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버려야 열정이 살아난다   

2011. 9. 2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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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돈'이 동기부여의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주면 그만큼 높은 성과와 목표를 달성하고, 돈을 많이 주지 못하면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등이 조직을 관리하는 데에 유용하다는 인식은 유명한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B.F. 스키너의 연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기대하는 행동을 보이면 즉시 보상하고, 그렇지 못하면 보상을 끊어 버림으로써 조직성과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직원들을 끌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직성과가 저조하면 으레 따라붙는 것이 성과주의 제도의 강화이고 직원들 간의 보상 차등을 통해 건전한 긴장감을 조성하겠다는 조치입니다. 상과 벌을 엄격히 적용하면 직원들이 원하는 대로 따르리라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결과물들은 간단하고 명쾌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풍요로운 경제 발전의 혜택을 입은 미국인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죠. 학교나 기업에서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초하여 제도들이 수립되어 사람들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성과주의라는 미명 하에 그때의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돈이 진짜로 동기부여의 막강한 도구일까요?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 재미있게 하던 일에 보상을 주기 시작하면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한 내면의 동기가 더욱 불타오를까요?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에드워드 L. 데시(Edward L. Deci)는 카메기멜론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지도교수인 빅터 브룸(Victor Vroom)과 함께 한 가지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때는 1969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대학생들 사이에서 소마(soma)라고 불리는 블럭퍼즐 게임이 유행했습니다. 이 퍼즐은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진 7개의 블럭을 가지고 갖가지 형상을 만들어 내는 게임이었습니다. 데시는 피실험자들인 대학생들을 불러 모은 후에 종이에 그려진 서너 가지 모양을 
블럭을 가지고 만들어보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대학생들은 소마 퍼즐에 굉장한 흥미를 보였죠. 피실험자들이 하나의 모양을 완성하는 데에 주어진 시간은 10분이었습니다.

데시는 피실험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첫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모양 하나를 완성하면 1달러를 주었고(지금으로 치면 10달러 정도의 가치가 있는 보상), 두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보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보상이 피실험자의 동기를 부여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였죠. 데시는 피실험자들이 하나의 모양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진짜로 의도한 것은 피실험자들에게 '실험이 끝났습니다'라고 알려준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였습니다. 그는 피실험자들에게 실험 결과를 입력한 후에 설문지를 가지고 오겠다고 하면서 잠시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그런 다음, 방을 나간 후에 한쪽에서만 보이는 유리벽 뒤에 숨어 피실험자의 행동을 관찰했죠. 피실험자 주위에는 무료함을 달래줄 '뉴요커', '타임', '플레이 보이' 같은 잡지의 신간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물론 방금 놀이를 마친 퍼즐도 옆에 있었죠.

데시는 돈으로 보상 받은 피실험자들과 그렇지 않은 피실험자들이 혼자 남겨져 있을 때 과연 방금 자신들이 가지고 놀았던 소마 퍼즐을 계속해서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행동(멍하니 앉아있거나 잡지를 뒤적이거나)을 할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돈으로 보상 받은 피실험자들은 실험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 혼자 남겨질 때 퍼즐을 계속 만지작 거릴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실험을 하기 전에 퍼즐을 주고 자유시간을 가지게 할 때는 즐겁게 가지고 놀던 사람들이 돈을 받고 실험에 응할 때는 그 보상에 길들여져 버린 겁니다.

보상에 길들여졌다는 것은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바로 하던 일을 멈춘다는 의미죠. 즉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은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동기를 끌어내는 데 역부족이며 오히려 내면의 동기를 감쇄시켜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는 것을 뜻합니다. 돈을 충분하게 주면 신바람 나게 일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단선적인 생각이었음이 이렇게 간단한 실험만으로 증명되었죠.

데시는 이 실험 이후 1999년에 리처드 라이언(Richard M. Ryan), 리처드 쾨스트너(Richard Koestner)와 함께 실시한 메타 분석 연구에서도 보상이 내면의 동기를 해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실험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보상의 한계를 충분히 깨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시의 실험이 실시된지 40년이 넘게 흘렀지만 여기 저기에서 차등적 보상을 강조하는 성과주의의 그늘을 목격합니다. 서두에 말했듯이 무언가 잘 되지 않으면 직원들에게 동기를 북돋우어 조직성과를 높이려 합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때 항상 '돈'이라는 간편한 수단이 따라 붙습니다.

어떤 조직은 다 합해봐야 얼마 안 되는 급여인상분을 가지고 직원들의 성과에 따라 차등 보상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더군요. 1년에 1인당 최대 100만원 정도의 차등일 텐데, 이런 보상 차등이 조직을 활성화시킬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차마 건드릴 엄두를 못내고 또 건드릴 의욕도 없어 보였습니다.

동기는 돈이라는 수단으로 결코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동기를 높일 수 있다 해도 돈을 줄 때뿐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자신에게 돈이라도 많이 주면 좋겠다고 불평하지만, 그것은 스스로가 보상에 길들여져 있다는 방증입니다. 하는 일이 재미있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돈은 그저 이차적인 조건이라고 여길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잘못된 패러다임(성과주의) 하에서 경영자와 직원 모두가 행동한 탓입니다.

금전적 보상은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동기를 절대로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오히려 감쇄시키고 힘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높은 보상을 추구하는 것은 외부의 통제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종속되고자 하는, 경영자나 직원들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양성화하여 억지로 '그것이 옳다'고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돈을 버려야 열정이 살아납니다.

(*참고논문 : The effects of contingent and non-contingent rewards and controls on intrinsic motivation
(*참고논문 : A Meta-Analytic Review of Experiments Examining the Effects ofExtrinsic Rewards on Intrinsic Motiv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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