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수 있어 행복한 이유   

2015. 4. 7.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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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안면 근육이 마비된 희귀질환인 ‘뫼비우스 증후군’을 앓는 환자들은 기쁘거나 슬퍼도 아무런 표정을 짓지 못한다. 누구나 박장대소하는 코미디언을 보고도 마음껏 웃지 못하는 그들은 어떤 심정일까? 그들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면 투명 테이프를 입 전체에 붙인 다음 ‘개그 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해보라. 십중팔구 다른 때보다 그날 프로가 별로라고 평가할 것이다. 


만약 하루 종일 그렇게 입에 테이프를 붙인 채로 지내야 한다고 해보자. 입에 음식을 넣을 수 없어 배고픈 것은 둘째 치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행복감이 저하되고 급기야 우울한 상태로 빠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뫼비우스 증후군 환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행복감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맺기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친절한 표정으로 다가갔는데 상대방이 무표정할 경우에 얻는 마음의 상처를 떠올린다면, 뫼비우스 증후군 환자들이 사회 생활을 하며 남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드러내놓고 다니는 얼굴은 상당히 민감한 신체기관 중 하나다. 신체에서 얼굴이 차지하는 면적이 상대적으로 작은데도 불구하고 눈둘레근, 눈썹주름군, 입꼬리내림근 등 40여개의 근육들이 좁은 얼굴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이런 안면 근육들은 뇌에서 수신 받는 감정을 복잡하고 미묘하게 표현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거꾸로 뇌에게 ‘이런 감정 상태에 있다’란 메시지를 송신하는 역할도 한다. 


얼굴 표정이 감정으로 이어지고 그 감정이 판단에 거꾸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심리학자 프리츠 스트랙의 실험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스트랙은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볼펜 끝을 치아로 물게 하거나 입술로 물게 했다. 직접 해보면 알겠지만, 치아만으로 볼펜 끝을 물 때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옆으로 벌어져서 웃는 표정되고 입술로만 물 때는 입이 앞으로 나오면서 볼이 홀쭉해지는 뚱한 표정이 된다. 참가자들에게 볼펜 끝을 문 채 만화 네 편을 보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평가하라고 했더니, 치아로 볼펜을 문 사람들이 입술로 볼펜을 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만화를 더 재미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얼굴 표정이 만들어낸 감정은 뇌에 피드백되고 뇌가 감지한 감정은 판단 메커니즘에 피드백된다.


그래서 주름을 없애기 위해 인위적으로 시술하는 보톡스에 주의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뚜렷해지는 주름살은 노화라기보다 살면서 어떤 안면 근육을 자주 사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표식이다. 평소에 잘 웃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면 눈 꼬리에 방사형으로 주름이 뚜렷하고 입 주변에 소위 ‘팔자 주름’이라 불리는 주름이 깊다. 안동의 하회탈처럼 보는 사람을 함께 미소짓게 만드는 이런 ‘웃음 주름’을 없애고자 보톡스를 시술하면 비록 외모는 나아 보일지언정 웃고 싶은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할지 모른다. 이것은 보톡스를 맞아 ‘굳은 표정’을 갖게 된 청소년들이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지 못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다는 임상 간호사 헬렌 콜리어의 연구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타인의 감정까지 잘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닐이 참가자들에게 사진 속 인물의 감정을 알아맞히도록 하니 보톡스를 맞은 참가자들의 정답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우리의 뇌에는 상대방의 감정을 동감하는 ‘거울 뉴런’이 존재한다. 아마도 보톡스는 상대방의 감정을 나의 표정으로 복제한 다음 거울 뉴런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훼방꾼 노릇을 하는 듯 하다. 


미용 목적으로 보톡스를 시술한다면 웃음 주름보다는 찡그리거나 화를 낼 때 만들어지는 주름을 완화시키는 게 차라리 낫다. 눈썹 사이에 세로로 깊이 파인 주름이 대표적인 ‘짜증 주름’인데, 미국 피부외과학회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 주름에 보톡스 주사를 맞은 우울증 환자 10명 중 9명이 차도를 보였다. 다른 약물이나 심리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았던 환자들이었기에 의미가 더 컸다. 웃음 주름은 살리고 짜증 주름을 줄이는 방향이 보톡스를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보톡스를 하든 말든 개인의 자유겠지만, 뫼비우스 증후군 환자들의 고통을 안다면 ‘웃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사실만은 기억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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