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 받기 전, 상사에게 사포를 만지게 하라   

2012. 5. 31. 11:39
반응형


지난 번 글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인상을 얻어내려면 차가운 커피 대신에 뜨거운 커피를 대접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 전혀 의식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객관적인 판단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번 글의 후속편으로서 온도 뿐만 아니라 촉감이나 무게감 등도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MIT의 조슈아 애커만(Joshua M. Ackerman)과 동료들은 참가자들에게 어떤 후보의 역량을 평가하라고 하면서 평가지가 끼워진 클립보드를 나눠 주었습니다. 참가자들 중 절반은 무거운 클립보드(약 2 kg)를, 나머지 절반은 가벼운 클립보드(약 340 g)를 들고 평가에 임했는데, 무거운 클립보드를 사용한 참가자들이 후보자를 전반적으로 더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번엔 정부가 대기 오염 기준과 같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와 공중목욕탕 규제처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슈에 각각 예산을 배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가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역시 참가자들은 둘로 나뉘어 가벼운 클립보드와 무거운 클립보드를 사용해야 했죠. 그랬더니 남성과 여성이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무거운 클립보드를 든 남성들이 가벼운 클립보드를 쓴 남성들보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반면, 여성들은 클립보드 무게와 상관없이 사회적인 이슈에 배정 가능한 최대의 예산을 부여했습니다. 상대적으로 남성이 손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추측되는 결과입니다. 중요한 이슈에 관해 결재나 승인을 받아내야 하는 상대방이 남자라면, 무거운 물건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는게 유리하지 않을까요? 

무게가 아니라 감촉은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애커만은 참가자들에게 다섯 조각으로 된 퍼즐을 완성하도록 했는데, 참가자 중 절반에게는 매끈매끈한 원래 상태의 퍼즐을, 나머지 절반에게는 표면이 사포로 되어 있어 까끌까끌한 퍼즐을 나눠 주었습니다. 퍼즐을 끝낸 참가자들은 사회적인 관계를 표현한 글을 읽고 느껴지는 인상을 평가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거친 감촉을 느낀 참가자들은 부드러운 퍼즐을 사용한 참가자들보다 글에서 나타난 사회적 관계가 덜 조화롭다(어렵고 힘겹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복권을 사용하여 최후통첩게임을 하도록 하자 거친 퍼즐을 만졌던 참가자들이 게임 상대방에게 더 많은 복권을 제시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거친 감촉이 상대방을 거친 사람으로 인식케 하여 참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복권을 제시하도록 은연 중 유도했다는 의미입니다. 협상할 때 상대방으로부터 좋은 조건을 제시 받고 싶다면,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다면, 사전에 거친 사포를 만지게 하는 것이 유리할지 모릅니다.

딱딱하다는 느낌도 역시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후속실험에서 밝혀졌습니다. 애커만은 마술사의 마술을 보고 비법을 추측해보라고 요청하면서 마술에 사용된 물건에 이상한 점이 있는지 참가자들에게 직접 만져보라고 했습니다그 후 참가자들은 상사를 대하는 부하직원의 성격을 평가해야 했는데, 딱딱한 나무 블럭을 만졌던 참가자들은 부드러운 천 조각을 만진 참가자들에게 비해 부하직원을 융통성 없고 엄격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무게감은 중요성과 심각성에, 거침은 조화성에, 딱딱함은 융통성과 유연성에 대한 판단에 각각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애커만이 실행한 일련의 실험들은 손으로 느껴지는 여러 촉감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대상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신호로 인식하도록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판단이 객관적이기 어렵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제시합니다. 

객관적 판단이 불가능하다면 이제 '객관적'이라는 말의 정의를 바꾸거나 그저 갖다 붙이기 좋은 클리셰(cliche)에 불과한 말이라고 인식해야 할 겁니다. 여러분이 오늘 중요한 평가나 결재를 앞두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어떤 촉감을 느끼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것도 전략입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