 년 동안 어떤 과정이나 절차를 그대로 지속해 왔다면 그게 바로 신성한 암소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이고 방식이다" 라고 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신성한 암소가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변화라는 말을 꺼내면 거창하고 대단한 '변화 모델'이나 로드맵을 머리 속에 떠올립니다. 뭔가 정교하면서도 방대한 작업이 수반되어야 변화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이론화하기를 좋아하는 경영학자나 그 이론을 상품화하는 컨설턴트들이 잘못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준 탓입니다. 조직의 변화가 어렵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누워 있는 신성한 암소를 찾아내어 한놈씩 쫓아내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변화라는 것은 어렵지만 어떤 면에서는 쉽기도 합니다. 조직에서 이유를 모른 채 반복하는 절차나 방식이 무엇에서 유래했는지를 따져본 후에 당시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없애면 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창업 때부터 내려온, 그래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이라 해도 말입니다. 신성한 암소의 DNA는 아주 질긴 성질을 가지지만, 그녀석이 통행을 막는 방해꾼임을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도로 밖으로 쫓아낼 수 있죠.

덩치가 커서 힘들다면 신성한 암소가 낳은 송아지라도 찾아내어 쫓아 버리세요. 변화의 동기에 불을 당기는 방법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참고도서 : '최고의 햄버거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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