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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메이(Matthew E. May)는 도요타 유니버시티에서 8년 간 근무하는 등 자동차 산업 분야의 컨설턴트로 오랫동안 일한 사람입니다. 그는 한때 미국의 자동차 회사 GM을 컨설팅하기도 했는데, GM의 직원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워크숍에서 그는 '달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우선순위 결정 게임을 했습니다.
이 게임은 모선(mother ship)에서 200 킬로미터 떨어진, 달의 모처에 조난 당했다는 상황을 가정합니다. 그런 위험 상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가지고 있는 15개의 물건(나침반, 우유, 산소통 등)을 생존에 꼭 필요한 순서대로 배열하는 것이 게임의 과제죠. 만일 어떤 사람이 생존에 필수적인 물건이 후순위로 밀리게 하고 그다지 필요없는 물건을 최우선순위로 올린다면, 그 사람은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죠.
메이는 이 게임을 조별로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메이는 10명씩 15개조를 구성케 했는데, 각 조에는 관리자(팀장), 중간직급 직원, 말단 직원 등이 고루 섞여 있도록 했죠.
게임 제목에 '우선순위 결정'이란 말이 들어가지만 그가 이 게임을 진행한 이유는 의사결정을 할 때 우선순위를 어떻게 고려해야 하는지를 참가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었죠. 사실 게임의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고, 그 목적은 워크숍 참가자들의 뒤통수를 치기에 충분했습니다.
메이는 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각 조의 말단사원들만 따로 모아서 비밀리에 지시를 내립니다. 그는 말단사원들에게 게임의 모범답안(NASA의 전문가들이 제시한)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했죠.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조별로 답을 결정해야 할 시간이 되면 여러분은 '내가 답을 알아냈어요'라고 조원들에게 말하세요. 하지만 제가 미리 정답을 알려줬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꼭 이 규칙을 지켜주세요."
모든 조의 말단사원들에게 정답을 알려 주었으니 15개조 모두 정답을 알아 맞히는 게 당연하겠죠? 하지만 정답을 맞힌 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답을 말단사원들에 알려줬는데도 말입니다. 메이는 게임이 끝난 다음에 각 조의 보스(boss)에게 자신이 게임 전에 말단사원들에게 정답을 미리 일러줬음을 공개했습니다. 그랬더니 보스의 얼굴이 붉어졌다고 합니다. 말단사원이 정답을 이야기했을 때 자신이 했던 행동이 잘못됐음을 느꼈기 때문이겠죠. 아니면 메이가 속임수를 썼다는 사실에 격분했을 테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랫사람의 의견을 수용치 않고 묵살시킨 잘못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비뚤어진 위계질서가 조직의 문제해결이나 전략 실행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메이의 '속임수 게임'이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말단사원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해도 '네까짓게 뭘 알겠냐?', '난 너의 보스야. 그러니 내가 정답을 결정할 권리가 있어'라는 생각에 아랫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입을 막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죠.
말로는 아랫사람의 제안을 환영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보스가 독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 많습니다. 분명히 아랫사람의 의견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 좋은데도(그리고 그렇다는 것을 알아도) 자신의 의견을 버리고 아랫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자신의 권위가 꺾인다고 생각하는 관리자들도 많습니다. 한번 자신의 의지가 꺾이면 계속해서 부하직원들에게 휘둘릴 거라고 염려하기도 합니다.
물론 보스가 자신의 의지를 무슨 일이 있어도 밀고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는 권위를 앞세우기 전에 논리나 근거로 부하직원을 설득해야 합니다. '입 닥치고 나를 따르라'는 식의 태도, '너희들은 의견을 낼 자격이나 능력이 없어'라는 식의 언사는 부하직원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내 의견엔 논리나 근거 따위는 없어. 그래도 너희들을 부하니까 따라야 해'라는 것으로 비춰집니다. 자신이 부하직원들에 이렇게 비춰지면 리더십은 물건너 가버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섬유유연제를 통칭하는, 일종의 대명사가 된 단어는 피죤입니다. 요즘 그 회사의 내막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보스의 비뚤어진 권위의식과 경직된 위계질서가 회사 하나를 말 그대로 '말아먹는' 상황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회사의 앞날은 불투명하기 그지 없습니다. 피죤의 사태는 '나쁜 보스'의 극단이 저지는 불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작은 '나쁜 보스'들이 조직에서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전략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사태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의 조직이 '달에서 살아남기' 게임을 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달에서 모두 살아 남을 수 있을까요?
(*참고 사이트 : 로버트 서튼의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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