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많이 하면 남을 속이게 된다   

2012. 3. 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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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사람들보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직장인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저녁 6시는 퇴근시간이라기보다는 저녁식사 시작 시간인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어떤 직원은 별로 할일이 없는데도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미루다가 저녁 때가 되어서도 그날의 일을 완료하지 못해 습관적으로 야근하기도 하지만, 진짜로 일이 많고 또 급해서 매일 야근을 밥먹듯 하는 직원들도 많습니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다보니 인력을 예전보다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빠른 업무처리를 약속하는 각종 IT 시스템이 수작업에 의존하던 과거보다 오히려 업무를 더욱 가중시키다보니 직원이 제시간에 퇴근하기가 힘들어지고 어쩌다 제시간에 퇴근하면 눈총을 받기까지 합니다.

늦게 퇴근한다고 해서 다음날 늦게 출근해도 되는 회사는 그리 흔치 않죠.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 직원이 아침에 조금 늦게 출근하는 것을 '군기'가 빠졌다며 고깝게 생각하는 관리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해서 매일 야근으로 지친 직원들은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2011년에 모 취업 포탈 사이트에서 직장인 5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평균 수면 시간은 고작 6시간 10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권장 수면시간(8시간)에서 2시간 정도 부족하죠.



이러한 수면 부족이 생산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면 부족이 단순한 생산성 저하 이외에 직원들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유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입니다.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 등의 연구진들은 수면이 개인의 비윤리적인 행동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절대수면시간이 부족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직원일수록 상사와 동료로부터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고, 동료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선행에 대해 별로 미안해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수면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할 때 다른 참가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수면 부족이 사고력과 자기절제력을 약화시켜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죠. 다른 참가자를 속인 학생들은 정직한 학생들에 비하여 전날 밤에 평균 22.39분을 덜 잤을 뿐인데도 비윤리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적정 시간보다 2시간이나 덜 자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에 수면 부족이 단순한 생산성 저하에 그치지 않고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효율성을 목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도록 만듦으로써 애써 얻은 노동생산성 증가분이 장기적으로 볼 때 비윤리적인 '나쁜 성과'에 의해 상쇄되고 말 것임을 시사합니다.

마이클 크리스천(Michael Christian)과 알렉산더 엘리스(Aleksander Ellis)가 수행한 또다른 연구에서도 수면 부족이 일탈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유발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그들은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는데, 교대 순번이 바뀌는 바람(예컨대 낮 근무에서 밤 근무로)에 수면 리듬이 깨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간호사들이 금지된 행동을 자주 보이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수면 부족한 학생들이 고객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수면의학 교수인 찰스 짜이슬러(Charles Czeisler)는 "24시간 한숨도 자지 않거나 1주일 동안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신체 장애가 나타난다"라고 말합니다. 0.1퍼센트면 법적으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야근을 밥먹듯 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는 일주일 내내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회사 측에서 직원들의 야근을 방조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권장(?)한다면 직원들에게 '음주 근무'를 방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음주는 이성적 판단을 저해하고 평소 같으면 못할 행동을 자극합니다. 컨설팅 업체인 KPMG에 따르면 인수합병 건의 83%가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는데,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인수합병 실패 사례들은 야근과 수면 부족으로 '취한' 상태에서 내린 과감한 결정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도입하는 윤리경영의 실천지침을 들여다 보면 대개 '무엇무엇을 하지 말라', '조심하라'는 문장이 발견됩니다. 직원들에게 윤리적 책임을 다할 것을 기대하는 내용을 볼 때마다 직원들이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의문이 생깁니다. 윤리 규정을 만들고 이를 위반할 때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일지 모릅니다. 직원들이 이기적으로 혹은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근본적 이유는 예전에 올린 글 '직원들이 회사 물건을 훔치는 이유'에서도 밝혔듯이 직원 개인의 품성이나 가치관의 결함 때문이기보다는 직원을 둘러싼 업무환경과 조직문화의 악성요소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가치가 떨어지는 업무, 요식 행위에 해당하는 업무, 아웃소싱이 가능한 업무 등을 과감하게 제거하여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8시간 동안 높은 가치를 지닌 업무에만 오로지 집중케 하고 저녁 6시에 모두 퇴근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드는 것이 겉으로 내세우기 좋은 윤리경영 캐치프레이즈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일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설령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해도 그 증가분은 비윤리적인 냄새로 오염되고 말 겁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야근할 계획입니까?


(*참고 논문) 
Lack of sleep and unethical conduct
Examining the Effects of Sleep Deprivation on Workplace Deviance: A Self-Regulatory Perspective

(*참고 기사) 
Lack of Sleep Leads to Unethical BehaviorWhy Your Next Big Deal Will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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