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sm 10] You   

2008. 8. 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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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화성인들이 지구를 점령하고 말았다. 그 붉은 행성 뒤 편에서 호시탐탐 지구를 정복할 야심에 불타있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지구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70억이 넘는 인구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70억이란 인구는 고작 3천 명 밖에 안 되는 화성인들에게는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였다.

화성인들은 어떻게 하면 지구의 인구를 한꺼번에 없앨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뾰쪽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핵폭탄 몇 개를 떨어뜨리자는 과격한 의견이 제시됐으나, 그 때문에 야기될 핵겨울의 위험 때문에 반대에 부딪혔다. 화성인들은 화성보다 기후 조건이 좋은 지구의 환경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화성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가뿔셔 도녹썽이 집회에 나와 이렇게 조언했다. "지구인들에게 '너'라는 단어를 쓰게 하지 마라. 그러면 머지 않아 인구가 줄 것이다."

화성인들은 이말을 긴가민가해 했으나 별다른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 지도자가 헛소리를 할 위인이 아니었으므로, 그 말을 따르기로 했다.

화성인의 대통령 자업술리 방깡수는 지구인들에게 새로운 '우주법'을 선언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구인들은 '너'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한다. '자네', '당신' 과 같이 '너'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단어도 사용을 금지한다. '너'류(類) 단어를 쓴 자는 즉각 처형될 것이다."

지구인들은 화성인들의 법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지구인들은 언제나 공포에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법이 시행되고 난 1년 동안, 화성인들은 드라마틱한 사회학적, 생물학적 급변을 목격했다. 그 법의 시행으로 인해 확실히 지구인들의 인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은 크게 두가지 다른 모습으로 진행됐다. 대부분 첫 번째 경우에 해당됐다. 자신의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을 '너'라는 말로 호칭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생각의 방향과 행동의 역학을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느새 나 아닌 존재에 대한 믿음, 존중 따위들은 사라지고 작은 오해로도 시기와 질투와 폭력 등이 횡횡하게 되었으며, 급기야 자기네들끼리 대규모 살상전이 발발했다. 그들은 나머지 한 사람이 남을때까지 죽도록 싸웠다. 그로 인해 지구의 인구는 현저히 감소하였다. 화성인들은 이것에 크게 만족했다.
 

그리고 두 번째의 경우 역시 화성인들의 목적을 만족시켜주기는 했으나 화성인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찜찜하게 만들었다. 남극에 사는 어느 부족인들은 화성인들의 새로운 법안을 듣자마자 눈[雪]으로 몸을 씻는 의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백야가 시작되는 어느 날, 그들은 모두 알몸으로 서로를 껴안았고 그렇게 100일을 꼼짝없이 보냈다. 101일째되는 날, 화성인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어느새 그 부족인들은 개개의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족을 이끌던 추장은 머리가 되고, 병사는 팔과 다리가, 아이 잘 낳는 여자는 가슴이, 아이들은 머리카락 따위가 되었다. 그들은 '너'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 위해 하나가 됨을 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전 우주에 회자되었으며, 화성인들은 그 결/합/인/간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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