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많이 해야 승진이 잘 된다?   

2012. 5. 1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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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에게 야근을 하는 이유를 질문하면 완료해야 할 일이 밀려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많습니다. 개인이 담당해야 할 업무의 양이 많은 이유는 기업들이 잉여인력을 떠안지 않기 위해 웬만하면 인력을 충원하지 않거나 사람이 할 일을 정보시스템으로 대체하려고 하기 때문일 겁니다. 정보시스템이 확산되고 일반화되면서 오히려 일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야근을 하지 않고 칼퇴근하면 평가를 낮게 받을 뿐만 아니라 승진도 잘 안 된다'라는 솔직한 대답도 제법 자주 나옵니다. 집에 일찍 가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회사와 팀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직원으로 낙인 찍혀서 평가 때나 승진 심사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직원들에게 평가 점수를 부여하고 승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리자들에게 어떤 직원에게 높은 점수를 주거나 지지하냐고 물으면, 야근보다는 업무의 질이 훌륭한 직원이라고 답합니다. 늦게까지 남아서 일한다고 해서 결과물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일의 양보다는 일의 질이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관리자들이 직원을 평가하거나 승진을 결정할 때 밤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느냐가 중요한 요소라는 르네 랜더스(Renee M. Landers)의 연구 결과는 관리자들의 이런 말들이 위선일 수 있음을 아프게 꼬집고 있습니다. 



랜더스는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변호사가 윗사람에게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여주냐가 '파트너'로 승진하는 데에 중요한 변수임을 밝혔습니다. 연구 대상으로 로펌을 선택한 이유는 직급 구조가 간단하고(어소시에이트-파트너), 파트너로 승진하면 이익 배분금으로 거액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기에 변호사들의 승진욕이 상당히 내재됐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랜더스는 먼저 복잡한 수학 방정식을 통해 야근이 승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였습니다(이 수학 모델은 복잡하고 또 어렵기에 이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소시에이트들이 승진을 위해 가능한 한 오래 일하려는 상황으로 '평형'을 이룬다는 것이 이 수학 모델의 결론이었죠. 이후 그는 실제로 존재하는 로펌 두곳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수학 모델이 제시한 의미가 옳은지 검증하기로 했습니다. 

변호사(어소시에이트)와 파트너에게 '업무의 질'이 승진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지를 묻자 거의 모두 강한 동의를 표했습니다. 헌데 '야근이 업무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예상대로 두 그룹 모두 별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야근이 업무의 질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데 두 그룹 모두 같은 생각이었던 거죠. 또한 두 그룹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승진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야근이 충성심을 가리키는 지표라고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파트너 그룹은 변호사 그룹보다 야근과 충성심의 관계가 낮다고 봤습니다. 

이런 설문 결과는 해석하기가 약간 모호합니다. 하지만, 두 그룹 모두 '필요할 때 기꺼이 야근하는 것'이라는 또 다른 요소를 승진에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점에서 볼 때, 어소시에이트가 보이는 업무의 질을 올바로 측정하기 어렵다면(업무의 질적 요소는 항상 평가하기 어렵기 마련이죠) 야근이야말로 승진에 결정적인 요소로 떠오른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랜더스는 가상의 인물에 대한 글을 파트너들에게 보여주고 그 사람의 승진에 얼마나 지지할지를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야기 속 인물은 야근은 물론이고 필요하면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열심히 일하는 변호사로 그려져 있었죠. 하지만 새로운 의뢰인을 끌고 오는 능력은 약했습니다. 파트너 중 33퍼센트가 이 인물의 승진을 강하게 지지한다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인물이 육아로 인해 정시 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덧붙인 다음에 물어보니 강하게 지지한다는 의견은 17.5퍼센트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엔 의뢰인을 끌고 오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다고 이야기를 바꾼 후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인물이 야근을 많이 하는 인물로 그려질 때 파트너들은 59퍼센트의 강한 지지를 보였지만, 칼퇴근하는 사람으로 소개될 때는 그 지지율이 37퍼센트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는 동일한 조건이라면 어소시에이트의 야근의 여부나 정도가 파트너 승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비록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지만, 랜더스의 연구는 일반기업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연구는 다른 업무 조건이 동일할 경우, 그리고 평가를 신뢰할 수 없다든지 업무가 복잡하여 질적 요소를 올바로 측정하기가 어려운 경우, 회사에 남아 오래 일하는 직원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승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윗사람에게 자신의 승진을 어필하기 위한 도구로 업무의 질보다는 업무의 양, 즉 야근을 선택하려는 동기가 매우 크다는 점을 또한 시사합니다. 저녁 6시가 넘어도 퇴근하지 않는 까닭은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야근이 평가와 승진에 유리하다는 점을 은연 중에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랜더스는 이러한 심리가 극심한 생존경쟁(Rat Race)을 야기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쥐들의 경주'는 로펌과 같은 전문가 집단 뿐만 아니라, 일반기업 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도 역시 나타납니다. 경쟁이 극심할수록 작은 차이가 큰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때 야근은 다른 사람에게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어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됩니다. 야근은 직원 개인의 건강 측면과 조직의 생산성 측면에서 모두 바람직하지 않지만, 승진할 자리가 부족하고 차등 보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애석하게도 이러한 역선택(Adverse Selection)은 더욱 강화됩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야근의 회수와 시간이 승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칩니까? 만일 그 영향이 크다면, 여러분은 '쥐들의 달리기'에 이미 참가 중이고 그 때문에 차차 burn-out될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Rat race redux- Adverse selection in the determination of work hours in law fi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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