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인재는 없는게 아니라 발견되지 않을 뿐   

2012. 2. 15.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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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리 숫자끼리 더하거나 빼는 산수 문제가 '가로로' 제시될 때와 '세로로' 제시될 때 중에서 어느 때가 풀기 쉽습니까? 당연히 세로로 제시될 때가 풀기가 쉽고 정답률도 높습니다. 세로로 된 문제는 어느 숫자를 서로 더하고 빼야 하는지 명확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실수가 적고 푸는 속도도 빠릅니다. 간단히 말해, 문제를 푸는 사람들은 세로로 된 문제를 공간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작업기억(Working memory)에 부담을 덜 느낍니다.

마르시 드카로(Marci S. DeCaro) 등의 심리학자들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가로 문제와 세로 문제를 풀도록 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이 학생들에게 제시한 문제는 모듈러 연산으로 풀어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51 = 19 (mod 4) 라고 표현된 문제는 이렇게 풀어야 했습니다. 51에서 19를 뺀 숫자를 4로 나누어 떨어지면(나머지가 남지 않으면) '참',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고 답하면 됩니다. 이 예는 4로 나누어 떨어지기 때문에 '참'입니다.



학생들에게 모두 32문제를 풀도록 했는데, 그 중의 반은 가로로, 나머지 반은 세로로 제시했습니다. 또한, 8 = 3 (mod 2) 처럼 한 자리 숫자로만 구성돼 있어서 쉬운 문제와, 두 자리 숫자들로 이뤄진데가 뺄셈을 위해 십의 자리에서 '빌려오기'를 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각각 절반씩 섞었습니다.

연구자들은 2가지 실험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하나는 '사회적인 압력'의 유무였습니다. 학생들 중 절반에게는 컴퓨터 모니터 상에 주어지는 문제에 참/거짓 여부를 답하는 모습이 비디오로 촬영되어 다른 이들에게 보여진다고 말했고, 또한 가상의 '파트너'와 합산된 점수가 평균보다 20% 높을 때 5달러를 주겠다고 말하고서는 그 파트너가 이미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거짓 정보를 학생에게 제시했습니다. 당연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압박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실험 상황은 '소리 높여 떠들기' 여부였습니다. 학생들 중 절반에게 문제를 풀면서 그 과정을 크게 말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중얼거리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하라고 요청했죠.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은 가능한 한 문제를 정확하고 빨리 풀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총 7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수행한 결과, 재미있는 데이터가 도출됐습니다. 먼저, 세로로 된 어려운 문제를 소리 내지 않고 풀 때는 사회적인 압력이 큰 상황에서 정답률이 높았습니다. 반면 말을 하면서 문제를 푼 학생들은 사회적인 압력의 유무와 관련 없이 정답률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공간적으로 인식되는 세로 문제는 학생들의 작업기억을 압도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압력이 오히려 문제 풀이의 성과를 향상시킨 것이라고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반면, 가로로 된 어려운 문제를 풀 때는 사회적 압력이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디오가 촬영되고 가상의 파트너가 이미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상황이 주어질 때 학생들은 사회적 압력이 낮은 경우보다 저조한 정답률을 기록했습니다. 가로 문제는 언어와 관련된 작업기억을 장악하고 사회적 압력이 그것을 더욱 가중했다는 뜻이겠죠. 헌데,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들이 가로 문제를 풀 때 소리내어 말할 경우에는 정답률이 사회적 압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말을 하지 않고 풀 때보다 문제 푸는 속도가 약간 더 걸리긴 했지만, 높은 정답률로 보상을 받은 것이죠.

이 실험은 현재 여러 곳에서 실시되는 시험 방식이 과연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옳게 평가하는 방법일까 한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여러 과목의 어려운 문제를 여러 개 풀어야 하고(게다가 꼼짝없이 아무 말도 못하고), 그 결과가 대학 입학 여부와 같은 사회적 압력으로 이어질 경우에 학생들이 달성한 점수는 작업기억이 얼마나 압도되지 않았느냐를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압박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자기 자신에게 피드백할 때 높은 성과를 내는 학생들이 정작 시험 점수가 저조하여 남들에게 능력을 올바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경우를 현재의 성적 측정 방식(시험)이 방조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시험이 주는 압박감을 잘 견디는 것도 갖춰야 할 능력이라지만, 그 시험 과정에서 진짜로 실력 있는 사람은 버리는 구조는 아닐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실험이 기업에게 주는 시사점은 지난 번 글('압박 면접이 우수인재를 쫓아낸다')에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압박감이 높은 상황에서 우수한 사람을 골라낼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압박 면접과 비슷하게 빠른 시간 내에 해법을 내야 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외환 트레이더처럼 초를 다투며 빠르게 의사결정 내려야 하는 경우는 일반 조직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대개는 문제의 원인을 다각도로 들여다보며 해법을 마련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따라서 조직에서 필요한 인재는 압박 면접 하에서 기지를 잘 발휘하여 높은 점수를 얻는 사람은 적어도 아닙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압박은 필요하다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회적 압박은 내적 동기를 저하시키기 때문에 성과의 양과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는 여러 연구 결과가 지지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 구성원을 채용하거나 평가하는 방법이 압박을 극대화하는 상황에서의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이라면, 좋은 사람을 놓치거나 방치하지는 않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우수인재는 없는 게 아니라 다만 발견하지 못할 뿐입니다. 또한 이미 여러분의 조직 내에 존재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 유정식 씀

(*참고논문 : Diagnosing and alleviating the impact of performance pressure on mathematical problem solv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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