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을 가지라고 쉽게 말하지 마라
2017년 6월 15일(목) 유정식의 경영일기
“열정을 좀 가져. 열정을 가지면 안 될 일이 없어.”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채근하거나 응원할 때 ‘열정’이란 단어를 언급한다. 역량이 부족해서 어떤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성격이나 기질상 그 일에 도전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열정만 있다면 못해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들여다 봐도 열정의 필요성은 어디에나 등장하는데, 열정을 갖는 것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되는 ‘쉬운’ 일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로 깔려 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조언은 모두 열정을 장착한 상태를 전제로 한다. 헌데 열정을 갖는 것이 정말 쉬울까?
나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단어의 어원을 따져보기를 즐긴다. 그러면 단어에 담긴 고유의 의미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의미를 비교하면서 뜻밖의 통찰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어원을 알려주는 www.etymonline.com 란 사이트에서 열정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 ‘passion’를 쳐보니 생각치 못한 의미와 만났다. 10세기에 쓰인 라틴어 passionem은 십자가의 매달린 예수의 육체적 고통을 의미했다. 우리가 열정의 뜻으로 보통 알고 있는 ‘열광’이나 ‘환호’, ‘선망’과 같은 뉘앙스는 17세기에 가서야 덧붙여졌을 뿐 ‘육체적인 고통과 괴로움’이 passion의 본래 의미였다. 어원으로 봐도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이고, 그렇기 때문에 열정을 갖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그야말로 ‘도전’이다.
열정의 동반자가 고통이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열정이 부족한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열정은 ‘없어야’ 고통이 덜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열정을 갖지 않으면 유리한 점이 많다. 책임을 덜 질 수 있고 좀더 많은 자유시간을 누리고 개인 활동을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열정이 부족한 것이 별로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다. 열정이 부족한 것에는 일이 자기와 맞지 않는다든지, 상사가 제대로 이끌어 주지 않는다든지, 보상이 따라주지 않는다든지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자기 잘못을 부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냉정히 말해, 열정 역시 일종의 재능이라서 ‘그래, 이제부터 열정을 가지겠어.’라는 다짐으로 쉽게 불타오르지 못한다.
조직으로 시각을 돌려보자. 리더가 열정이 부족한 직원에게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목표 설정과 성과관리 방법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방법들이 직원의 마음에 열정이 끓어오르도록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안다. 열정의 옆좌석에 고통이 동반하는데 누가 쉽사리 열정의 열차에 올라타겠는가? 사실 리더가 성과관리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더 높이 더 멀리 도달하도록 직원들을 채근하고 상기시키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 열정에 관한 한 최종적인 목표다.
리더가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은 열정의 열차에 올라태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단호히 구분하는 일이다. 열정을 가지기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는 직원을 억지로 태우려 한다면 그들에게 시간과 노력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정작 열정을 가진 자(열정을 가질 준비가 된 자)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하게 된다.
열차에 태울 직원들을 선별했다면 그들이 쉽사리 열정을 갖지 못하는 이유를 들여다 봐야 한다. 첫 번째 이유는 자신의 업무가 조직의 업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팀원들 중에서는 남들보다 덜 중요하고 덜 긴급한 업무를 담당하지만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업무를 담당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일이 타 팀원들의 성과 창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나아가 팀과 회사 전체의 성과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려주어야 한다. ‘김 대리의 일은 목표 달성에 아주 중요하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이야기해서는 곤란하다. 개별 업무의 아웃풋이 어떻게 타인 업무의 인풋이 되고 성과로 이어지는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열정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고 구체적인 기대감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열정의 행동을 알려주고 그런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책임감을 심도록 해야 한다. 매출 얼마, 고객만족도 얼마, 라는 식으로 목표 달성치를 제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아야 한다. 팀이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썩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할일이 많아 야근을 하는 동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객 대상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상황에서 요구되는 행동을 명확히 제시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조직의 ‘시민’으로서 어떤 규범을 준수해야 하는지 전달하고 서로 합의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열정이라는 열차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목적지에 도착하지는 않는다. 탑승자들이 열차의 각 부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일러주어야 한다.
또한 절대 지속적인 피드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정적이지 않았던 사람은 ‘무열정’이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껍질을 깨고 나오도록 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제부터 열정적으로 일해야지!’라고 생각해도 오랫동안 굳어진 몸은 관성에 따라 행동하려 한다. 또한 리더도 열정적이지 않은 구성원을 보고도 가만히 두고 넘어가려는 관성에 빠진다. 특히 1년에 한번 평가하고 면담하는 제도가 운영 중이라면 그때까지 피드백을 미루려고 한다. 1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자네는 열정적이지 않은 것 같아.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한다면 직원이 과연 그런 피드백을 받아들일까? 1년 동안 그 많았던 행동 변화의 기회들은 다 던져 버리고 이제와 한 번의 피드백으로 변화를 바라는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직원에게 욕을 먹을 것을 염려해 피드백을 주저하는 리더라면 열정을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열정적인 사람으로 롤모델이 되어야 한다. 직원은 리더의 행동과 마인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말이다. 물론 리더도 사람인지라 열정적이지 않을 수 있고 항상 열정적이지는 못하다. 완벽한 롤모델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열정적이려고 노력하라는 말이다.
열정은 고통을 내포하기 때문에 끌어내는 일이 쉽지 않다. 열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리더는 직원의 저항을 반드시 경험한다. 평가와 보상이라는 장치로 절대 열정을 끌어낼 수 없다. 솔직하고 대담하게 나아가라. 감동적인 스토리나 구호 같은 것에 기대기보다는 직들에게 열정의 구체적인 행동을 바란다고 솔직하게 말하라. 그런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 대화할 때 열차의 무거운 바퀴는 목적지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