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려면 자료 수집이 필수다
책을 쓰겠다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책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명성을 얻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인생과 경험을 정리한다는 차원일 수도 있다. 혹은 누가 책을 써서 ‘작가’라는 칭호를 얻는 걸 보고 부러운 마음에 책을 써보자 결심했을 수도 있다. 나는 ‘책은 이런 목적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할 마음은 전혀 없다. 인세로 몇 억 벌어보겠다는 야심도 훌륭한 목적이다. 이름 석 자가 담긴 책을 죽기 전까지 한 권쯤 가지고 싶다는 욕망도 힘껏 박수쳐 줄 수 있는 목적이다.
누군가를 위해하고 근거없이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 반드시 인류의 행복과 공영을 위해 책을 써야하는 것은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 책을 써야겠다는 동기 자체가 생긴 것이 중요하지 목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책을 쓰는 목적이 뭔가 원대한 이상과 이어져 있을수록 책은 잘 써지지 않을 것이니 조심하라. 글을 쓸라치면 들이닥치는 자기검열의 잣대가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막을 테니 말이다. 책 하나 쓰는 데 지나친 ‘엄숙주의’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에게도) 강요하지 마라.
그렇다면 어떤 주제로 책을 써야 할까? 이런 질문을 나에게 하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걸 저에게 왜 묻나요?’라고 의아하게 여긴다. 그건 내가 답해줄 질문이 아니거나와 답을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간 살아오면서 느낀 소소한 감상이어도 좋고,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연구해 온 주제여도 좋다. 아니면 아직 잘 알지 못하지만 책을 써가면서 동시에 지식을 쌓고 싶은 주제여도 상관없다. 직장에서 특정 직무를 오랫동안 수행하면서 얻은 실무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체계화하겠다는 주제여도 좋다.
“어떤 주제로 책을 써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책 한 권 분량이 될 만한 주제라고 생각되나요? 그러면 책으로 쓰세요.”이다. 알다시피 책은 보통 짧게는 200여 페이지에서 길게는 5~6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가진다. 책을 어떻게 편집하냐에 따라 페이지가 팍팍하게 혹은 ‘널널하게’ 구성될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의 책 두께가 보장되지 않으면 외양상 곤란하다. 평소에 자신의 관심분야에 속한 여러 책들을 접했을 터이니 ‘이 분야의 책들은 대략 이 정도의 분량이구나’라고 감을 잡았을 것이다. 통상적인 분량의 책으로 담아낼 수 있기만 한다면, 무슨 주제라도 좋다. 만약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몇 페이지면 끝날 주제라면 책으로 펴내기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올리는 편이 낫다.
이렇게 여러분이 각자 책을 쓰는 목적과 주제가 나름대로 결정됐다는 전제에서 앞으로의 책쓰기 강좌를 진행하겠다.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후에 다가오는 여러 가지 두려움들 중 가장 압박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펴내면 잘 팔릴까일까? 아니다. 책을 잘 쓰면 될 일이고 원고를 다 쓰고 나서 잘 팔릴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책을 처음 쓰는 입장이라면 김칫국을 너무 빨리 마셨다.
그렇다면, 책의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까일까? 글쎄, 나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책 전체의 논리 구조를 수립하고 그 밑에 글을 배치하는 일은 분명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라서 대다수의 ‘책쓰기 관련 책’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도 처음 책을 쓸 때는 그런 책에서 제시하는 지침을 충실히 따라보려고 애를 썼다. 먼저 책의 전체 주제를 맨 꼭대기에 두고 그 밑에 파트를 배치하고 파트 밑에는 챕터로 세분하고 챕터 밑에는 소주제를 나열하는 방식, 소위 ‘피라미드 구조’로 책의 전체 목차를 구성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피라미드 구조는 논리적인 보고서를 쓰기 위해 무엇보다 훌륭한 가이드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 구조를 만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아무리 목차를 만들고 수정해도 엉성해 보이고 중간중간에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대한 주제가 지붕으로 올라가 있는데 가느다란 기둥 몇 개로 겨우 받치고 있는 듯 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며칠 동안 끙끙거린 후에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자료 수집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책으로 쓰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여러분이 수년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책을 쓰려면 그 경험과 노하우 뿐만 아니라 각종 자료(논문, 기사, 사례 등)를 반드시 수집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와 논리를 각종 자료로 백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본인의 지식, 경험, 노하우만으로는 책의 주제를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 세상에는 여러분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이미 여러분에 앞서 무언가를 미리 해놓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자료를 수집하다 보면 “아, 이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주장이군. 일리가 있어.’ 혹은 ‘이 자료는 내가 추가로 연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군. 목차에 추가해야겠어.’라고 깨닫게 된다. 이런 작은 깨달음들이 어느 정도 모여야 그때서야 피라미드 구조라는 집을 이렇게 설계하면 되겠네, 라는 눈을 가질 수 있다. 붓을 들기 전에 반드시 벼루에 먹을 갈듯이, 책쓰기 전에 자료 수집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자료 수집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란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자료 수집에 특별한 지름길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자료 수집처럼 묵묵하고 우직하게 진행해야 하는 일도 없다. 내가 사용하는 자료 수집 방법을 소개할 테니 참고하기 바란다. 먼저, 자료 수집의 채널에는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 것이 있다. ‘공식적인 채널’은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탐색하는 정보 채널을 말하는데, 나에게는 책과 경영 관련 사이트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우선, 공식적인 자료 수집 채널로서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여러분이 어떤 주제로 책을 쓰겠다고 마음 먹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관련 책을 검색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문학 분야가 아니라면 분명 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적어도 몇 권은 존재할 것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 해도 어떤 책은 여러분의 생각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쓰여졌고 또 어떤 책은 여러분의 논리와 완전히 반대쪽을 지향하기도 할 것이다. 무엇이든 개의치 말고 그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어라. 물론, 수십, 수백 권의 관련도서를 모두 구입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책을 엄선하기 바란다
나는 책을 쓰려면 그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적어도 10~20권 정도는 먼저 읽어 볼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여러분이 지향하는 논리를 강화하고 보강하는 데 이보다 손쉽고 시간이 적게 드는 방법은 없다. 그 책의 저자들은 여러분보다 책쓰기에 있어 ‘선배’들이다. 그들이 어떤 구조로 책을 구성했는지, 어디에서 사례를 구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단 배치를 어떻게 했는지를 참조하는 데 훌륭한 교재가 되어 준다. 또한, 책을 읽어 가다가 ‘어, 이건 좀 아닌데…’하며 논리상의 오류나 비약을 발견하고 ‘나라면 어떻게 이 논리적 오류를 극복할까?’라며 반면교사적인 공부를 할 수도 있다. 독서광이 돼라는 소리는 아니다. ‘자기 분야’ 선배들의 책을 제대로 정독한 적도 없으면서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것은 스파링 훈련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채 링에 오르는 얼치기 복싱선수와 마찬가지다.
이렇게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을 온라인으로 바로 주문하는 것도 좋지만, 사정이 된다면 오프라인 대형서점에 가서 그 책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웹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은 대단하게 되어 있지만 정작 몇 페이지 들춰보니 ‘하나마나 한’ 이야기만 나열된 책들이 좀 많은가? 이런 책이라면 구입하지는 말고 ‘아, 이렇게 책을 쓰면 안 되겠구나’라는 점을 파악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라. 책 구입비용뿐만 아니라 책 읽는 시간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책들은 책 말미에 참고문헌 목록이 충실하게 적혀 있는 것들이다.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힌 책들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저자 본인만의 생각과 지식, 사례만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터인데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혀 있으면 독자에게 무언가를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그냥 상상으로 쓰거나 조작한 거 아닌가?’ 분명 타인의 지식을 참고하거나 인용했는데 그걸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표절에 준하는 비윤리적인 행동이기에 비판 받아 마땅하다.
참고문헌 목록을 잘 갖춘 책을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출처를 내가 직접 찾아내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출처가 논문이라면 구글에서 그 논문을 초록(abstract)를 읽어보고 “이거 괜찮네” 싶으면 논문 전체를 다운로드해서 읽곤 한다. 출처가 누군가의 책인 경우에는 아마존에 들어가 킨들 버전(이-북)으로 읽거나 직접 서점에서 구입하곤 한다. 참고문헌이 충실하게 적힌 책들은 이렇게 자료 수집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참고문헌 자료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나의 해석이 다를 수도 있음을 발견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본문만 읽지 말고 참고문헌을 하나씩 검색해서 읽는 습관을 갖기 바란다.
[ 세 줄 요약 ]
책쓰는 목적과 주제는 무엇이든 좋다.
책 목차를 쉽게 구성하려면 사전에 자료 수집이 필수다.
자료 수집의 공식적 채널인 ‘남이 쓴 책들’을 충분히 활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