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자가 내 귀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어제 점심 무렵에 있었던 일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경기도 가평에서 중요한 행사를 진행하고 돌아온 탓에 월요일 하루는 푹 쉬고자 했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니 벌써 시계는 10시 반을 넘어가고 있더군요. 집에서 밥을 차려 먹자니 귀찮고 성가셔서 집 근처 브런치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 브런치 가게는 주문을 먼저하고 음식을 받는 룰로 운영되는 곳이라 카운터에 줄을 서서 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귓가에 누군가의 입김이 느껴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어떤 중년 여성이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더군요. 그것도 제 뒤에 바짝 붙어서. 그녀는 전화 속 상대방과 무엇을 주문할 거냐, 나는 뭘 먹을 거다, 식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다 알아들을 만한 성량으로.
한번쯤은 실수로 그리 했겠지 싶어 아무렇지 않게 앞을 보고 있는데 또 제 귀에 입김이 느껴지더군요. 이번엔 반대편 귀로 더 뜨겁게! 다시 돌아보니 그 여자가 등 뒤에 바짝 다가와 있었습니다. 전화는 끊은 상태였지만 순서를 기다리는 게 답답해 내쉰 듯한 한숨이 제 귀에 다이렉트로 불어왔던 것이죠.
부아가 나더군요. 그렇게 몸이 닿을락 말락 제 뒤에 바짝 붙어있으면 본인의 주문 순서가 빨리 올 거라 믿는 걸까요? 아니면 저를 성가시게 만들어 음식 주문을 포기하게 만들고자 한 걸까요? 뭐가 그리 급해서 낯선 남자의 귀에 입김을 불어넣는, 에로틱하기는커녕 불쾌지수를 급상승시키는 행위를 하냐는 말입니다. 성격이 급해도 너무 급한 것 아닙니까?
정말 성격이 급하구나, 느꼈던 상황이 또 있었습니다.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려고 간 코스트코의 계산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카트에 가득 담긴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 놓는데 자꾸 제 겨드랑이 사이로 냉동만두를 쥔 어떤 아주머니의 손이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자기가 쇼핑한 물건을 올려 놓으려는 제스처임이 분명했죠.
제 손이 카트로 가면 아주머니의 손이 계산대에 올라오고, 제가 물건을 들어 계산대에 올리면 아주머니의 손이 후퇴하고...이렇게 반복되던 아주머니의 '부질없는 행동'은 제가 물건들을 계산대 위에 다 올려놓고 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해봤자 본인의 물건값 계산이 빨리 끝날 리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성격이 급한 겁니까, 아니면 상황 인지를 전혀 하지 못하는 겁니까?
성격 급한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당하다 보니 이제 이력이 날 법도 한데, 매번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조금 여유를 가지면 안 될까요? 그렇게 1초, 2초를 아껴서 뭐 하려고요? 그 시간 모아서 뭘 하시려고요? 시간을 전혀 줄이지도 못하면서 남에게 불쾌감만 주지 않습니까!
급한 성격은 연령의 고하를 따지지 않나 봅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건물을 들어설 때 당했던 일인데요, 지금 떠올려도 실소가 터지곤 합니다. 밀어야만 열 수 있는 유리문이었는데 제가 왼손을 써서 문을 미니까 건너편의 키작은 젊은이가 제 겨드랑이 사이로 걸어 들어와 뒤로 쏙 빠져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연 문을 넘겨 받는 것이 에티켓이건만, 마치 본인을 위해 제가 문을 열어준 것마냥 '당당히' 빠져나가다니요! 몇 초도 못 기다리고 저를 문 열어주는 집사 취급해야 속이 후련합니까!
성격이 급한 건 그렇다 칩시다. 그래도 남에게 불쾌감을 줄 만큼 본인의 급함을 충족시키지는 맙시다. 무심결에 나오는 '급한 성격 혹은 습관의 발현'이 남에게 불쾌감을 선사할 수 있음을, 그리고 본인의 평판을 좀먹을 수 있음을 좀 주의하자고요. 귀에 입김을 불어넣는, 전혀 에로틱하지 않는 행위를 남의 남자에게는 좀 하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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