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크면 위기에 아무것도 안한다   

2013. 5. 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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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가정해 볼까요? 여러분이 교실에서 혼자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입사를 위해 꼭 치러야 하는 토익이나 토플 같은 어학시험이라고 해보죠. 문제를 한창 풀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다급하게 살려달라는 소리가 납니다. '여기에 앉아 계속 시험을 볼 것인가, 아니면 시험 따위는 집어치우고 얼른 그 사람을 도와야 할 것인가?' 교실에 혼자 있는 여러분은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겠죠. 제아무리 시험이 중요한들 목숨보다 소중할 리 없으니까요? 


그러나 여러분이 (대부분의 시험 치르는 곳이 그러하듯) 다른 사람들과 한 교실에서 시험을 치른다면 어떨까요? 이런 경우에도 누군가의 비명을 듣자마자 바로 돕겠다는 결정을 내릴까요? 여러분은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 소리가 신경 쓰이겠지만 계속해서 시험을 치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존 달리(John M. Darley)이 1968년에 실시한 고전적인 실험에서 이미 경고된 적이 있습니다. 달리는 72명의 학생들에게 정상적인 대학생들이 경험하는 개인적인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이라고 속인 후에 혼자 방에 들어가 다른 방에 있는 학생과 인터컴을 통해서 대학 생활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했죠. 한 학생이 발언을 하면(약 2분 동안) 그 학생의 마이크만 켜지고 다른 학생의 마이크는 꺼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즉 상대방이 발언을 하면 자신은 발언을 할 수 없었죠(한다 해도 상대방에게 들릴 리 없었죠).


처음으로 발언에 나선 한 학생(사실은 공모자)이 뉴욕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다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발작이 일어난 듯이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도와달라는 소리쳤습니다. 다른 방에 있는 학생은 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자신의 마이크가 꺼져 있었기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참가자는 과연 그 학생을 도와야겠다며 자신의 방에서 뛰쳐 나왔을까요?


실험 결과, 참가자 중 85퍼센트가 비명을 지르는 상대방을 도와야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토론 그룹의 규모가 2명일 때는 이런 결과가 나왔지만, 3명, 6명으로 늘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동일한 방법으로 실험을 해본 결과, 3명일 때는 도움을 주려는 참가자가 62퍼센트로 줄었고, 6명일 때는 겨우 31퍼센트 밖에 안 됐습니다. 토론 그룹의 규모를 늘리니 도움 주려는 행동을 취하기까지 걸린 시간도 더 길었죠. 어떤 상황에 같이 처한 사람의 수가 많아질수록 도움을 주려는 행동이 급격히 줄어들고 도움을 주더라도 너무 늦게 도와주게 된다는 점을 이 실험이 명확하게 일깨웁니다. 


이러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존 달리가 밥 라타네(Bob Latané)와 함께 수행한 또 다른 실험에서도 역시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6명의 학생들에게 설문지를 작성하라고 하고 첫 번째 방에는 1명, 두 번째 방에는 2명, 세 번째 방에는 3명의 학생들이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한창 설문지를 작성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갑자기 연기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심각한 화재일지 모르는 위급상황에서 학생들은 어떤 행동을 보였을까요? 당연히 대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방에 있었던 학생들 중 75퍼센트가 실험자에게 위험을 알리는 등 뭔가 행동을 취했지만, 2명이 함께 있던 방에서는 고작 10퍼센트 정도만이 위험함을 알렸습니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연기가 들어와도 기침을 참으면서 설문지를 작성했던 것이죠. 3명이 함께 있던 방은 가장 최악이었는데, 이 조건에 처한 24명의 학생들 중 고작 1명만이 연기의 존재를 실험자에게 알렸습니다. 연기가 자욱할 정도로 가득찼는데도 말입니다.


이 두 실험이 조직의 의사결정에 시사하는 것은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누군가가 뭔가 하겠지', '내가 먼저 나설 이유가 없잖아'라며 상황을 방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조직의 규모가 크거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면 오히려 누군가의 위기 경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를 흘려버린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하겠지'란 말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란 말과 같은 뜻입니다. 조직이 크면 클수록 위기에 처하거나 문제에 봉착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심리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Darley, J. M., & Latané, B. (1968). Bystander intervention in emergencies: diffusion of responsibil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8(4), 377.


Latane, B., & Darley, J. M. (1968). Group inhibition of bystander intervention in emergencie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3), 21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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