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일을 번복할 때 직원이 지켜야 할 것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PC 앞에 앉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팀장이 갑자기 부르더니 "지난 번에 말했던 보고서의 방향이 바뀌었어. 새로운 방향에 맞게 다시 만들어야겠어."라고 말한다. 혹은 "위에서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때 하라고 했던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되겠어."라고 말한다. 이때 직원인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글에서는 일을 번복할 때 리더가 지켜야 할 룰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리더가 일을 번복할 때 직원이 가져야 할 3가지 마인드 혹은 룰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부정적 감정을 통제하라. 일을 다시 해야겠다 혹은 했던 일은 없던 것으로 하자, 라는 팀장의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다. 지금까지 몇날 며칠 고생을 했는데, 일을 번복하다니! 그 힘든 시간이 아무 소용이 없다니! 짜증과 분노가 명치 끝을 찌르고 얼굴이 붉게 변하면서 아무 일도 하기 싫은 심정이 된다.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팀장이 조금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주 못마땅하다. 급기야 처음부터 일의 방향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이제 와서 말을 바꾸다니, 리더의 지적 능력까지 의심스럽다. 또한, 윗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팀장이 '아주 쉽사리'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 같아서 과연 팀장 본인의 생각은 있기나 한 것인지 또한 의심스럽다.
감정이 이렇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감정을 통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일을 번복하지 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업무 로드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일을 번복하든 그렇지 않든 회사에 왔으면 업무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이 직원의 의무임을 서로 약속하지 않았는가? 일을 다른 방향으로 해야 한다면 앞으로 주어진 업무시간에 그 일을 '이어서' 하면 된다.
일의 방향이 번복되지 않고 원래대로 진행될 때 10일이 걸린다고 해보자. 10일 후에 일을 끝마친다고 해서 그 후의 시간이 '노는 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인 조직이라면 그 후에는 새로운 업무가 다시 부여되기 때문이다. 일의 방향이 새롭게 바뀌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면, 지금까지 그 일에 얼마의 시간을 투여했든지 앞으로 10일 간 변경된 그 일에 다시 몰두하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일을 번복하면서도 원래의 마감일을 지키라고 하면 어떻게 되죠? 그러면 야근을 하든지 주말 근무를 하면서 마감일을 맞추느라 엄청 고생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이야기하겠다.)
리더가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엄청난 감정 노동이다(지난 글 참조) 그러니 직원은 일을 번복하려고 자신을 부른 팀장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을 시키는 것도 어렵지만 이미 지시했던 일을 번복하는 것은 리더 자신에게도 엄청난 감정적 부담이 된다. 팀장 개인의 생각이 바뀌었든 위에서 다른 지시가 내려왔든, 보통의 팀장이라면 '직원에게 일이 바뀌었다고 어떻게 이야기할까?'라고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윗사람-아랫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팀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팀장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수평적 조직문화 아니겠는가? 일의 번복은 팀장이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성과를 내고자 하는 팀장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불필요한 감정 대립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의 방향이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했던 일을 없던 것으로 하는 경우라면 어떤가? 이때도 직원 자신의 업무 로드가 늘어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다른 업무를 지시받을 때까지 약간의 휴지기를 가질 수도 있으니 업무 로드가 조금은 줄어든다. 기존 업무가 폐기되고 새로운 업무를 곧바로 부여 받는다 해도 업무 로드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 직원의 의무는 퇴사하기 전까지는 업무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이지, 퇴사 전까지 반드시 '몇 포인트'를 따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일이 폐기 당하는 바람에 이번에 0포인트가 됐다고 해서 퇴사 시점이 강제적으로 연장되는 것은 아니다(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퇴사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 나는 지금 감정적 반응이 아닌 '매우 합리적' 관점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껏 몇날 며칠을 고생해 만든 일을 자기 자신과 지나치게 일체화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팀장이 일의 방향을 바꾸거나 일을 폐기하는 것을 자존심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지 말라는 의미다. 어차피 업무시간에는 일을 하는 게 직원의 의무(자신이 연봉을 받는 이유)라 생각하면서 '욱'하는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덜하는 것이 스스로의 동기 저하와 번-아웃을 막을 수 있다.
둘째, 일을 번복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말해 달라고 요구하라. 이것은 팀장에게 따지거나 반발하라는 소리가 아니라 일을 잘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번복하는 이유를 팀장이 흐릿하게 말하거나 아예 언급이 없을 경우라 해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자세가 직원이 지켜야 할 룰이다(나는 이런 것이 진정한 팔로워십이라고 생각한다). 번복의 이유는 앞으로 다시 하게 될 일의 방향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아웃풋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번복의 이유가 납득되는 수준을 넘어 '그래, 나도 번복해야 한다고 생각해'라며 스스로 '체득'되어야 일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일할 맛이 나야 좋은 아웃풋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 팀장이 "까라면 까야지, 뭘 그리 이유를 따져?"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따지는 게 아니라 새롭게 만들 아웃풋의 방향을 올바로 이해하고 일에 몰두하기 위해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침착하게 대응하라. 그래도 팀장이 억지를 부리면? 직원 입장에서 당장에 어쩔 도리는 없다. '조용히' 그를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리더가 아닌' 사람 때문에 감정 소모를 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라. 팀장이 어떻게 하든 '업무 시간에 일하는 게 내 의무니까'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통제하라. 그리고 괜히 '오버'하지 말고 그런 팀장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만 일을 끝내라(사실, 하지 말라고 해도 그런 팀장을 둔 직원은 더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이 정도로만 팀에 기여한다).
셋째, 팀장과 함께 일을 새롭게 계획하라. 일이 중간에 번복되었다는 것을 '작은 변경'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원점에서 다시 일을 계획해야 한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아웃풋 중에 살릴 수 있는 것, 앞으로 해야 할 세부업무와 소요시간 등을 다시 산정하여 새로운 일정을 수립하라. 이렇게 하면 당초의 마감일까지 가능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서 마감일이 뒤로 연장될 수도 있다. 팀장이든 직원이든 일의 번복은 '새로운 일의 부여(혹은 위임)'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지, 기존 일의 수정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마감일을 연장해야 하는데 팀장이 주말근무나 야근을 은근히 요구하면서("월요일 아침까지 내 책상 위에 올려놔") 원래의 마감일을 강요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급한 일이라서 원래의 마감일을 지킬 수밖에 없다면, 동료 직원의 협력, 팀장 자신의 동참, 자료나 네트워크(인맥) 지원 등 팀장이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팀장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기 바란다. 또한 원래의 마감일에 어렵사리 맞추느라 야근과 주말 근무를 했다면 (회사의 문화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 휴가를 요청하거나 팀장 권한으로 행사할 수 있는 보상 방안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리고 직원 자신도 본인이 언제 어떤 일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등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기록에 남겨서 나중에 팀장과 평가 면담을 할 때 자기평가의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팀장이 여러 직원들의 기여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려면 직원 역시 이런 기록을 평가 근거로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물론 직원이 이러한 세 가지 룰을 지킨다 하더라도 리더가 직원을 괴롭히기 위해 억지를 강요하거나 강압적으로 찍어 누르려고 한다면, 솔직히 직원으로서 할 수 있는 대응책은 별로 없다. 현명하고 '합리적 마인드'의 직원이라면 그런 리더와 거칠게 맞대응하면서까지 불필요한 갈등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부정적 감정이 자기 자신을 압도하려 할 때마다 어차피 주어진 업무시간에 일을 하는 것이 직원의 의무임을 스스로에게 주지시키는 게 최선의 방어책이지 않을까? 못된 리더가 나의 일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 수는 있지만 나의 감정까지 침범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