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 뭐가 좋을까?   

2011. 2.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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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야심찬 계획을 세운다. 금연하기, 다이어트하기, 책 읽기, 공부하기 등이 새해 계획표에 오르는 단골메뉴들이다. 나도 지난 연말에 2011년에 달성해야 할 몇 가지 목표를 써보았다. 그 중 하나는 체중을 감량하겠다는 것이다. 짐작은 했지만 모 사이트에서 비만지수를 입력해보고 과체중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이래선 안 되겠단 마음이 들었다. 마침 새해가 됐으니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기에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에는 식사량을 줄이고 주전부리를 멀리했다. 하루에 1시간 정도 꼭 걸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합리화의 귀재라고 했던가? 금년에 유난히 거센 동장군의 기세에 눌려 하루 이틀 걷기를 빼먹기 시작하더니, 식사량을 줄이면 군것질에 대한 유혹이 커진다는 핑계 때문이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 식사량이 줄기는커녕 많아짐을 발견했다. 불행히도 저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내 몸무게는 연말보다 오히려 1.5kg이나 늘고 말았으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왜 야심찬 계획은 3일을 넘기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어 버릴까? 이 책 ‘당근과 채찍’은 이와 같은 ‘오래된’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하는 책이다. 저자 이언 에어즈는 작심삼일의 오류에 빠지는 이유가 현재의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미래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탈러의 사과’라는 예를 들어 이를 설명한다. 사람들에게 “1년 후에 사과 1개 받을래, 아니면 1년이 지난 바로 다음날에 사과 2개를 받을래?“라고 물으면 대부분 후자를 택한다고 한다. 사과를 받기 위해 1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하루를 더 기다리는 것쯤이야 참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서 “오늘 사과 1개를 받을래, 아니면 내일 사과 2개를 받을래?”라고 물으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전자를 선택한다고 한다. 하루를 더 기다리면 사과 2개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루라는 기간에 대한 평가가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1년 후에 기다려야 하는 하루보다 오늘 기다려야 할 하루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의미다. 인간을 합리적인 주체라고 여기는 주류 경제학자의 눈에는 이것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인간의 심리가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행동경제학’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다.

현재와 가까울수록 하루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이 작심삼일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다이어트를 하느라 배불리 먹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운동하는 데에 오늘이란 시간을 소요하기가 왠지 아깝다. 계획을 세울 때는 먼 일처럼 느껴져 하루의 가치가 별것 아니게 보이지만 막상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날이 되면 하루의 가치가 크게 느껴져서 “지금은 다른 일이 바쁘니, 내일 하자”라는 합리화 프로세스가 작동되고 만다. ‘과도한 가치 폄하 효과’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은 당장의 보상에는 특별한 가치를 부여(또는 당장의 부담을 연기)하지만, 미래에 다가올 보상(또는 부담)에는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작심삼일의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약속 실천 계약’이란 해법을 제시한다. ‘오디세이’에 나오는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가 배를 난파시킨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는 사이렌의 노래가 이끄는 곳으로 배를 몰지 않기 위해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한다. 사이렌의 노래도 듣고 배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게 하는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처럼 계획이나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스스로를 ‘결박’하는 해법이야말로 약한 의지력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약속 실천 계약을 대행하는 ‘스틱K닷컴’이란 회사를 설립할 정도로 이 방법에 열성적이다. 약속 실천 계약은 ‘7kg 감량’과 같은 목표를 설정하고서 그것을 정해진 기간 내에 달성하지 못하면 사전에 지정한 사람이나 단체에 돈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이 계약의 내용을 타인에게 공개함으로써 돛대에 자신을 결박하는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게 약속 실천 계약의 논리다.

저자가 약속 실천 계약이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근거는 보상보다 손실을 더 크게 느끼는 ‘손실회피 경향’이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A 치료법을 채택하면 400명이 죽는다’는 말과 ‘A 치료법을 채택하면 아무도 죽지 않을 확률이 3분의 1, 모두가 죽을 확률은 3분의 2이다’란 말은 따지고 보면 같은 의미인데도,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사람들은 후자를 선택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손실을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일정 금액을 자신이 싫어하는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하는 등의 방법으로 계약을 맺으면 손실회피 경향을 역으로 이용해 약속을 지키도록 사람들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약속 실천 계약의 묘미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에 당근(이득)보다는 채찍(손실)이 더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 할 테니 말이다. 과연 당근보다 채찍보다 나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약속, 계획, 목표의 종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사람들에게 피부암 예방을 위해 자외선 차단제 사용을 권고한다고 하자. 자외선 차단제의 유익함(당근)을 홍보할 경우와, 피부암의 끔찍함(채찍)을 강조할 경우, 어떨 때에 사람들이 자외선 차단제를 더 많이 사용할까? 답은 당근을 강조할 때다. 왜냐하면 자외선 차단제는 피부암을 예방하는 활동이므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반대로 피부암 진단과 같이 개인들에게 부담이 큰 활동을 홍보할 때는 피부암의 끔찍함(채찍)을 강조할 때가 더 효과적이다. 약속이나 계획이 개인들에게 느껴지는 부담감의 크기에 따라 당근과 채찍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이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 애리조나 주에 있는 석화림 국립공원 관리인들은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이 조금씩 빼돌려져 연간 14톤의 석화목이 도벌되고 있습니다”란 표지판을 세워뒀다. 채찍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이 무단으로 석화목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표지판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도벌을 권장하는 역효과를 발생시켰다.

왜냐하면 표지판은 모든 사람들이 석화목을 훔쳐간다는 것을 알려서 “나도 훔쳐가도 되겠네”란 생각을 자극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표지판을 세우고 나서 석화목 도벌이 3배나 늘었다고 한다. 석화목을 훔치는 일을 그다지 위험 부담이 크지 않은 일로 느끼게 함으로써 채찍이 먹히지 않게 만든 셈이다. 정책이나 제도를 설계할 때 당근과 채찍의 효과를 잘 따져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저자는 약속 실천 계약을 이행하는 것보다 계약 종료 후의 유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령 체중을 줄이겠다는 약속 실천 계약을 맺으면 대다수가 성공을 거두지만, 계약이 끝나고 난 후에 다시 원래의 몸무게로 회귀하는 요요현상을 자주 목격된다. 이런 실패는 목표를 과도하게 잡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과도한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동안 억눌렀던 욕구를 보상 받기 위해서 “이제 즐겨도 되잖아”라는 생각이 더욱 극대화된다.

이를 예방하려면 현실적으로 목표를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목표를 잘게 쪼갬으로써 목표에 달성하기까지 투입될 노력의 수준을 적절히 조절할 줄 하는 것도 약속을 유지하는 방법임을 일깨운다. 작심삼일의 오류도 따지고 보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탓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목표 설정은 약속을 이행하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

그동안 행동경제학을 다루는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약속 실천 계약의 유용함을 소개하고 사람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다양한 방법과 사례를 다룬다는 점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신의 계획표에 매번 똑같은 계획이 올라가거나 의지가 박약하여 삼일도 못가 결심이 흐지부지한다면 이 책이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결정적 기회를 줄 것이다.

(* 이 글은 교보문고 북모닝 CEO에 오늘 올라 온 제 서평을 옮긴 것입니다.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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