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시킨다'는 말은 무엇인가?
리더가 직원에게 '일을 시킨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일을 시킨다'는 우리말 표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직원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도록 지시한다, 혹은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요구한다, 가 될 것이다. 리더가 '일을 시킨다'를 이런 의미로 해석한다면 그 일은 자신에게 속한 것이고 직원은 그저 리더 본인이 그 일을 완수하도록 '돕는 존재'라고 인식하기 쉽다. 어디까지나 일의 오너십(ownership)은 리더에게 있으며 직원은 '몸으로 때우는' 힘든 일을 리더 대신 수행하는 '부하'라고 여기게 된다.
'일을 시킨다'를 리더가 이렇게 인식할 경우에는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일의 오너십이 없는 직원들은 리더가 시킨 일에 몰입하지 못하고 성취감을 경험하기도 쉽지 않다. 일의 결과가 직원 본인이 만든 '작품'이 아니고 그저 '잡일'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스스로의 역할을 축소하기 십상이다. 둘째, 이렇게 직원의 몰입을 기대할 수 없다면 결과물(성과)의 품질을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리더가 모든 것을 잘할 수 없기 때문에 직원들 각각의 독특한 역량과 참신한 아이디어가 일의 성과를 제고하는 주체로 역할해야 한다는 것쯤은 모두 알 터이다. 직원이 일의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그런 역할을 스스로 맡을 수 있을까? 공은 리더가 가져가고 자신들에게는 일이 잘못됐을 때의 불이익만 감수해야 한다면 누가 리스크를 감수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셋째, 리더가 일의 오너십을 모두 쥐고 있으면 설령 물리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일하는 시간은 많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엄청난 부담감에 휩싸일 수 있다. 이는 '번 아웃(burn out)'을 야기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되고 만다. 넷째, 조직의 미래와 전략과 같이 리더가 집중해야 할 업무영역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높다. '실무'를 놓지 않고 모두 쥐고 있는데(직원들은 그저 도울 뿐) 그런 고차원적 업무를 수행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는 자신도 모르게 남들이 모두 싫어하는 마이크로 매니저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는 원인이 된다.
다섯째, 리더 본인이 마이크로 매니저가 되어 번 아웃 일보직전에 있다면 직원들을 책임감 없고 무능하다고 여기기 쉽다. 본인은 조직을 위해 누구보다 애를 쓰는데, 직원들은 무척 한가하고 수동적이며 자기 잇속만 챙기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비뚤어진 시선은 직원들을 모욕하고 비방하며 고압적으로 구는 리더(bullying leader)의 행동을 촉발시킨다. 결국 직원의 몰입도와 만족도에 악영향을 끼쳐 조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일을 시킨다'는 말을 그저 직원에게 힘들고 귀찮은 일을 대신 수행하도록 만든다는 왜곡된 의미로 리더와 직원 모두가 인식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영어로 '일을 시킨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delegate는 15세기부터 '대표로서 비즈니스 거래를 수행할 권한을 준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권한을 위임하여 일을 수행케 한다는 의미였다. 리더가 직원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해당업무에 대한 권한(authority)와 책임(responsibility)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시킨다'라는 말보다는 '맡긴다'는 말이 사실은 더 적절한 단어로 쓰여야 옳다. '직원에게 일을 시킨다'가 아니라 '직원에게 일을 맡긴다'라고 말할 때 리더와 직원 모두에게 느껴지는 뉘앙스는 일종의 '넛지(nudge)'로 작용하여 일의 오너십이 직원에게 있음을 명확하게 인식하도록 한다. 요컨대 '일을 시킨다'는 말은 직원에게 일의 수행 권한과 책임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 '권한 위임'이다.
물론 일의 최종적인 책임은 리더에게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을 직원에게 맡기되 일의 진행과정에 적절하게 개입하고 적절하게 피드백함으로써 원하는 성과물이 나오도록 기여할 책임이 리더에게 있다. 설령 이런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나온 성과물이 애석하게도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을 때의 책임은 결국 리더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리더는 그런 자리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