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를 때 배고픔을 상상하라   

2011. 5. 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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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엄청나게 배가 고픈 상태입니다. 그래서 만일 뷔페 식당에라도 가면 배가 가득해서 고통스러울 때까지 음식을 먹어댈 겁니다. 입가심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여러분은 생각합니다. '이렇게 배가 아플 정도로 많이 먹다니, 앞으로는 과식하지 말아야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내일이 되어 다시 배가 고파지면 오늘 했던 다짐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또다시 음식을 탐하는 상태가 되고 말죠.

실험실과 슈퍼마켓 현장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상태에서 다음 주에 먹을 음식을 구매하도록 했더니 미래의 식욕에 대해 과소평가하면서 조금 밖에 사지 않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배가 부르다고 해서 미래에도 배가 부를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나중에 '내가 왜 이것 밖에 안 사왔지?'하며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죠. 연구자들은 사람들은 배가 부를 때는 배고픈 상태를 상상하기 어려워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또 이런 실험이 있었습니다. 실험자가 참가자에게 5개의 지리(地理) 문제를 내기로 하고 두 개의 '보상;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즉, 각 문제의 답을 참가자가 말하면 그들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보상과, 정답 대신 초콜릿 바 하나를 주는 보상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었죠. 실험자는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후에 첫 번째 그룹에게는 문제를 풀기 전에 보상 방법을 선택하라고 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문제를 풀고 난 후에 보상 방법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문제를 내기 전에 실험자는 두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보상을 선택하게 될지 예상해 보라고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재미없는 지리 문제의 정답을 아는 것 대신에 모두 초콜릿 바를 보상으로 받고 싶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로 내고 나니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문제를 풀고 난 후에 보상 방법을 선택하라고 했던 두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은 초콜릿 바를 받기보다는 정답을 알려달라는 보상을 더 많이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풀기 전에는 초콜릿 바만 눈에 들어와서 미래(문제를 풀고 난 후)에 자신이 강렬한 호기심을 갖게 되리란 점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겁니다.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등산을 하다가 음식과 물도 없이 길을 잃고 하룻밤을 꼬박 헤맨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질문을 해본 실험도 있습니다. 실험자는 러닝머신에서 막 운동을 끝내고 내려와서 목이 마른 사람들에게 그런 조난 상황에 처하면 갈증과 배고픔 중 어느 것이 더 고통스러울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또한 러닝머신에 오르기 전의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죠. 그랬더니 목이 마른 사람들 중 92%가 갈증이 훨씬 참기 힘들 것이라고 답했고, 아직 운동을 하기 전이라 목이 마르지 않은 사람들은 61%만이 갈증이라고 답했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의 감정이나 상황을 상상할 때 현재의 상태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지금 무언가에 만족한 상태면 미래에는 그것이 부족할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지금 무언가가 절실하면 미래에도 그것이 절실하리라 예상하죠. 이처럼 현재의 상태를 기준으로 미래를 상상하거나 판단하는 경향을 '현재주의(presentism)'이라고 말합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언제나 현재에서 출발해서 현재로 끝난다는 것을 꼬집는 말이죠.

기업의 '현재주의'적 행동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출이 뚝뚝 떨어지고 이익은 적자에다가 고객들의 불만은 가중되는 등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면 뭐든 해야 한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긴급전략을 수립하고 구조조정 방안을 내놓는 등 한동안 부산스럽게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시장 환경이 조금만 우호적으로 변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존의 전략, 기존의 조직운영 관행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설마 더 나빠지겠어?' 혹은 '거봐, 좀 지나니까 괜찮아지잖아'라고 말하면서 현재의 행동방식을 합리화합니다.

매년 사업계획을 세울 때도 현재주의는 여지없이 나타납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매출이나 시장점유율이 좋으면 앞으로도 계속 좋으리라 예상(혹은 기대)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관적인 전망들이 사업계획서에 가득합니다. 오늘 배가 고프면 뭐든지 먹어버리겠다고 만용을 부리고, 오늘 배가 부르면 내일의 배고픔을 느끼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죠.

개인이나 조직이 '현재주의'라는 오류에 빠지는 이유는 우리 뇌의 한계 때문입니다. 뇌는 현재의 상황에 먼저 반응하도록 설계되었지 미래를 올바르게 상상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먹이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수많은 맹수들에 둘러쌓여 있던 옛 시절에는 현재 상황에 즉각 반응하는 뇌는 인간의 생존에 유리했을 겁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일 따위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만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뇌의 진화는 현재주의의 오류를 떨쳐내기에는 속도가 아주 더딥니다.

어떻게 하면 현재주의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답하면 불행히도 현재주의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방법은 없습니다. 미래는 베일 속에 가려져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현재의 눈을 가지고 미래를 그려내야 하는 한계에 부닥칩니다. 아마 여러분 중 나이가 30대 후반 이상이라면 어렸을 적에 '소년 중앙'과 같은 어린이 잡지에서 2000년 대의 생활상을 그린 만화를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그 만화 속에서 은박의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갑니다. 현실의 2000년 대와는 아주 딴판이죠. 그런 우스꽝스러운 상상은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와 희망사항들이 뒤섞이고 버무려져서 나온 산물이죠.

현재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여러 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상상하고 미리 그런 상황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배가 부르면 미래에 배가 계속해서 부른 상황과 그와 반대로 배가 고픈 상황을 각각 설정한 후에 어떤 느낌일지 미리 그려보는 방법이죠. 그렇게 하면 현재의 감정이나 상태에 따라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이 좌지우지되는 위험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한계는 있습니다. 미래에 나타날 여러 가지 다른 상황을 골라내는 것 자체가 현재주의로 인해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나타날 여러 가지 상황을 A, B, C, 이렇게 세 가지라고 다르게 상상했을지라도 실제로 미래에 D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최대한 대비하고 미리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상상이나 예측이 현재에서 시작되고 현재에서 끝난다'는 현재주의의 위험을 알고 대처하는 것과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에 큰 차이를 가져올 겁니다. 현재의 상태와 미래의 상태, 각각을 상상할 때 현재주의의 끈질긴 구애와 유혹을 견뎌내는 것, 이것이 또 하나의 중용은 아닐까요? 배부를 때 배고픔을 상상하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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