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4일(금) 유정식의 경영일기


내가 지금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사실 내 소유가 아니라 장기렌터카라서 캐피탈 회사의 소유다. 그래서 번호판에 ‘호’자가 붙어 있다. 3년 계약의 이 렌터카는 내년 1월이 만기이지만, 나는 조기반납 수수료를 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달에 조기반납하기로 결정했다. 전장(자동차 앞뒤 길이)이 4.6미터라서 차급으로 치면 ‘준중형’ 정도의 크기이지만 골목이 좁고 주차공간이 부족한 연희동에서 살면서 이 정도 크기도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는 자동차에 설치했던 스피커를 탈거하러 일산 쪽에 있는 카오디오샵을 찾았다. 순정 스피커의 소리에 워낙에 좋지 않아서 거금을 들여 달았던 소리 좋은 스피커를 렌터카 회사에 그냥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샵 주인은 내게 물었다. 

“어떤 차로 하시게요?”

아마도 그는 내가 다른 렌터카를 계약하거나 자차를 구입할 생각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아직 생각 중인데요, OOO을 살까 말까 하고 있어요.”

“OOO이요?”

OOO은 현재의 자동차보다 브랜드 측면이나, 차급 측면이나, 무엇보다 차 크기 측면에서 떨어지는 차종이라 그랬는지 샵 주인은 상당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앞으로 어떤 차종이 새로 출시되는데 그 차는 어떠냐고 그는 내게 물었다. 그가 제안한 차는 SUV였다. 연희동에서 SUV를? 골목이 좁은 연희동에서 내가 사용하기에는 상당히 버거울 것 같아서  가장 배제하고 있던 카테고리를 그는 추천했던 것이다. 보아 하니, 샵 안에 오디오 시연용으로 가져다 둔 차종(주인의 것으로 추정)도 SUV였다. 정말 요즘 SUV가 전세계적으로 대세이긴 한가보다. 세단이나 해치백보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SUV가 소형부터 대형에 이르기까지 인기몰이 중이고 지난 달에는 잇따라 2종의 소형 SUV가 출시됐으니 말이다.


세단 쪽도 ‘큰 자동차’가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오늘 아침 신문 기사를 보니 국민차로 여겨졌던 H사의 소나타가 같은 회사의 그랜저에게 바통을 넘겨줬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달에 그랜저는 무려 1만 2093대가 팔리면서 출시 후 8개월 연속 월 1만대 판매 기록을 수립한 반면, 소나타는 기껏해야 6,000~7,000대 정도가 팔린다고 한다. 중형차인 소나타 정도 몰면 제법 ‘사는 축’에 속했던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전장이 5미터에 육박하는(정확히는 4930밀리미터) 그랜저 정도는 ‘타 줘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랜저 구매 고객도 상당히 젊어졌다. 준대형차는 전통적으로 4~50대를 타겟으로 하는데, 30대 고객도 25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첫차를 그랜저급으로 선택하는 젊은층도 상당하다.


같은 차종을 놓고 봐도 예전 세대부터 현재 세대까지 나란히 세워두면 크기가 커지고 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랜저를 예로 들면 1986년의 1세대가 4865밀리미터였고, 2세대는 4875밀리미터, 3세대는 4895밀리미터였다. 어떻게든 조금씩 차를 키워 온 것이다. 소나타 1세대는 4578밀리미터였지만 현재는 4855밀리미터로 과거 1세대 그랜저와 거의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BMW 3시리즈의 경우 2세대는 4325밀리미터였던 반면, 현세대는 4633밀리미터이다. 왜 이렇게 자동차는 커지는 걸까? 왜 큰 자동차를 선호하는 걸까? 왜 지금보다 작은 자동차로 바꿔 타겠다는 생각이 의아함을 불러 일으키는 걸까?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습성’ 때문일까? 아직 뾰족한 답을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큰 자동차를 선호하는 현상에 내가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제법 되리라.


(이 때의 차는 참 컴팩트했는데...)



스피커 탈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연희동 초입부터 차가 막혔다. 평소에 막히는 길이 아니라서 웬일이지 싶었다. ‘사고라도 났나?’ 알고보니 연희동의 여러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가져온 자동차를 대느라 양쪽 갓길이고 인도고 모두 다 점령해 버려서 정작 통행해야 할 차들이 앞으로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날씨가 더워서인지 죄다 자동차를 끌고 온 모양이었다. 식당 앞 인도와 도로를 점령한 자동차들을 보면 준중형 이하의 차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는 2~3분 걸릴 거리를 15분이나 걸려서 겨우 주차 장소(거주자 우선주차 자리)에 차를 댔다. 나도 차를 몰면서도 그렇게 큰 차들이 도로를 막고 선 모습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차에서 내리면서 나는 렌터카를 반납하고 몇 개월 동안은 차 없는 ‘뚜벅이’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돌이켜보니 대학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차없이 살아본 적은 없다. 최근까지 동시에 차를 두 대 굴린 적도 있었다. 차 없는 생활이 나에게 어떤 것인지 아직 상상은 되지 않지만 그리 불편할 것도 없을 듯 하다.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타면 되고 먼 길을 갈 때는 카셰어링(car-sharing)을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자동차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주차장에 세워 두기보다는 필요할 때만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자동차로 넘쳐나는 도로의 비경제성을 미미하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이지 싶다. 그리고 자꾸만 커지는 자동차들로 인해 유발되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지 싶다. 뚜벅이 생활이 불편해서 자동차를 구입한다면 OOO과 같은 작은 차를 살 것이다.


일본H사의 경차, N-One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터라 꼭 구입할 목적이 아니더라도 구경을 위해 딜러샵을 찾곤 한다. 얼마 전엔 어느 일본 자동차 딜러샵(이 회사도 이니셜은 H이다)에 들러서 영업사원에게 슬쩍 물어봤다. 

“왜 경차는 수입을 안 하는 건가요?”

일본H사에도 꽤 괜찮고 예쁜 경차들이 있어서 던진 질문이었다. 정식으로 수입되면 정말 사고 싶어서 묻기도 했다. 그는 서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국내 자동차 회사(아마 H사를 가리키는 듯)가 못 들어오도록 정부에 엄청난 로비를 해서 그렇습니다. 일본 경차가 국내에 들어오면 내수 매출이 상당히 떨어질 거라고 보기 때문이죠.”

이 영업사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의 개인적인 생각일 것 같다. 겨우 4개 차종(모닝, 스파크, 레이, 다마스) 밖에 없는 우리나라 경차의 마켓 셰어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수익성 측면에서 일본 경차의 한국 진출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눈에는 워낙에 큰 차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에게 과연 일본의 다양한 경차가 ‘먹힐지’ 의심스럽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모르는 일 아닌가? 트렌드는 역트렌드를 동반하는 법이다. 큰 차를 좋아하는 축과 작고 아기자기한 자동차를 선호하는 축으로 나뉘지 않을까? 자꾸만 커지는 자동차 때문에 스트레스가 차오르는 나는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OOO을 타도 다운그레이드됐다는 생각은 결단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뚜벅이 생활이 약간 불편할 것도 같아서 동네 이동용으로 스쿠터를 알아보는 중이다. "오토바이는 정말 위험해요"라는 H군의 강력한 주장에 주저하고 있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떼어낸 스피커를 중고가격으로 팔까 생각 중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살짝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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