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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 이스라엘의 교육부는 학자들과 교사들로 이루어진 연구팀에게 새로 생기는 교과목을 위한 커리큘럼을 마련하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착수하던 연구팀원들은 이 과제를 완료하여 최종 보고서를 교육부에 제출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가늠해보기로 했습니다. 팀원들 각자에게 종이에 예상 프로젝트 기간을 쓰게 한 다음 취합해 보니 18개월에서 30개월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때 팀원 중 한 사람이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는 "여러분들은 모두 과거에는 없던 과목의 커리큘럼을 설계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와 지금을 서로 비교해 보고 프로젝트의 예상 소요 기간을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제안합니다. 사람들이 질문에 반응이 없자 그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커리큘럼 설계를 맡았던 연구팀들이 프로젝트를 모두 완료하지는 못했습니다. 40%가 중단을 선언했죠. 게다가 제가 알기로 프로젝트를 완료했던 연구팀들도 7년 내에 과업을 완수하지 못했고 어떤 연구팀은 10년이나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꾸려진 연구팀이 다른 연구팀들에 비해 능력이 특별히 뛰어난 전문가들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다른 연구팀들보다 가용자원도 적고 연구능력도 조금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용기 있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 그 팀원은 커리큘럼 개발 전문가이자 후에 헤브루 대학교의 교육대학 학장이 된 시모어 폭스(Seymour Fox)였습니다. 그가 말하고자 한 요점은 여러 커리큘럼 연구팀들의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프로젝트의 예상 완료 기간을 객관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수용해야 할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연구팀은 그의 제안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완료하는 데까지 8년이나 걸렸고 팀원들의 노력은 아무런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소요해 만들어진 커리큘럼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니까요.
이 사례는 행동경제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이 연구팀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직접 목격했던 일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처음의 예상과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간 여러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에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이 신형 전투기인 유로파이터(EuroFighter)를 1997년에 하늘에 띄우겠다고 선언했을 때 예상했던 개발비용은 200억 달러였습니다. 하지만 1997년이 넘도록 프로젝트는 완료되지 못했고 비용은 두 배가 넘어 450억 달러나 되었습니다.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또다른 대표적 사례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위치한 의회 건물입니다. 이 건물의 신축을 1997년에 처음 계획할 때는 4천만 파운드의 예산이 책정됐지만 1999년 6월이 되자 예상 비용은 1억 9백만 파운드를 훌쩍 넘었고 2002년 말에는 2억 9천 5백만 파운드를 돌파하더니 급기야 2004년에 최종 완공될 때는 총비용이 무려 4억 3천 1백만 파운드에 이르러 최초의 예상을 10배나 뛰어 넘어 버렸습니다.
사회간접자본 사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005년에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1969년부터 1998년 사이에 전 세계에서 이루어진 철도 건설 사업 중 90퍼센트 이상이 철도 이용 고객수를 과도하게 예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평균적으로 실제 이용객 규모보다 106퍼센트 많게 예상했고 예산은 평균 45퍼센트를 초과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 예측력은 나아지지 못했던 겁니다.
카네만은 이러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들이 '성공의 착각(Delusion of Success)'으로부터 기인한다고 진단합니다. 계획 오류란 프로젝트나 전략의 성공 가능성과 성공으로 인한 이득을 과장하는 반면 실패 가능성과 실패에 따른 비용을 실제보다 낮게 책정하려는 경향을 지적하는 말입니다. 성공의 착각은 어떤 분야의 초심자가 아니라 전문가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카네만은 말합니다.
오랜 경력과 높은 전문성을 보유한 전문가들은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 또한 많겠죠. 하지만 그 성공 경험들은 '그때 잘 했으니 이번에는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거야'라고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새로 시도하는 전략이나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을 판단하는 데에 오류를 일으키고 맙니다. 분명 실패했던 경험도 있었고 다른 사람의 실패를 접한 적도 많았을 터이지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그런 기억은 참조되지 못하고 예방주사가 되지도 못합니다.
실패를 떠올릴 때마다 나빠지는 감정은 실패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조언을 자연스레 무시하도록 만듭니다. 또한 위의 사례처럼 누군가가 과거의 사례에 비춰볼 때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문제가 있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제기한다면, 그 의견을 수용하여 프로젝트를 재검토하기보다는 '어디서 고추가루를 뿌리고 그래?'라고 핀잔을 주면서 그 사람을 프로젝트에 몰입하려 하지 않는 자, 나아가 조직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자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착수할 때 많은 개인이나 조직들은 프로젝트 자체에 지나치게 집중하느라 외부에서 이미 일어났던 여러 실패 사례를 프로젝트 수행에 감안하지 못하는 '내부적 시각'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프로젝트의 목적, 수행에 필요한 자원들, 예상되는 장애, 미래의 트렌드 등을 고려할 때 외부 사례를 참조한다고 해도 프로젝트의 성공을 뒷받침해주는 것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죠. 이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까닭은 90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능이 상위 10퍼센트에 속한다고 믿는 이유(이를 '워비곤 효과'라고 부름)와 맞닿아 있습니다.
카네만은 '외부적 시각(outside view)'을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외부적 시각이란 예전의 비슷한 경험과 유사한 외부 사례들의 입장에서 지금 계획하는 프로젝트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외부적 시각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내부적 시각(inside view)의 오류를 줄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프로젝트를 재검토하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앞으로의 학업 성과가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던지니 자신들이 동급생들의 84퍼센트보다 나을 거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자신의 입학시험 점수와 동급생의 점수에 대해 물어 본 후에 동일한 질문을 제시하니 동급생의 64퍼센트보다 자신의 학업 성과가 더 뛰어날 거라고 답했습니다. 내부적 시각에 의해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학생들이 외부적 시각을 주입 받은 후에 보다 현실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입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전략에 대해 낙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희망은 참여의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낙관적 희망이 '성공의 착각'에 휩싸인 내부적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외부적 시각을 통해 경계하고 교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성공의 착각에 빠져 있습니까?
(*참고논문 : Delusions of Success: How Optimism Undermines Executives' Decis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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