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원들이 평등하면 성과가 좋아질까?   

2012. 6. 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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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두 팀이 있습니다. A팀은 팀원들의 권한이나 지식 수준이 평등한 반면, B팀은 리더와 팔로워라는 서열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팀원들의 상호 작용을 통해 완성해야 하는 과제를 두 팀에게 동일하게 부여할 경우, 어떤 팀이 더 나은 성과를 보일까요? 권한이 평등한 A팀일까요, 아니면 서열이 명확한 B팀일까요?

팀원들이 팀 토론과 팀 의사결정에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할 때 팀의 성과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기에 아마도 여러분은 평등한 A팀의 성과가 더 높을 거라고 기대할 겁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제시되었습니다. 콜럼비아 대학교의 리차드 로내이(Richard Ronay)와 동료 연구자들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팀의 성과가 팀원들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경우 서열이 명확한 B팀의 성과가 더 높다고 주장합니다. 



로내이는 138명의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르게 프라이밍(priming)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 자신이 남에게 권력을 행사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하이-파워), 두 번째 그룹에게는 타인의 권력이 굴복했던 기억을 회상하도록 했으며(로우-파워), 세 번째 그룹에게는 최근에 슈퍼마켓에 갔던 때를 떠올리게 했습니다(중립). 로내이는 학생들을 3명씩 팀을 이루게 했는데, 하이-파워로만 이루어진 팀, 로우-파워로만 이루어진 팀, 세 조건의 학생들이 1명씩 고루 섞인 팀으로 편성했습니다.

각 팀에게 주어진 과제는 문장 만들기 게임이었습니다. 로내이는 팀원들 각자에게 16개의 문자를 주고 그것으로부터 여러 개의 단어를 만들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팀은 5분 동안 팀원들이 각기 만든 단어를 조합하여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문장을 완성해야 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려면 팀원들끼리의 상호작용이 필수적이었겠죠? 로내이는 팀 과제를 마친 팀원들에게 각기 혼자서 클립이나 벽돌 같은 물건들을 얼마나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을지 써내라는 개인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 팀원들의 상호작용은 필요 없었습니다.

어느 팀이 가장 좋은 성과를 냈을까요? 문장 만들기 게임에서 하이-파워로만 이루어진 팀과 로우-파워로만 이루어진 팀에 비해 '고르게 섞인 팀'이 가장 높은 성과를 냈습니다. 통계적인 차이는 없었지만, 하이-파워로만 이루어진 팀은 로우-파워로만 이루어진 팀에 비해 오히려 조금 낮은 성과를 보였죠. 반면 팀원들이 상호의존할 필요가 없었던 두 번째 과제에서는 세 팀 간의 성과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절차적 상호의존도(Procedural interdependency)가 높은 과제의 성과와 생산성은 팀내의 뚜렷한 서열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로내이는 집단의 서열과 구성원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 사이에 관련성이 매우 높다는 이전 연구에 착안하여 후속실험을 수행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은 권력욕과 지배력과 연관이 있는 남성호르몬인데, 인간을 포함한 유인원 집단의 우두머리는 이 호르몬 수치가 일반적으로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로내이는 팀원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모두 높을 때, 모두 낮을 때, 그리고 각기 다를 때, 팀의 성과는 어떻게 달라질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하는 일은 번거롭기 때문에 로내이는 손가락 중 검지 길이와 약지 길이의 비율을 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약지보다 검지가 짧을수록 태아 시절에 높은 수준에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되었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로내이는 학생들의 검지 대 약지 비율을 토대로 하이-테스토스테론으로만 이루어진 팀, 로우-테스토스테론으로만 이루어진 팀, 골고루 섞인 팀으로 편성했습니다. 그런 다음, 첫 번째 실험과 동일한 문장 만들기 게임을 과제로 부여했죠. 

그랬더니 역시 팀원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각기 다른 팀의 성과가 가장 좋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학생들로부터 설문을 기초로 분석하니, 하이-테스토스테론으로만 이루어진 팀에서 팀원들 간의 갈등 수준이 가장 높았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그런 갈등과 충돌이 팀의 생산성과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통계 분석 결과로 분명해졌죠. 

로내이의 연구는 구성원들의 서열 구조가 평등해야 집단의 성과가 높을 거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재고하라고 요구합니다. 물론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권리는 매우 존중 받아야 하고 그로 인한 장점도 매우 큽니다. 하지만 모두가 리더를 자처하고 나서거나 아무도 리더로 나서려 하지 않을 때 과연 집단의 성과가 제대로 산출될 수 있을까요? 구성원의 참여와 기여가 중요하고 존중 받아야 한다고 해서 조직을 완전히 평등한 서열 구조로 만드는 극단으로 치달을 필요가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됩니다. 권력 구조가 완전히 평등한 조직은 역할의 분화를 촉진하지 못하고, 이견을 통합하지 못하며,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연구가 서열의 다단계 구조를 지지한다고 오해해서는 곤란합니다. 다단계 서열은 속도를 늦추고 정보의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에 지양해야 합니다. 집단의 성과가 구성원의 상호의존을 통해 산출될 때 리더와 팔로워가 명확하게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점이 이 연구에서 취해야 할 시사점이죠. 집단의 서열 구조를 설계할 때도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미덕이 필요합니다.

알다시피 통합진보당이 끝을 모르는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로내이의 논문을 읽고난 후 자연스레 그들의 사태에 투영해 보게 되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참고논문)
The Path to Glory Is Paved With Hierarchy: When Hierarchical Differentiation Increases Group Effectiv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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