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제, 꼭 해야 하나?   

2008. 11. 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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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정식)


연봉제는 당해년도의 개인의 능력과 성과를 평가하여 익년도의 급여에 반영함으로써 개인의 성과창출 동기를 극대화하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이다. 해외의 선진기업들은 일찍이 점차 치열해지는 경쟁상황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편으로 능력과 성과에 따른 임금체계를 도입하였으며, 우리나라도 두산그룹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993년에 연봉제를 실시하였으나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기업들이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성과관리의 대표적인 제도인 연봉제를 앞다투어 도입하면서 일반화되었다.

2003년 노동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종업원 100명 이상의 기업 4,570개사 중 37.5%인 1,712개사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연봉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봉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많이 대두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평가에 대한 불신, 즉 평가의 납득성에 대한 문제, 단기실적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문제, 구성원간 과도한 경쟁에 의한 위화감 조성의 문제가 대표적인 연봉제의 폐해로 지적 받고 있다. 또한, 노동부 조사결과에 의하면 연봉제 도입과 함께 기대되었던 생산성 향상과 인건비 절감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며, 단지 임금관리상의 용이함과 약간의 직원의식 변화 효과 정도만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근본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필자가 여러 기업의 연봉제를 진단해 온 경험에 비춰볼 때 ‘실패하는 연봉제의 조건’은 다음의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번째 조건은 연봉제를 일종의 급여제도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즉, 실패하는 기업들은 연봉제를 성과주의 문화 정착을 통한 기업경쟁력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고, 단순하게 임금관리의 편의성을 위해 도입하거나 인건비를 줄여보려는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 연봉제 도입이라는 시류에 편승하여 기존의 급여제도를 연봉제로 이름만 바꾼 것에 지나지 않은 사례가 많은 기업에서 나타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노동부 조사결과의 1,712개사 중 MBO방식에 의해 진정한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은 13.2%인 226개사에 불과할 뿐이며 나머지는 이른바 이름만 바꾼 ‘무늬만 연봉제’를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진단했던 모 기업의 경우, 연봉제 도입을 위해 과거의 호봉에 의한 급여구조를 기계적으로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나뉜 연봉구조로 전환시키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것은 별 문제가 없었으나, 성과급을 결정하는 잣대로 기존의 인사고과평가를 여전히 운영하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창의성, 협동심, 책임감, 주인의식, 근태 등의 인사고과결과에 의해 성과급이 좌우된다는 것 자체가 직원들의 불만을 사고 있었는데, 그런 요소들은 단기간의 노력에 의해 개선되기 어려울 뿐더러 ‘한번 찍히면 영원히 찍히는’ 폐단을 야기한다는 것이 직원들이 항변이었다. 또한 연봉제가 자신들의 월급을 깎을 속셈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냐며 CEO의 리더십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였다. 더 파고 들어가보니, 실제로 직원들의 인건비를 줄이고 통제하고자 한 사전의 의도와 장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회사에 유능한 인재가 남아 있을 까닭이 없었다. 때마침 경쟁사에서 공격적으로 좋은 조건을 내걸자 우수인재들이 줄줄이 회사를 옮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회사는 곧 존폐의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잘 해보자는 연봉제가 오히려 회사의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연봉제를 급여관리의 방편으로 오용하지 말아야 한다. MBO 방식에 의하여 성과 창출을 독려하고 그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공정하게 보상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연봉제이다.

실패하는 연봉제의 두번째 조건은, 평가의 운영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컨설팅을 위해 기업을 진단할 때 항상 단골로 나오는 말이 평가의 납득성과 신뢰성에 대한 불만이다. 그런데, 많은 인사담당자들은 평가의 신뢰성 제고를 위하여 평가지표의 자체의 객관성에만 지나치게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평가자들의 평가역량을 높여주기 위한 교육, 합의 및 면담프로세스의 운영, 직원들의 불만을 공식적으로 수용하는 제도 등 운영관리 측면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연봉제에 실패한 회사의 직원들은 대부분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별로 없다”, “평가자가 혼자서 평가를 결정한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평가결과가 결정된다”, “실제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등의 이유로 도저히 평가결과를 신뢰할 수가 없다고 답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연봉제를 실패로 몰고 가는 주원인이다.

연봉제의 성공을 위한다면,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쉽게 측정 가능한 평가지표에 대한 꿈은 접는 것이 좋다. 지표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평가자의 역량을 끌어올릴까, 자주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만나서 성과 달성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게 할까, 직원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며 최선이다. 덜 객관적이고 덜 측정 가능한 지표라 할지라도 구성원이 서로 목표를 합의하여 노력을 독려하고 대화하며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연봉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실패하는 연봉제의 세번째 조건은, 평가자의 저조한 역량이다. 연봉제 운영에 있어 평가자의 역할은 가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인사부서는 제도설계와 운영관리만 담당할 뿐, 실제로 직원들을 움직이고 설득하는 최일선의 일은 평가자의 몫이다. 많은 기업들이 평가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역량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목표수립과 평가스킬에만 초점을 맞출 뿐 평가자의 더욱 중요한 능력인 코칭 스킬의 개발은 소홀히 하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고자 노력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수시로 파악하여 부하직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코치가 될 의무가 평가자에게 있다. 그래서 ‘관리자’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평가자의 코칭스킬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해야 연봉제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연봉제는 단순하게 돈을 덜 주고 더 주는 것을 결정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개인의 발전을 독려하여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연봉제는 성과주의 경영의 첨병으로서 이미 대세이다. 연봉제 자체의 결점을 따지기 이전에, 연봉제를 원래의 취지에 맞게 운영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진단하여 개선방향을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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