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원인의 단초를 찾자   

2009. 9. 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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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서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는 방법으로 존 스튜어트 밀이 제안한 '원인 발견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아마도 이런 생각이 들었을지 모르겠네요. '밀의 방법은 원인들이 이미 도출됐다고 가정하고 그 중에서 근본원인을 찾기 위한 기계적인 절차에 불과하지 않나?'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사실 문제해결사가 문제을 해결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문제 속에 숨은 원인들을 끄집어 내는 일이죠. 이 과정만 이뤄지면 밀의 원인 발견법은 그야말로 절차와 '계산'에 불과합니다. 지난 포스팅의 내용에서 봤듯이, 두 가지 이상의 사례를 별도로 분석한 후에 일치 판단법 혹은 차이 판단법 등을 써서 문제를 야기하는 근본원인을 추정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물론 어떤 분들은 그 자체가 어렵다 느낄지 모르겠군요). 

그럼에도 밀의 원인 발견법을 소개한 이유는 오늘 설명할 KT 분석법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차차 알겠지만, KT 분석법은 밀의 원인 발견법 중에서 '차이 판단법'을 확장하고 심화한 것인데요, 문제의 근본원인에 바짝 다가가는 힌트를 제공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자물쇠를 풀듯이 문제를 풀 수 없을까요?


KT 분석법은 미국의 Think Tank라 할 수 있는 RAND(랜드) 코퍼레이션에서 근무하던 Kepner와 Tregoe라는 사람이 고안했다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케프너-트리고 기법'이라고 부르는데요, 우리는 'KT 분석법'이라는 말로 쓰겠습니다.

KT 분석법은 다음과 같이 '문제의 4차원'이라고 부르는 4가지 질문을 근간으로 합니다. 

(1) WHAT : 무엇이 발생했는가? 무엇이 발생하지 않았는가?

(2) WHERE :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가?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가?

(3) WHEN : 언제 문제가 발생했는가? 언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가?  또는
                 언제 문제가 처음 발견됐는가? 언제 문제가 마지막으로 관찰됐는가?

(4) HOW MANY(MUCH) :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가? 얼마나 영향을 받지 않았는가? 

위의 질문들을 보면, 밀의 원인 발견법 중 '차이 판단법'과 유사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발생한 상황과 발생하지 않은 상황을 WHAT, WHERE, WHEN, HOW MANY(MUCH)의 4가지 차원으로 하나씩 따져본 다음에, 그 차이를 가려서 문제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추정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 때 KT 분석법은 단초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유용한 원인 발견법입니다.

문제해결사는 KT 분석법의 4가지 질문에 따라 문제의 현상을 관찰해야 하는데요, 관찰 결과를 아래의 표로 정리합니다. 이 표를 우리는 'KT 분석표'라고 부르겠습니다.

   있다 없다  차이 
 WHAT      
 WHERE      
 WHEN      
 HOW MANY(MUCH)      

'있다'에는 문제가 발생한 상황을, '없다'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을 정리하면 됩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한 상황과 발생하지 않은 상황을 비교해서 무엇이 '있다'와 '없다'를 구별되게 만드는지를 판단하여 '차이'란에 기록합니다. '있다'와 '없다'는 관찰의 결과를 적는 란이므로 작성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부분은 '차이'란인데요, '있다'와 '없다' 사이의 차이점이 자명하게 구별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이'는 문제의 근본원인을 알려주는 힌트가 되므로 주의 깊은 사고가 필요합니다.

KT 분석표 작성 순서
1차원씩 차근차근... 

(1) 문제의 현상을 관찰을 통해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2)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을 '있다'란에 기입한다
(3)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을 '없다'란에 기입한다
(4) '있다'와 '없다'를 구별하는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하여 '차이'란에 기입한다

이렇게 개념적으로만 설명하면 이해가 어려우니 예를 들겠습니다. 아래의 문제 상황을 꼼꼼하게 읽어 보십시오.

의뢰인은 서울 본사 직원들이 전반적으로 나태한 것 같다며 의심을 품고 있다. 문제해결사는 IT 부서의 도움을 받아 외부 인터넷 사이트를 접속하는 건수를 기준으로 직원들의 나태함을 판단하기로 했다. 일주일간 관찰한 결과, 외부 인터넷 접속 건수가 오후 2시경에 갑작스레 증가하여 5시까지 그 수준이 유지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따져보니 지방에 있는 연구부서와 생산부서는 일주일 내내 접속 건수가 일정했으나 관리부서인 A팀과 B팀의 접속 건수는 오후에 피크를 이뤘다. 인터뷰를 해보니, A팀과 B팀 직원들 중 절반 정도는 자기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겠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인터넷이라도 접속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발언을 했다. 알고보니 그들은 조직 개편으로 2개월 전에 새로 전보되어 온 직원들이다.

의뢰인인 회사의 CEO는 신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를 1개월 전부터 강력하게 추진 중인데, 여기에 핵심이 되는 인물이 A팀장과 B팀장이다. A팀장은 원래 연구부서에 있다가 관리부서인 A팀으로 얼마 전에 부임했고, B팀장은 신입사원 시절부터 이 회사에 근무한 사람으로서 CEO의 신임이 두텁다. 프로젝트 회의는 보통 오후에 열리며 한번 모이면 밤 늦게까지 마라톤 회의가 잦은 편이다.

예를 들기 위해 약간은 도식적인 사례를 들었습니다. 게으름을 나타내는 지표로 인터넷 접속 건수를 채택했음을 감안하기 바랍니다. 위의 문제 상황을 KT 분석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있다 없다  차이 
 WHAT  갑자기 증가하는
인터넷 접속 건수
 일상적인
인터넷 접속 건수
수행할 업무가 없음
 WHERE  관리부서(서울)인
A팀과 B팀
 연구부서와
생산부서 (지방에 위치)
 프로젝트 핵심멤버인
두 팀장의 관할 부서
 WHEN
  - 오후 2시~5시
  - 프로젝트 시작부터
    (1개월 전부터)
  - 그 이외의 시간 
  - 프로젝트 시작 전
    (1개월 이전)
팀장들이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시간
and
CEO가 프로젝트 추진
 HOW MANY(MUCH) A팀, B팀 직원 중
절반
나머지 직원들  2개월 전에 전보되어 온
직원들

이렇게 정리되면, 여러분은 '차이'란에 적힌 내용을 음미하면서 문제의 근본원인이 추정해야 합니다. 위의 표를 찬찬히 뜯어보기 바랍니다. 무엇이 근본원인인지 눈에 보입니까?

팀장이 프로젝트 참여 때문에 팀 관리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인터넷 접속 건수로 대표되는 직원들의 나태함이 증가된 걸까요?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위의 문제 현상을 보면 A팀과 B팀 직원들 중 절반만 인터넷 접속이 많고 나머지 직원들은 별로 변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팀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하지만 팀장이 자리를 지키는 시간과 프로젝트 시작 전에는 나태함을 나타내는 지표(인터넷 접속 건수)가 높지 않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는 팀장의 리더십이 원인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인터뷰에서 불만을 나타낸 직원들이 주로 2개월 전에 전보되어 온 직원들인 점에 주목한다면, 그들에게 전보된 이후에 어떤 업무를 수행할지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임무가 아직 부여되지 않았을 거란 의심을 갖게 됩니다. '신성장동력 발굴' 프로젝트는 1개월 전에 시작했고 전보는 2개월 전에 이뤄졌으니 새로 전보되어 온 직원들에게 확실하게 임무를 부여할 시간이 1개월이나 있었지요. 하지만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경황이 없었다면 1개월의 여유시간은 무의미해집니다.

따라서 문제의 근본원인은 '새로 전보되어 온 직원들에게 제대로 업무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직원들이 A팀과 B팀을 통틀어 절반이나 되니 의뢰인(CEO)의 눈에는 거의 모든 직원이 하는 일 없이 노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겠죠.

KT 분석법을 통해 추정한 근본원인은 말 그대로 '추정되는 근본원인'일 뿐입니다. '새로 전보되어 온 직원들에게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아직 가설에 불과합니다. 문제해결사는 이 가설의 옳고 그름을 실증을 통해 증명해야 합니다(실증에 관한 내용은 이미 지난 여러 포스팅에서 설명했습니다).

KT 분석법이 올바르게 문제의 근본원인을 추정하려면 위의 4가지 차원의 질문을 '잘' 던져야 합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을 그대로 '있다'와 '없다'에 기입하면 곤란합니다. 여기서도 파고드는 질문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오후 2~5시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면 그것이 일반적인 것인지, 아니면 좀더 특수한 조건(예:팀장의 부재 여부, 고객의 주문전화 증감 여부 등)과 관련된 것인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KT 분석법은 어디까지나 도구이고 가이드일 뿐이므로, 질문을 계속 반복하면서 결과를 수정해 나가야 함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오늘도 즐겁게 문제해결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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