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컨텐츠/리더십 및 자기계발

강의 들을 때 노트북PC로 받아적지 마라

인퓨처컨설팅 & 유정식 2020. 2. 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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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의를 하거나 고객과 회의를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PC(랩탑)를 들고 와서 강의내용과 회의 결과를 받아 쓰는(실은 타이핑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특히 강의할 때 수강생 중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타이핑하는 동작과 소리가 마치 볼펜을 딸깍거리는 소리처럼 거슬려서 다음에 해야 할 말을 잠시 잊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래도 남들이 볼 때는 강의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여서 뭐라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곤 한다. 어떨 때는 스크린만 쳐다보는 모습이 다른 업무(혹시 SNS?)를 하는 것 같아 의심이 들지만, 일일이 확인할 수 없거니와 다 큰 성인에게 지적한다고 해서 달라질까 싶어 관두고 만다. 기분만 상하게 만들 터이니.

 



하루 중 핸드 라이팅으로 글을 쓰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아마 10퍼센트도 되지 않을 것이다. 펜을 쓰기보다 노트북PC를 사용하는 이유는 아마 손으로 쓰는 것보다 타이핑하는 게 속도가 빠르고 다른 자료를 만들 때 쉽고 빠르게 사용할 수도 있으니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타이핑하면 거의 녹취하듯이 강사의 말을 받아 쓸 수 있지만, 손으로 글씨를 쓰면 요약할 수밖에 없어서 자칫 유용한 정보를 놓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노트북PC로 타이핑하면 손으로 글씨를 쓸 때와 비교하여 강의나 회의의 전체적인 개요와 컨텍스트(context)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팸 뮐러(Pam Mueller)는 두 가지 방법으로 TED 강의 내용을 필기하게 한 다음, 실험 참가자들에게 강의에 대한 퀴즈를 풀도록 했다. 그랬더니 강의에서 나온 개별적인 사실들을 기억해내는 정도는 두 방법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강의 전체에 내재된 기본 개념을 설명하라는 문항에 대해서는 손으로 필기를 한 참가자들의 점수가 확실히 좋게 나타났다(아래 그래프 참조).

그림 출처: 아래 명기한 논문

 

핵심은 강의 내용을 생각하며 필기하느냐 그렇지 못하냐였다. 노트북PC로 필기를 하면 강사의 말을 거의 그대로 받아 적는 데 급급하여 강사의 말을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다. 반면 손으로 필기를 하면 모두다 받아적을 수가 없으니 오히려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오히려 이점으로 작용해 강의의 전반적인 개요와 개념을 기억할 수 있고 자기 나름대로 정보를 해석할 수 있다. 또, 핸드 라이팅을 할 때면 중요한 부분에 동그라미나 밑줄을 치게 되는데 이 또한 강의 내용의 핵심에 보다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다 준다. 물론 워드 프로세서에도 그런 기능이 있지만 손으로 쓸 때만큼의 자유도를 주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반론을 제기할지 모르겠다. 핸드 라이팅할 때처럼 노트북PC로 중요한 부분만 요약해서 필기하게 하면, 노트북PC 사용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이다. 다시 말해, 강사의 말을 노트북PC로 녹취하듯 받아적지 않도록 하면, 핸드 라이팅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뮐러는 이런 가설을 세우고 노트북PC 사용자들에게 일일이 받아적지 않도록 주의를 준 다음에 동일한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렇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노트북PC 사용자들은 핸드 라이팅한 참석자들에 비해 강사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 적으려는 경향이 나타났고, 강의 내용의 개념에 대한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개별적 사실에 대한 기억력은 두 방법 모두 비슷했다). 노트북PC 자체가 강의 내용을 좀더 많이 적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노트북PC로 필기를 해두면 나중에 들여다 보면서 강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복습할 수 있으니 효과가 있지 않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뮐러는 참가자들에게 복습을 하라고 한 다음 1주일 후에 퀴즈를 다시 냈는데, 여전히 핸드 라이팅한 참석자들의 성적이 더 좋았다. 노트북PC로 필기하는 데 시간을 쏟으면 그만큼 생각할 시간은 적어지기 마련이다. 무언가를 필기할 때보다 무언가를 들을 때 집중력이 더 크게 발휘되고 인식 프로세스가 더 깊이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뮐러는 설명한다. 

다른 이들에게 강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거나 녹취를 위한 것이라면 노트북PC로 필기하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강의 내용의 개별적 사실들과 더불어 강의 전체에 흐르는 기본적인 개념과 컨텍스트를 이해하고 오래 기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핸드 라이팅이 훨씬 낫다. 나중에 기술이 고도화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그러니 앞으로 강의를 들을 때는 노트북PC 대신 잘써지는 펜과 질좋은 종이를 가지고 강사의 대사 자체가 아니라 내용을 이해하면서 중요한 부분을 메모하고 밑줄 치고 동그라미 치기를 권해 본다. 그렇게 집중하는 수강생의 모습을 보면 강사도 힘이 나서 열심히 강의를 하게 되니 일석이조가 아닐까? 뮐러의 논문 제목처럼 "펜은 키보드보다 강하다." 


*참고논문
Mueller, P. A., & Oppenheimer, D. M. (2014).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keyboard: Advantages of longhand 

over laptop note taking. Psychological science, 25(6), 1159-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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