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한국인은 미쳤다'고 말하는가?
사회 초년병 시절의 이야기다. 평가 시즌이 되자 팀장이 직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면담을 진행했다. 팀장이 내게 읽어보라고 건넨 평가지에는 점수뿐만 아니라 동료 직원들의 코멘트가 함께 적혀 있었다. 회사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다면평가의 결과물이었다. 담담히 읽어가던 중 눈에 걸린 단어가 있었다. “조직 부적응자.” 순간 귓불이 뜨거워질 정도로 혈압이 올랐다. 함께 적혀 있던 이유 때문에 더 그랬다. “동료들과 잘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친화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내 자리로 돌아와 감정을 억누르고 기억을 떠올려보니 사실 그럴 만도 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포커 치러 가자거나, 볼링 치고 술 한 잔 하자는 말을 자주 거절했던 내가 친화력 빵점의 조직 부적응자로 보였을 테니까. 토요일 오전에 열린 사내 등산대회에서 집결장소 코앞까지 갔다가 ‘내가 뭐하는 짓인가?’란 생각에 조용히 내빼버렸고, 야근하러 저녁 먹으러 가는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하고 자주 ‘칼퇴근’ 하던 나였으니 말이다.
성과를 중시한다는 회사 방침으로 볼 때 초과근무 없이도 정해진 기일에 나름 완벽한 결과물을 무리 없이 내놓는다고 팀장이 인정하는 내가, 고객 중심이 핵심가치 중 하나인 회사에서 ‘고객 지향’ 항목에 높은 평가를 받은 내가 왜 조직 부적응자인가? 그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납득이 좀 된다. 그들에게 성과는 결과물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표시’를 의미했고, 그들에게 고객은 돈을 주는 진짜 고객이 아니라 ‘상사’를 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왜곡된 정의는 여전히 한국 기업들에 만연해 있다.
(이 글은 <한국인은 미쳤다>에 수록된 저의 추천사입니다.)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 문제를 이야기해보라면 가장 먼저 드는 것이 야근이다. 통계에 따르면 일주일에 평균 2.8일을 야근하고 매일 야근하는 경우도 20퍼센트를 넘는다. 1년에 OECD 평균보다 392시간이 넘는 2,163시간을 근무하면서도 생산성은 절반 수준이다(2013년 OECD 데이터베이스 기준). 이 책의 저자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10년 동안 한국 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이 문제의 핵심에 파고든다. 한국 직장인들이 하루에 12~14시간을 회사에 바치는 이유는 성과 창출의 압박을 상사에게 ‘얼굴을 보이는 시간’으로 돌파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조직에서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윗사람에게 일을 열심히 하는 듯 보이려 한다는 것이다. 성과와 고객은 이런 목적에 비하면 하찮은 것으로 간주된다.
한국 직장인들에게 진짜 고객이 상사인 까닭은 ‘까라면 까라’는 말로 표현되는 군대식 계급 문화로 설명할 수 있다. 모 기업의 컨설팅 최종보고회 때 있었던 일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최종보고 전에 나와 인사담당자는 CEO에게 조직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몇 가지 논리를 함께 논의하고 합의했다. 보고를 진행하다가 CEO가 말을 끊고 반대 의사를 표했다. 예상된 반응이었기에 나는 그의 의견을 사전에 합의된 논리로 반박했다. CEO의 반대 이유는 누가 봐도 빈약했지만, 놀랍게도 인사담당자는 “회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며 즉각 동조했다. 게다가 최종보고가 끝나고 나서 “거기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라며 나를 나무라기까지 했다. VIP의 말 한 마디에 거금을 들여 수개월 간 컨설팅한 결과물이 하루아침에 휴지가 됐다. 나는 경악했고 분노했다.
저자 역시 프랑스 법인이 독창적으로 시작했고 고객들도 좋아한 ‘워시 바(Wash Bar)’ 프로젝트를 단지 부회장이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사유만으로 없애버린 사례를 들며 한국 직장인들에게 진짜 고객은 상사라는 점을 고발한다. 고객이란 말을 쉽게 풀면 ‘만족시켜야 하는 대상’이다. 고개를 들어 벽에 붙어 있는 사훈을 보라. 고객이 빠지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 고객은 누구를 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사실 저자가 제기하는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 문제를 우리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낯부끄럽게 만드는 이 책을 이 시점에 읽고 되새겨야 할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한국 기업들이 인간관계를 중시한다는 말은 환상이다. 저자가 밝혔듯, 한국 본사에서 높은 임원이 프랑스에서 신제품 광고가 잘 되고 있는지 시찰하러 온다는 말에 유통업체를 설득해 그 시간만 자기 회사의 TV를 전면에 깔도록 부탁한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인화’를 중시한다는 엘지라면 자기네 체면을 살려준 유통업체들에게 고마워할 법도 한데 법인장은 입을 싹 씻었다. 협력업체와의 인간관계, 정(情)을 중시하는 문화는 목표 달성이라는 미명 하에 온데간데없어졌다. 오로지 ‘갑’과 ‘을’이라는 인간관계만 존재한다.
둘째, 조직에서 개인이 철저하게 소외됐다는 점이다. 프랑스 법인의 간부 직원이 과로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나오는 자리에서 한국인 직원들이 의사를 붙잡고 처음 내뱉은 질문이 이를 말해준다. “언제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요?” 나름대로 걱정되어 한 말이었겠지만 “환자는 괜찮나요?”란 말 대신 환자의 업무 복귀를 염려하다니, 이것은 조직 내에서만 자아를 발견하고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한국 직장인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진정 ‘나’를 위해 일하는 한국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셋째, 이상한 방법으로 ‘한국’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영어로 대답한 저자에게 신임 부회장이 “한국어를 잘 못하는군요.”란 핀잔을 줬다는 점, 신임 부회장 취임 후 회사 내 유일한 언어는 한국어라면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사례만으로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신임 임원 워크숍에서 부인들을 모아 놓고 남편의 원활한 근무를 위해서는 입을 닫고 아내로서 완벽한 내조를 해야 한다는 교육을 왜 하는 걸까? 왜 회사가 가정생활까지 직장생활의 연장선에 놓으며 간섭하는 걸까? 회사를 위해서라면 가족 구성원들도 동참하라는 것은 만용 아닌가? 이것이 한국의 문화인가?
모 그룹사의 인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나는 한국 기업의 조직문화 문제를 한창 설명하던 중이었다. 내내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수강생이 손을 들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주변 직원들은 퇴근시간이 되면 상사 눈치 안 보고 바로 퇴근하거든요. 선생님의 말씀은 요즘의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조금 당황스러웠다. 무어라 답할지 시간을 벌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반문하는 나를 다른 수강생이 구제해주었다.
“사업장마다 다른 것 같은데요.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는 상사 눈치 보느라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열에 일곱은 되거든요. 아직 심한 상태입니다.”
그렇다. 많이 개선됐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갈 길이 멀다. 이 책이 고발하는 우리 기업의 고질적인 조직문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첫째, 상사가 아니라 고객을 위해 일하라. 저자가 많은 사례로 고발했듯이, 업무들 중 상당수가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결재 받기 위한 일들이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일들이다. 아침에 사장실 앞에 결재판을 들고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마치 어른의 허락을 받을 수 있는지를 염려하는 아이의 초조함이 느껴진다. 서양인이라고 해서 일을 적게 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이 높은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정해진 업무시간에 핵심적인 업무에 집중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상사 비위를 맞추기 위한 요식행위만 사라져도 야근은 줄어들고 성과는 높아질 것이다.
둘째, 성과주의를 재고하라. 높은 목표를 부여하고 보상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단선적 사고를 버려라. 많은 연구가 증명하듯이 성과주의는 어떻게 해서든 평가점수만 높이려는 동기를 자극하는 바람에 정치에 능한 직원들을 중용하고 진정한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직원들을 실망시킨다. 이렇게 조직의 활력이 저하되면 다시 강력한 성과주의로 직원들을 채찍질하면서 악순환을 지속시킨다.
셋째,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라. 한국 기업에 다니는 어느 미국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불만을 토로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야근, 계급문화, 회식 관행보다 그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동료들이었다. 변화는 침묵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모닝커피를 금하고 토요일에도 출근하게 만든다고 술만 마시는 신세 한탄은 이제 그만하라. 어차피 다음날에도 무슨 일 있었냐며 순응할 텐데 말이다. 진정한 고객과 성과에 복무하려면 우리의 조직 문화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라.
지금 나는 독일의 어느 호숫가에 앉아 이 글을 쓴다. 물이 꽤 깊고 찬데도 독일인들은 아무 제약 없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유명 관광지라 수영하다가 사고가 났을 법한데 경고문도 없고 안전요원도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야단법석일 텐데 말이다. 왜 그럴까 궁금해 하다가 이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게 틀림없다는 답을 얻었다. 그리고 조직의 통제와 논리에 순응하고 조직인으로서의 자아를 중시하는 우리들은 과연 이들 독일인들처럼 삶을 즐길 수 있을까란 생각에 이르렀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단지 한국 조직은 문제가 많고 서양의 기업 문화는 좋다는 이분법적 비교가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그리고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갖게 한다. 책 제목처럼 조직에 미쳐버린 한국인들이 ‘나’를 잃어버렸는데도 잃어버렸는지조차 모른다는 사실, 이것이 그의 까칠한 문장 속에서 건져내야 할 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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