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처음에는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만나지 말아야 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물난리에 전혀 피해 받지 않을 고지대의 뽀송뽀송한 집에 앉아 도로가 잠기고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위로 강물이 범람한다는 뉴스를 TV로 접할 때 느껴지는 이기적 안전감이랄까?
원래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고, 하루라도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미는 더더욱 아니며(사람을 많이 만나면 나는 에너지가 급격히 고갈된다), 오래 전부터 혼자 일하며 ‘직주일체’의 업무 환경에 익숙해 있는 터이니 ‘대역병의 시기’는 내게 내적 지향의 삶을 고요하게 살아도 별 문제 없다는 윤허를 내린 듯 했다. “코로나 때문에 이번 강의는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베트남 여행(2020년 1월)에서 돌아와 클라이언트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을 때는 마음 속으로 ‘아싸~’를 외쳤다. 갑자기 빈 시간을 어떤 호작질을 하며 놀지 궁리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다. 통장이 ‘텅장’이 될 때까지는.
신종플루나 사스, 메르스처럼 금세 지나가고 말 것이라 생각했던 코로나 19가 팬데믹으로 확대되면서 제법 차 있던 내 일정표는 어느새 새까만 취소선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아뿔싸, 일이 끊기고 만 것이었다! 대면을 해야 하는 강의나 워크숍을 코로나 시국에 누가 하려 하겠나? 컨설팅 역시 특성상 원격으로는 서비스가 곤란한 지라 뚝 끊기기는 매 한가지였다. 곧 나아지겠지, 애써 불안감을 감추며 놀기에 전념했지만, 4월에 이르러 역대급의 최저 한 달 소득(몇 십만 원)을 손에 쥐고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정지출 규모가 제법 되다 보니 이러다가 마이너스 대출 한도까지 다다르는 건 아닐까, 위기감이 엄습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놀아도 노는 게 아니었다.
몇몇 사람들은 재빠르게 변화에 적응했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이들은 줌(Zoom) 강의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기 시작했고 제법 많은 강의를 수주하는 듯 보였다. 유튜브를 지렛대 삼아 수십,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리며 코로나 때 새로운 스타로 등극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일이 끊긴 시대에도 돈 벌 사람은 돈을 버는구나 싶었던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동시에 시기했다. 그리고 고민했다. “난 뭘 해야 먹고 살지?”
몇년 전부터 나는 컨설팅이나 강의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을 버리고 싶었다. ‘유 대표’라는 진부한 직함 말고 ‘유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오던 터였다. 체력도 딸리기 시작하고 워낙 빛나는 재능을 지닌 이들이 많기에 컨설팅과 강의라는 궤도에서 천천히 하강하여 ‘유 작가’라는 활주로로 연착륙할 생각이었다. 그간 내가 낸 책과 번역서들이 연착륙에 도움이 되는 안정된 기류를 만들어 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고 했던가? 코로나 19라는 돌발변수가 튀어 나와 3 ~ 4개월이라는 단기간에 경착륙를 시도하라고 강제할 줄 누가 알았나? 나는 지면과의 충돌을 대비하며 작가로서 첫 헬멧을 급히 뒤집어 써야 했다.
내가 쓴 헬멧은 「주간 유정식」이었다. 경영을 주제로 한 글을 써서 주간지 형태로 발간하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오래 전부터 가졌던 계획이었는데, 게으르기도 하고 다른 일로 바쁘기도 해서 미뤄두고 있었다. 어렴풋한 의도만 가졌던 터라 구체적인 발간 계획을 서둘러 마련해야 했다. 어떤 컨텐츠를 담을지, 외양 디자인은 어때야 하는지, 구독자는 어떻게 모집해야 하는지, 또 구독료는 얼마로 설정해야 하는지 등 막상 시작하려니 고려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다급하니 못할 것은 없었다. 내가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글쓰기가 큰 돈이 될 리는 만무했으나, 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텅장’이 울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한 달을 좌충우돌하다가 2020년 4월 21일 화요일, 「주간 유정식」 1호가 200여 명의 구독자들에게 처음으로 발송되었다(나중에 구독자 수는 270여 명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어느덧 1년이 지나 50호(2021년 4월 13일)를 끝으로 시즌 1이 무사히 완간되었다.
매주 3편의 칼럼(200자 원고지 60매 이상)을 쓰는 일은 예상보다 매우 고됐다. 주중에 자료 조사를 하고 주말에 3편의 글을 쓰는 패턴이 50회나 반복됐고 휴일을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게다가 도중에 출판사로부터 번역서 3권을 의뢰 받는 바람에 매일 토 나올 정도로 워드 프로그램과 씨름해야 했다. 무리를 한 나머지 나는 두어 번 크게 앓았고 구독자들께 양해를 구해 휴간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를 악물고 글을 썼다. 책 제목 그대로, 일이 끊겨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위기가 닥칠 때마다 나는 글쓰기를 주무기로 꺼내 들었다. 독립해 컨설팅을 시작할 때 이름을 알리고 입지를 다질 목적으로 첫 책 『경영유감』을 썼고, 2007년에 무리해서 집을 사는 바람에 가계를 꾸려 나가기가 어려웠을 때는 단 3개월 만에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를 써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한눈 팔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2008년에 금융위기가 불어닥쳐 모든 산업이 불확실성에 휩싸일 때는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책을 씀으로써 경영계에서 ‘시나리오 플래닝 하면 유정식’이라는 네임 밸류를 선점했다.
슬슬 컨설팅 수주건이 줄어들어 매출의 50% 밑으로 떨어지자 나는 ‘컨설팅은 한물 갔구나.’ 판단했다. 그때부터 나는 블로그를 개설해 매일 한 편씩 글을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경영의 시사점을 주는 논문이라면 뭐든 읽고서 그 내용에 내 생각을 더해 글을 썼던 것이다. 무려 5년 이상 매일 글쓰기를 지속한 결과로 탄생한 책이 『착각하는 CEO』다. 지금껏 내가 낸 책들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이 책 덕에 나는 출판계에서 경영서를 제법 잘 쓰는 사람으로 인정 받았다.
위기가 닥칠 때 나는 홍보나 영업을 강화하거나 다른 쪽으로 사업을 전환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었다. 허나 그러지 않고(또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글을 썼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리고 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추락시키는 상황에서도 나는 왜 하고많은 것들 중에서 「주간 유정식」이란 헬멧을 뒤집어 썼을까?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글쓰기가 궁극적인 ‘내 일’임을 내 무의식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누가 “왜 글을 씁니까?”라고 물으면 나는 “내 일이니까요.”라고 답해야겠다는 것을.
일종의 직업병인지 아니면 놀고 있지 않다는 걸 만방에 변명하고 싶었는지, 나는 넷플릭스로 미드를 정주행하거나 누군가의 행동을 관찰할 때, 혹은 어딘가에서 우연히 글을 접하거나 지인과 일상적 대화를 나눌 때 등 그 모든 상황이 경영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찾으려 애썼다. 일이 끊긴 탓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는데, ‘열폭’하며 나를 까칠하게 만드는 것에 관해 쓰다 보니 까칠함이란 그저 삐딱한 감정이 아니라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감정 상태’라는 걸 차차 알게 됐다. 또한, 일이 끊겨 펑펑 남아 도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는 방법들 중 하나는 내 삶의 방식을 다시금 정리해 글로 남기는 것이었다. 이런 탐색과 해석과 정리의 결과물들이 ‘경영 일기’라는 곳간에 쌓였다가 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잠깐! ‘경영’이라는 말을 보고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단어잖아!”라고 단정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영은 ‘목표 달성을 위한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목표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그러니 기업 경영만 경영이 아니다. 가족에겐 ‘행복’이란 목표가 있기에 가족 경영 역시 경영이고, 개인에겐 각자의 목표가 있을 테니(돈, 명예, 권력, 행복 등) 개인 경영도 경영이다.
일상의 오락거리나 이야기, 감정 등에서 ‘삶을 어떻게 경영할까?’란 질문의 답을 찾아 본 이 책이 독자 여러분의 삶을 훌륭하게 경영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제 ‘유정식이 그간 어떻게 코로나 위기를 글쓰기로 견뎌냈는지’ 펼쳐 읽어 보자. 보장하건대 술술 잘 읽히리라.
2021년 여름
연희동에서
(이 글은 신간 '일이 끊겨서 글을 씁니다'에 수록된 머리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