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기업들의 팀워크, 무엇이 다른가?   

2018. 3. 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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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번에 더퀘스트에서 새로 출간된 책, <익스트림 팀>에 수록된 저의 추천사입니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레코드판(LP)을 좋아하여 주말이면 가끔 동묘나 황학동 주변을 돌면서 이제는 흔치 않는 옛날 가수들의 앨범을 한 두 장씩 ‘득템’하곤 한다. 아무리 동묘라 해도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은데, 똑같은 가수의 CD에는 왠지 손이 가질 않는다. LP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신이라 음질이 더 좋고 가격도 LP에 비해 3분의 1 수준인데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 CD를 들을 바에야 음원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하는 게 낫지, 하며.


이 책 '익스트림 팀'을 읽으면서 나는 그 동안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여러 경영 테마를 떠올렸다. MIS, ERP, CRM, SCM 등 소위 세 글자로 표현되는 테마들은 한때 경영혁신의 기수로 칭송됐지만 이제는 CD와 같은 처지가 되어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그런 건 그저 IT시스템일 뿐이지, 하며. 반면 ‘팀워크’는 계속해서 많은 기업들이 관심을 기울이며 묘수를 찾고자 열망하는, 마치 LP처럼 오래된 경영 테마이다. 하지만 팀워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왕년에 내가 LP 좀 들었지’하며 누구나 아는 것처럼 구는 테마이기도 하다.  




이 책은 최강의 팀을 구축하고 그 토대에서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팀워크가 단순히 ‘으쌰으쌰’하는 팀원들끼리의 인간적인 화합이나 동맹이라고 누구나 아는 척 할 법한 상식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더욱이 넷플릭스, 파타고니아, 자포스, 에어비앤비 등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이 시대의 스타기업들이 어떻게 최강의 팀워크를 통해 기존의 통념을 거부하면서도 튼튼한 입지를 쌓았는지를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팀워크를 재건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듬뿍 선사한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크건 작건 모든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의 필독서라 할 수 있다.


말로는 세계 최고 혹은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지만 실은 그렇게 될 리가 만무한 ‘그저그런’ 회사의 특징을 이 책을 통해 간파할 수 있다. 직원이 팀의 성과 발휘에 얼마나 조화로운 사람인가보다 그의 개인 능력을 중시하여 상대평가를 휘두르는 기업, 우선순위 없이 모든 걸 다 잘하고 싶어하는 기업, 독창적인 철학 없이 효율적인 문화에만 관심을 두는 기업, 갈등 상황을 기회라 보지 않고 없애야 할 골치거리라고 인식하는 기업, 내가 할일과 네가 할일을 ‘칼같이’ 구분하는 데 열을 올리는 기업이 있다면, 이 책을 계기로 ‘우리가 왜 최고가 될 수 없는가’라고 뼈아프게 반성해 보기 바란다.


책 전체를 관통하면서도 가장 독특한 관점은 최강의 팀워크를 구축하는 비결이 서로 모순되는 가치들을 포용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성과를 지향하면서도 인간관계를 중요시한다는 것, 고도의 화합을 추구하면서도 구성원들을 서로 느슨하게 연결하는 것,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면서도 팀과의 조화를 강조한다는 것, 책임감을 부여하면서도 자율성을 용인하는 것, 솔직한 비판을 추구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지지를 권장한다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상충되는 두 가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밀어붙이는 것이 바람직한 리더십이라고 여기는 리더들에겐 매우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넷플릭스 등의 혁신기업들이 위대해진 이유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는 데 있다.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그 과정이 순탄했고 시행착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각자 조직에 맞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손을 더듬어가며’ 내일의 길을 실험한다는 데 있다. 




특히 성과 지향과 인간관계 지향 간의 모순을 조화시키려는 혁신기업들의 노력(1장)에서 리더들은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많은 기업들이 ‘우리 회사는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한다’, ‘우리회사는 가족같은 기업이다’라는 말을 자랑하곤 한다. 하지만 컨설턴트의 입장에서 그런 회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가족스럽지 않은’ 모습을 발견한다. 철저하게 개인 성과를 따져서 그에 따라 보상을 차등하고 성과를 못내는 직원들을 내치겠다는 정책을 강화한다든지, 상명하복의 문화 속에서 아무도 회의실에서 리더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든지, 리더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관리자들의 당면목표로 여겨지는 기업이 과연 가족 같은 회사일까? 그들이 내세우는 가족이란 ‘가부장적 가족’에 불과하다. 진짜 가족이라면 제록스처럼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고 때론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발언도 서슴없이 말할’ 정도여야 하지 않을까? 직원들을 진짜로 가족처럼 여기는 문화가 무엇이고 그 속에서 최고의 성과를 일궈내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 책에서 길을 찾기 바란다.


리더 뿐만 아니라 일선 관리자들에게도 이 책은 유용하다. 특히,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아야 함을 강조하는 3장의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모 기업의 임원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관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여러 면접위원들이 사전 미팅을 통해 면접방식을 서로 조율하고 합의했기에 면접 진행은 매끄러웠다. 불만스러웠던 점은 다른 면접관들의 질문이었다. 미리 마련해 놓은 질문서에는 분명 없는 질문을 임의로 던지는 경우는 다반사였고, 그 귀한 시간에 지원자의 특이한 경력에 사적으로 관심을 드러내며 질문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면접관들도 종종 있어서 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열심히 하겠다’라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하나마나한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채용에 엄청난 공을 들이면서 최종 결정을 숙고하고 또 숙고하는 혁신기업들이 이 면접 광경을 목격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들은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최강의 팀을 구축하는 비결 중 제일 첫단추가 회사의 문화에 적합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임을 체득했다. 에어비앤비는 첫 번째 엔지니어를 뽑기 위해 수천 명의 이력서를 검토했고 그 중 몇백 명의 지원자들과 면접을 보느라 5개월의 시간을 쏟았다. 직원을 채용하는 일은 ‘DNA칩을 심는 것과 같다’는 신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혁신기업들이 지원자들에게 던지는 여러 질문들을 보면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면접을 해왔다는 점을 내가 그랬듯 ‘충격적’으로 반성하게 되리라.




독자들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혁신기업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싶은 욕구가 분명 들 것이다. 허나 저자가 지적했듯이, 제도 몇 개를 그대로 베끼면 최강의 팀을 구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팀워크는 그 자체가 문화이고, 문화는 쉽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조직의 문화를 혁신하고자 하는 리더 본인이 과거의 성공전략과 현재의 권력에 취해 있는 혁신의 대상일 수도 있음을 지각하지 않는 한 강력한 팀워크를 구축하겠다는 희망은 그저 꿈으로 끝날 것이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의 말처럼 ‘모방만하는 기업은 망한다.’ 따끔하지만 그것이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며칠 전에 모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쉬는 시간에 회의실 벽에 걸린 사훈이 눈에 들어왔다. ‘창의’, ‘협동’, ‘신뢰’, ‘열정’, ‘도전’... 이 회사가 아니라 다른 회사에 걸어놔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아주 진부하면서도 매우 모호한 사훈이라 외부인인 나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직원들은 과연 저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행동에 옮길까? 그보다도, 과연 사훈이 뭔지 외우고나 있을까? 최강의 팀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최고의 성과를 내고자 한다면 사훈이 실천적 의미로 번역돼 조직의 문화 속에 녹아 흐르게 해야 한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훈을 떼어내고 맨땅에서 다시 팀워크를 구축하라. 이 책이 여러분을 최강의 팀으로 나아가는 길을 친절히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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