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보고서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   

2012. 2. 2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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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두 개의 보고서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의 보고서는 글씨체가 또렷하고 바탕색과의 대비가 커서 알아보기 쉽게 쓰여져 있는 반면, 다른 보고서는 폰트가 조악하고 흐리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내용상의 차이가 전혀 없을 때 보고서를 읽은 사람들은 둘 중 어느 보고서에 높은 점수를 줄까요? 상식적으로 볼 때 당연히 전자의 보고서가 사람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으리라 추측할 겁니다.

아누즈 샤흐(Anuj Shah)는 이런 상식이 맞는지를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에서 108명의 실험참가자들은 MP3 플레이어의 재원(성능)과 그 제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고객 리뷰 정보를 읽고 나서 MP3 플레이어의 적정 가격을 0달러에서 300달러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샤흐는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12폰트 짜리 Times New Roman체의 검정 글씨라서 읽기 쉽게 쓰여진 정보를 주었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읽기 힘든 12폰트 짜리 이탤릭 Monotype Corsive체의 회색 글씨로 적힌 정보를 읽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읽기 쉬운 정보를 접한 참가자들은 MP3 플레이어의 가격을 평균 126.3달러로 책정한 반면, 읽기 어려운 정보를 받은 참가자들은 평균 162.1달러를 써냈습니다. 읽기 편안한 글을 제공 받은 참가자들이 부정적인 고객 리뷰에 크게 영향 받았다는 의미였죠. 다시 말하면, 읽기 어려운 정보를 접한 참가자들은 부정적으로 평가된 고객 리뷰에 높은 가중치를 두지 않았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표면적인 형식이 의사결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샤흐는 심화된 두 번째 실험을 통해 표면적인 형식이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 들어갔습니다. 이번 실험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정보는 가상의 로비스트 집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샤흐는 참가자들에게 특정 로비스트 집단을 평가한 결과라며 두 개의 가짜 평가지수를 제시했는데, 139명의 참가자 중 절반에게는 이미지가 선명한 평가지수를, 나머지 절반에게는 흐릿하게 인쇄된 평가지수를 나눠 준 다음, 해당 로비스트 집단의 능력을 100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또한 그 집단이 로비에 성공하면 2백만 달러 중에서 얼마나 수수료를 받을 수 있을지, 6점 척도로 그 로비스트 집단을 얼마나 추천하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 선명한 이미지를 본 참석자들은 흐릿한 이미지를 접한 참석자들보다 로비스트 집단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이 실험 역시 내용과 상관없이 눈에 편안한 정보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경향을 드러냈죠.

세 번째로 실시한 실험은 눈으로 쉽게 인지되는지의 여부가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 본 위의 두 실험과 다른 주제를 다뤘습니다. 샤흐는 터키어로 된 가상의 증권회사 이름 중에서 Artan, Kado, Boya 처럼 발음하기 쉬운 것들과, Lasiea, Taahhut, Emniyet 과 같이 발음이 어려운 것들을 구성했습니다. 그런 다음, 144명의 참가자에게 발음하기 쉬운 증권회사와 발음하기 어려운 증권회사가 각각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내놓은 평가 의견들을 제시했습니다.

참석자들에게 주어진 두 증권회사의 의견은 때때로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각 의견을 면밀히 살펴보고 판단을 해야 했죠. 하지만 참석자들은 의견의 내용과 상관없이 발음이 어려운 증권회사(Taahhut 등)보다 발음이 편한 증권회사(Artan 등)에 높은 가중치를 주었습니다. 즉, 발음하기 쉬운 증권회사의 의견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었죠. 또한 참석자들은 발음이 쉬운 증권회사를 터키의 투자자들에게 더 많이 추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샤흐의 실험을 통해 눈에 얼마나 편안한가, 그리고 말하기가 얼마나 편안한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통설이 확인되었습니다. 감각기관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는 피하고 쉽게 감각되는 정보를 수용하려는 이유는 가능하면 인지 노력을 덜 부담하려는 인간의 본능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작성한 보고서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상대방의 인지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상대방의 미간을 찌뿌리게 만들고 동공을 확장시키죠. 그래서 상대방은 그 내용을 들여다 보기도 전에 무의식 속에서 보고서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 꼬투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보고서의 내용이 전달되고 설득되려면 그러한 '활성화 에너지'의 벽을 극복해야 합니다.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는 촉매가 활성화 에너지의 벽을 낮추듯이, 읽기 쉽고 또렷한 글씨체와 시원한 글자 배치 등의 형식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용에 몰입하기 좋은 조건을 형성합니다.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쉽게 전달하고 설득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형식이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항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물론 일부러 흐릿하게 보이고 발음이 어렵도록 만들어서 '뭔가 있어 보이는' 효과를 높이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소통의 속도와 질을 감안한다면 형식적인 '또렷함'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 때로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작성하고 있는 보고서를 살펴 보세요. 글씨가 크고 또렷하며, 문장은 발음하기 좋고 리드미컬합니까? 내용이 좋다고 형식을 무시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죠?

(*참고논문 : Easy does it: The role of fluency in cue weight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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