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출세에 좀 겸허해 지시기를.
성공한 사람들이 방송이나 유튜브에 나와서 하는 말을 듣거나 그들이 쓴 책을 보면,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여러분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여러분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이렇게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요, 저는 그 말을 10~20% 가량만 귀담아 듣고 나머지는 흘려 보냅니다. 그들 성공의 대부분은 사실 운에 의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물론 성공한 사람들의 땀과 노력은 박수와 칭송을 받을 만합니다. 저는 그들의 신고(辛苦)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과 재능, 노력이 성공의 대부분을 견인했다는 식의 논리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력과 재능이 없는데도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꾸짖는 듯한 스탠스에는 더더욱 동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성공한 이유의 대부분은 운이었을 테니까요.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성공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까 싶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절대 생각하지는 않지만, 고맙게도 저를 롤모델로 삼는 사람들이 가끔 나타나곤 합니다. 그들이 저에게 “어떻게 해야 저도 선생님처럼 경력을 쌓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을 때마다 저는 좀 곤혹스럽고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분명 저도 노력은 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없거나 부족한 재능이 한줌 가량 있긴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제가 이렇게 밥은 좀 얻어 먹으며 다닐 수 있는 까닭은 대부분 운입니다.
우선 저는 극악 난이도의 학력고사를 치른 탓에 보기좋게 떨어질 줄 알았지만 2지망을 잘 써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입사한 첫 직장은 IMF 직전에 부도를 맞고 타사에 인수되었지만, 그 덕에 저는 대학 때 동경했던 컨설턴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인수 합병 과정을 겪은 상사들이 컨설팅 회사로 이직했고 공중에 붕뜬 저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죠.
며칠 전 <시나리오 플래닝> 개정판을 낸다는 소식을 구독자 여러분께 드렸는데요, 제가 시나리오 플래닝 전문가로 (조금은) 알려져 있고 그간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이유 역시 우연이었습니다. 그 운은 남들이 손사레치던 시나리오 플래닝 프로젝트를 엉겹결에 받아서 수행했던 것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왜 저에게 그 일이 주어졌냐고요? 동료 컨설턴트들이 다 프로젝트에 투입돼 있을 때 저는 프로젝트를 막 끝내고 쉬고 있던 차였거든요. 정말 운이 좋았죠?
외국계 컨설팅사를 나와 혈혈단신으로 인퓨처컨설팅이란 회사를 시작했을 때 마침 컨설팅 시장이 활황이라서 자리잡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모 온라인 잡지에 글을 기고한 것을 계기로 책 저자로 데뷔할 수 있었고, “너 이거 한 번 강의해 볼래.”라는 누군가의 대타로 강의를 맡게 됐다가 지금은 기업 강사로 ‘약’을 팔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일일이 언급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소소한 운들이 엎어지고 포기하려는 저를 일으켜 세웠으니, 누군가가 저에게 성공의 비결을 혹시라도 묻는다면 당황하며 ‘어버버~’할 수밖에 없습니다.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글쎄요. 하다보니 이렇게 됐죠.”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공의 대부분은 운에서 비롯된 것이니 소위 '출세'했다고 으스대거나 고개를 빳빳이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남들을 업신여기거나 탄압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학력고사나 수능시험 잘 봐서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이들이 고작 사법고시 잘 치른 행운을 권력 유지하는 데 평생 써먹는 일은 이제는 없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말합니다. 본인의 출세에 좀 겸허해 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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